[차장칼럼] 경제 태풍의 진원지, 우크라이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3.05 17:49

수정 2014.10.29 06:49

[차장칼럼] 경제 태풍의 진원지,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세계 이목이 쏠렸다. 이번 사태를 이해하려면 러시아를, 러시아를 이해하려면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떠올려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1896년 을미사변 당시의 '아관파천' 얘기다. 당시 사건은 이렇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한반도 내정간섭을 강화하기 위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일본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아라사(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파천)해 도움을 요청한다. 당시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을 지근거리에서 압박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뿐이었다. 고종은 아관(아라사 공관)에 1년간 머무르며 친일파를 붙잡아 처형했다. 왜세는 물리쳤지만 대가는 엄청났다. 러시아가 고종을 압박해 압록강 연안의 삼림 채벌권과 경원, 종성의 채광권을 가져간 것이다. 러시아가 한몫 단단히 챙기자 미국과 유럽의 열강들도 이권 따내기에 가세했다. 러시아에만 특혜를 줬다는 논리로 이들은 철도 부설권 등 주요 사업을 가져갔다. 힘을 빌려준 대가로 주변국들이 한 나라의 원자재 사업과 사회간접자본시설(SOC) 인프라 사업 등의 이권을 무더기로 따낸 셈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지정학적 상황은 아관파천 당시와 유사하지만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은 비교를 불허할 만한 수준이다. 친러 세력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러시아로 피신하면서 한 나라를 사이에 두고 친 유럽연합(EU) 세력과 친러 세력 간 정치경제적 패권싸움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으로 나가는 가스 공급망과 흑해를 품고 있는 크림반도 때문이다. 과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정치적 갈등은 지난 2006년 유럽의 가스대란을 일으킨 주범이었다. 우크라이나가 가스대금을 제때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가스밸브까지 잠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가스 소비량의 30%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 유럽 국가들은 양국간 갈등이 풀릴 때까지 러시아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러시아가 병력을 주둔시킨 크림반도는 흑해를 품고 있어 지중해로 유일하게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친EU세력이 정권을 잡을 경우 러시아 입장에선 크림반도 활용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은 이미 세계경제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우크라이나가 세계 10대 철강 생산국인 데다 대량의 밀을 생산하고 있어 금, 곡물을 비롯한 원자재 시장이 심하게 출렁였다. 지난 3일을 기준으로 금 선물가격이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밀 선물가격은 2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 시장도 불안하다. 루블화가 급락하면서 러시아중앙은행(BOR)이 기준금리를 5.5%에서 7.0%로 1.5%나 급하게 올렸지만 통화 가치는 급락하고 있다.

국내 시장도 직격탄을 맞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쌍용차다. 자동차 수출량의 30%를 러시아가 담당하고 있다. 러시아는 현대기아차에도 전체 수출량의 4.7%를 차지하는 주요 수출국이다.
특히 러시아는 중소형차보다 중형 이상급 차종 수요가 많은 곳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업, 제조업을 포함한 국내 주요 업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면밀히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ksh@fnnews.com 김성환 산업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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