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중국 성장의 한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3.10 17:04

수정 2014.10.29 05:18

[곽인찬칼럼] 중국 성장의 한계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화제다.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에선 칭찬과 부러움이 동시에 쏟아졌다. "왜 중국은 '별그대' 같은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는가"라는 탄식도 나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까지 중국 내 '별그대' 신드롬을 다뤘다. 동아시아 문명의 뿌리라고 자부하던 중화(中華)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집에서 가끔 중국 드라마를 본다. 무협물은 붕붕 날아다니기만 할 뿐 스토리가 없다. '초한지' 같은 역사물은 스토리는 있지만 긴박감이 떨어진다. 특히 매회 끝 장면이 싱겁다. 우리 드라마는 또 안 보곤 배길 수 없게 만든다. 대화도 쫄깃쫄깃하다. 중국 드라마는 무뚝뚝하다. 보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한마디로 줄이면 자유다.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예외적인 나라다. 정치·경제 모두 포용적인 제도를 갖췄다. 드라마의 창의성은 한껏 발휘된다. 중국은 경제는 꽤 열었지만 정치는 꽉 닫혔다. 양회에선 당국의 사전검열을 탓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날개와 상상력이 꺾였다"는 불만도 들린다.

중국의 억압적 정치제도가 결국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대표적인 학자가 대런 애스모글루(MIT·경제학)와 제임스 로빈슨 교수(하버드·정치학)다. 두 사람은 중국을 옛 소련과 닮은꼴로 본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한 1928년부터 1970년대까지 소련 경제는 고도성장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방에는 소련에서 미래를 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고 믿었다."(애스모글루·로빈슨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그러나 자유·사유권·혁신·인센티브를 온전히 허용하지 않는 공산당 일당독재는 결국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다는 게 애스모글루·로빈슨의 주장이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소비에트연방은 붕괴됐고 위성국들은 떨어져나갔다. 지금 중국은 전성기 소련과 마찬가지로 고도성장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지속 가능성은 장담 못한다. 억압적 정치제도 때문이다. 권력을 독점한 공산당은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경제도 레드라인이 있다. 당의 통제력에 대한 도전은 만용이다. 중국 경제는 새장 속 새다. 새장이 아무리 넓어도 하늘을 나는 새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착취적 정치제도 아래서 성장은 태생적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중국계인 미국 예일대의 천즈우 교수도 이에 동조한다. 천 교수는 "중국의 경제성장도 '자유와 법치에 기초한 시장경제가 국가발전을 이끈다'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중국식 모델은 없다')고 말한다. 중국 특유의 성장모델은 환상이라는 얘기다.

중국은 정치개혁 기회를 몇 번 놓쳤다. 1989년 베이징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시위 현장은 탱크 난입으로 쑥대밭이 됐다. 개혁파 자오쯔양 총리는 숙청됐다. 민주화는 터부가 됐다. 20여년 뒤 원자바오 총리가 수차례 정치개혁의 시급성을 역설했으나 메아리는 울리지 않았다. 노벨평화상(2010년) 수상자인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는 여전히 국가전복선동 혐의로 장기수감 중이다.

당연히 중국은 소련이 아니라 한국을 모델로 삼아 정치개혁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가망은 희박하다. 애스모글루·로빈슨에 따르면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중국 공산당과 경제 엘리트층이 향후 수십년간 권력을 틀어쥐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식 성장은 중진국 수준에서 막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포용적 정치제도는 공산당이 일당독재를 포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제 살을 도려내는 격이다. 덩샤오핑은 경제개혁을 이끌었지만 톈안먼 시위는 용납하지 않았다. 단언컨대 시진핑은 중국의 고르바초프가 아니다.

당분간 중국 시청자들은 우리 드라마에 열광할 것 같다.
자유 없인 한국 드라마의 매력을 따라잡기 힘들다. 문제는 중국 경제다.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면 우리 수출이 걱정이다. 중국에 자유를 안착시킬 묘책은 없을까.

paulk@fnnews.com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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