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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2부·1) 국민이 인정한 정치인은 왜 사라지는가

최경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01 17:07

수정 2014.10.29 00:25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2부·1) 국민이 인정한 정치인은 왜 사라지는가

■ 18대 우수의원 67명은?

우수 국회의원을 선정하는 단체는 많다. 그러나 각종 사회단체, 이익단체, 국회의원에게 잘 보이려는 민간 기관들까지 가세해 '상장의 인플레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주관적인 선정기준으로 나눠먹기 시상, 체면 세워주기 시상이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의 자질과 정책능력을 평가하는 작업은 중단할 수 없는 일이다. 믿을 만한 단체의 객관적인 기준과 공정한 평가작업은 정치개혁의 토대가 된다.

법률소비자연맹은 국내 270개 시민·시회단체가 모여 지난 14년 동안 국정감사를 모니터링해왔다. 또 국회의원의 본회의 상임위원회 국정감사 출석률, 대정부질문 재석률, 표결 참가, 의원발의 법안 표결 참가, 제정법안 대표발의 통과건수 등 정책능력과 성실성을 중심으로 데이터를 쌓아 왔다. 이 같은 수치화된 평가 결과들을 바탕으로 국회의원들의 임기 동안 실적을 종합해서 대한민국 헌정 대상을 선정해 오고 있다.


18대 국회에서는 모두 67명의 의원이 우수 국회의원으로 선정됐다. 상위 5% 이내에 드는 헌정대상 수상의원 13명 중에는 3선의 서병수, 재선의 김기현(이상 당시 한나라당), 김재윤, 김춘진 의원(이상 당시 민주당)이 있다. 이들 외에는 모두 초선의원들이 차지했다. 헌정대상 및 우수의원으로 선정된 67명 중에도 4선 이상은 3명에 불과하고 3선 8명, 재선 18명, 초선이 38명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비례대표는 19명이 선정돼 전체 54명 중 35.2%라는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지역구 활동보다는 국회 입법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비례대표의 장점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 선거는 정치의 신진대사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치인이 등장하고 부적합한 정치인은 퇴출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적 쇄신이 이뤄진다. 인적 쇄신은 정치개혁의 핵심이기 때문에 선거 때가 오면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다. 선거 때만 되면 각 당이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젊은 피' 수혈이니, 참신한 인재 등용이니 하면서 정치권 밖에서 새 인물을 찾았던 전례를 보면 선거의 순기능에 정치개혁의 기대를 걸어봄직하다. 정치권이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인적 쇄신을 실천하는 방법은 참신한 인물을 후보로 출마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제대로 된 인물이 선출되지 못하고 걸러져야 할 인물이 번번이 살아나 국회에 재입성한다면 선거라는 필터가 제 기능을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부터 객관적인 기준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던 67명의 국회의원을 추적 분석, 그들이 19대 국회에 얼마나 진출했는지 살펴봄으로써 우리 정치에서 선거 기능에 문제는 없는 것인지 짚어봤다.

법률소비자연맹이 지난 18대 국회에서 우수의원으로 선정한 사람은 모두 67명이다. 임기 4년 중 마지막 1년을 빼고 3년 동안의 활동을 종합 평가한 결과다. 국회 본회의와 국정감사, 상임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법률 제정을 열심히 한 의원들이다. 성실성과 정책능력면에서 뛰어난 의원들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들이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당선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67명 중 19대 국회에 재입성하는 데 성공한 정치인은 고작 28명, 41.8%에 불과했다. 18대 국회 전체 의원의 재선 확률은 38.7%였다. 이 결과만 보면 우수의원이나 일반 의원이나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는 데는 별 차이가 없다. 성실성과 정책능력이 선거에서 썩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거에 별 도움이 안된다면 국회의원이 국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정책을 개발하고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 내는 데 힘쓸 이유가 없다. 아직도 우리 국회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면 그 중요한 원인이 이런 선거 환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수의원 10명 중 4명만 재입성

우수의원 67명 중 19대 국회의원 명단에서 사라진 39명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국회를 떠났는가? 이들의 사례는 우리나라 선거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19대 국회에 재입성하지 못한 39명을 사례별로 보면 △불출마 선언(10명) △공천 탈락(18명) △출마 후 낙선(11명) 등이다. 놀라운 사실은 39명 중 무려 28명이 본선에 진출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직접 평가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18대 국회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활동한 전현희 전 의원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으로서는 사지나 다름 없는 서울 강남 출마를 선언했다. 강남은 보수정당의 아성이라는 점에서 지역주의와 계층주의를 깨는 결과가 나온다면 한국정치를 바꾸는 데 의미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남은 민주당에서 공천신청자가 거의 없는 곳인데 때 아닌 복병을 만났다. 민주당의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동영 전 의원이 같은 지역 출마를 선언하면서 경선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가 쌓아 온 4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 4년 연속 입법처 우수 입법위원, 국회활동 우수의원이라는 이력은 경선과정에서 득표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반면 정 전 의원은 국회활동의 초점을 진보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선명성 행보에 맞춰왔고 강남의 서민촌, 구룡마을 개발 문제를 경선전의 중요 포인트로 삼았다. 결과는 당 거물 정치인의 조직력과 특정 지역 몰표로 정 전 의원에게 패배했다.

당시 전 전 의원 측 선거 관계자는 "현장에서 검표자로 나간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다른 지역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구룡마을 표를 개봉하면서 확연히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며 "구룡마을 사람들이 거의 차량을 동원하다시피 현장 투표에 참여했는데 아무래도 중앙정치에서 힘이 센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고 전했다.

본선에서 정 전 의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주역인 새누리당 김정훈 후보에게 패함으로써 민주당의 강남 입성의 꿈은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전 전 의원은 이후 당 지도부로부터 경선 없이 서울 송파갑에 출마할 수 있는 특권을 제안 받았지만 강남을 지키겠다며 고사한 뒤 정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끝까지 도왔다.

민주당의 촌철살인 대변인으로 이름을 떨친 김유정 전 의원은 공천심사에서 1위를 하고도 경선에서는 3위에 그쳐 지역구의 높은 벽을 절감해야 했다.

김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서울 마포을은 공천 신청 경쟁률이 가장 높았던 지역구다. 유력한 경쟁자로 이 지역에서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청래 의원이 있었다. 경선 결과 정 의원이 득표율 47.45%를 기록하며 17.64%에 그친 김 전 의원을 크게 앞섰다. 정 의원은 17대 총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열풍 속에 첫 금배지를 달았지만 18대 선거에서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에게 패했다. 정 의원은 이후 지역구 텃밭을 다지는 데 매진했다.

김 전 의원은 의정활동과 대변인으로 당을 위해 헌신한 점이 공천에 반영되지 못했다며 반발했다. 당시 눈물의 기자회견을 한 것이 크게 회자됐다. 그는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서 "개인적인 일로 이 자리에 서는 것도 처음이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울면서 브리핑한 것도 처음"이라며 반발했다.

당시 민주당 관계자는 "경선이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내세울 수 있는 효과도 있고 경선을 치르면서 일반 주민들에게 홍보함으로써 후보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지만 조직력이 있거나 당내 계파 세력이 강한 후보가 당선되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싫어 좋은 사람 떠난다.

이명박정부가 후반기에 접어든 2011년 8월 친박근혜계의 기세가 점차 높아지던 시기였다. 김금래 전 한나라당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에서 탄탄한 기반이 있던 그가 일찌감치 불출마를 결심한 것은 의외였다. 김 전 의원은 영부인 김윤옥 여사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김윤옥 여사의 모든 지방행사를 수행하며 일정을 관리했다. 대선 본선에서도 이명박 후보 비서실 부실장을 지내며 김 여사를 보좌했다.

당에선 여성국장 등을 역임하면서 정치 경력을 키운 인물이다.

그랬던 김 전 의원은 막상 현실 의정 활동을 접하자 정치권에서 활동을 그만 접기로 했다. 보궐선거 당 공천심사위 등에서 일하며 온갖 논란을 지켜본 김 전 의원은 더 이상 정치권 생활을 이어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민주당 비례대표 1번 이성남 전 의원은 소신 있고 균형잡힌 의정활동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딱 한번 국회의원을 하고 정치판을 떠났다. 이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 나가려면 지역구에 출마해야 하는데 나보다는 '지역구 의원'에 잘 맞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고 불출마 소회를 밝혔다.

저축은행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 전 의원이 보여준 소신 행보는 유명하다. 18대 국회 막바지에 저축은행 사태를 해결하려고 국회는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5000만원 이하 예금에 대해서도 지원을 해주는 이 법안은 정치 포퓰리즘이라며 각계의 비판을 받았다. 당시 정무위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이 법안에 반대 목소리를 낸 사람이 이 전 의원이었다.

이 전 의원은 "향후 대한민국 금융시장에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다. 금융권의 자기책임 원칙을 무시하고 예금보호제도의 근간을 뒤흔들었다"고 비판했다. 이 전 의원이 재선을 염두에 두고 여론을 살폈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당시 국회 주변의 평가였다.

■선거의 높은 벽, 정당과 지역

당에서 주도권을 쥔 친박근혜계에 반기를 들며 탈당을 선언했던 김성식, 정태근 전 의원은 '아무리 좋은 재원도 바람 앞에서는 소용없다'는 속설만 확인시켜준 사례로 꼽힌다.

그들은 권력과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독주의 정치 시스템을 깨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로 패러다임이 변화되길 바랐다.

당내에서 이들은 쇄신파로 불리며 초선임에도 대내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수한 의정활동으로 외부 단체에서 꼽는 우수 국회의원 명단에 단골손님이었다.

그들은 당내에서 근본을 바꾸는 수준의 재창당을 요구했다. 정강정책 외에도 새 인물 영입을 통한 쇄신을 요구했다. 국민들이 보기에 진심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다. 김성식 전 의원은 당시 재창당 관련 문건을 박근혜 전 대표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권력을 잡고 있으려는 친이계와 새로운 권력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분주한 친박근혜계의 모습에 결국 탈당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들은 '정치 의병'을 자처하며 전통적인 야당 강세지역에 무소속으로 나섰다. 김 전 의원은 '일 잘하는 현역 의원'이라는 점을 내세웠지만 서울 관악갑에서 41.6%의 득표율을, 정태근 전 의원은 서울 성북구갑에서 44.8%의 득표율로 석패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두 전 의원의 인적 경쟁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선거의 세계에선 인물론이 통하지 않았다"고 평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이들도 선거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궁극적으로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점에 대한 전반적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너무 원론적인 명분에 매달리다 보니 민심을 얻지 못한 채 결국 그들만의 리그에 동화돼 버린 측면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효석 전 의원의 경우 전남 담양.곡성.구례 지역에서 내리 3선을 한 호남권 대표 정치인이다.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거쳤고 중도층을 포괄해 민주당의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며 18대 국회에서 뉴민주당플랜을 주도했던 정책통이다. 그가 19대 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를 버리고 서울 강서을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이 지역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던 김성호 전 의원을 당내 경선에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6만1096표(49.6%)를 얻어 낙선했다. 상대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6만1967표(50.4%), 표 차이는 겨우 871표에 불과했다.

국회의원들은 훌륭한 법안을 만들거나 악법을 고쳐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 행정부를 날카롭게 감시해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런 활동은 의원들이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정책역량에서 비롯된다. 동시에 국회의원은 소속 정당의 정치적 목적에 복무할 것과 정치거물들이 이끄는 계파의 이익에 기여할 것을 요구받는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독립된 입법기관이라지만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당의 몰락이나 계파 보스의 추락은 곧 의원 개인의 낙천. 낙선과 직결되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4년 임기 동안 활동은 사실 선거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성실한 국회활동이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정당의 보스에 충성하거나 지역구에서 조직력을 강화하는 데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 사무총장은 "정치신인이 불리한 구도가 우리나라 선거의 문제"라며 "총선에서 여러 정당이 진출할 수 있는 구조, 정당공천 폐지 논란을 해소하는 데도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논의해 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이두영 김기석 전용기 최경환 김학재 김미희 예병정 박소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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