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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의 역설] (3·끝) 퇴직금은 먼지가 되어.. 명퇴, 우울한 제2인생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15 17:42

수정 2014.10.28 07:55

[구조조정의 역설] (3·끝) 퇴직금은 먼지가 되어.. 명퇴, 우울한 제2인생

#1.서울 강남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박모 사장(42). 그에게 2년 전 일은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악몽이다.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던 그는 비자발적 퇴직을 했다. 팀이 구조조정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박 사장은 몇 달간 방황했다. 그가 방황하는 동안 가정은 풍비박산나기 일보직전이었다.

가족은 그의 눈치만 살폈고 박 사장은 삶의 의욕이 없었다. 하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지인들을 찾아 다녔다. 적당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재취업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결국 강남에 고깃집을 마련했다. 갖고 있는 현금 5000만원에 집 담보로 3억원, 부모님께 2억원의 돈을 빌린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고깃집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최근 더 이상 수익이 오르지 않아 가게를 정리하고 귀농을 모색하고 있다. 박 사장이 더 안타까운 것은 고깃집 인수를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명예퇴직자들이라는 것.

#2. 이모씨(55)는 지난해 A은행을 퇴직했다. A은행은 노사 간 합의로 지난해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퇴직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재취업 및 창업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서울에서 지점장을 지낸 이씨는 퇴직금 2억2000만원과 자신 명의의 아파트를 담보로 2억원을 대출받아 편의점을 낼 계획을 세웠다. 이씨는 창업 프로그램의 상권분석과 창업 경험자들의 조언을 받아 지난해 11월 인천 연수동에 편의점을 개업했다. 하지만 주변에 편의점이 경쟁적으로 늘어나면서 매출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이씨는 "회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퇴직자들이 살아가기는 여전히 힘든 구조"라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기업들의 상시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거리고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생계를 위해 가진 돈을 모두 쏟아부어 자영업자로 변신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경제활동인구의 25%가 자영업을 하고 있는 나라에서 자영업으로 성공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이들에게 행복한 노후생활은 사치에 불과하다. 박근혜정부의 일자리 늘리기 정책에도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마다 신규 고용을 늘리지만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전체 직원 수는 거의 변함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직원을 철저히 비용으로 생각하고 있어 인력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거리로 내몰리는 명퇴자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기업들은 전방위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한국씨티은행, 삼성생명 등이 수익성 악화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국민, 신한, 우리, 외환, 하나 등 시중은행 임원은 이미 지난해 9월 말 기준 254명으로 1년 전보다 127명(33.3%)이나 줄었다.

산업계에서는 KT가 6000여명의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시적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수만명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 대부분은 자영업으로 돌아선다. 재취업을 원하지만 대부분 시간제,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아 생계 유지가 안 되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3월 기준 국내 전체 자영업자는 560만명이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2.3% 비중이다. 임금근로자 대비는 30%에 육박한다. 이 수치는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해마다 절반가량의 자영업자들이 망하고 있지만 새로운 자영업자들이 이를 채우고 있다.

통계청의 기업 생멸 행정통계에 따르면 신생기업의 평균 생존율은 1년 후 61.3%, 2년 후 48.4%로 나타나며 5년 후에는 10개 기업 중 3개 기업이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별 5년 후 생존율은 보건·사회복지(46.6%), 부동산·임대업(46.5%)은 높으나 예술·스포츠·여가(13.7%), 숙박·음식점업(17.7%)은 낮았다. 특별한 기술 없이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업종은 생존율이 그만큼 떨어진다.

■'인력=비용' 인식 바꿔야

명예퇴직의 부작용을 줄이려면 직원을 대하는 기업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와 함께 사회적 안전망이 가동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기업들의 상시 구조조정은 사람을 비용으로 생각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서 시작해 중장기적으로도 해당 기업과 국가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기업은 구조조정으로 인해 기업이미지에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 숙련된 인력을 다시 키우기 위한 훈련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강제적으로 퇴직을 당한 사람들은 자연히 구매력이 떨어져 우리나라 내수시장을 더욱 침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부 기업이 마련하고 있는 퇴직준비 프로그램도 내실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기업은 형식적인 프로그램만 갖추고 있다. 퇴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모 은행 관계자는 "창업을 위해 기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학원비 정도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처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 도입이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1년부터 경력컨설팅센터를 설립, 임직원의 경력관리와 퇴직 후의 경력까지 컨설팅한다.

임원은 퇴직 후 개인의 희망에 따라 경력컨설팅센터에 서비스 신청서를 제출하고 재취업에 대한 도움을 받는다. 전직 프로그램은 강좌와 컨설팅으로 구성돼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40대 이후부터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생계에 대한 스트레스 등이 주요 원인이기 때문에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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