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구조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라면 누구나 가슴을 치고 답답한 심경을 감추지 못한다.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보름이 다 되도록 100명 넘는 실종자가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구조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지휘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지휘부와 현장 간, 민간과 정부 간 소통이 막히면서 불신의 벽은 높아지고 있다. 일사불란하게 진행돼야 할 구조방식이나 장비투입 문제를 놓고 사소한 이견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상상황마저 악화돼 수색을 어렵게 하고 있다.하늘마저도 외면한 총체적 난국이다.
국민을 더욱 답답하게 하는 것은 반복되는 대형참사를 겪으면서도 이런 난국을 타개할 재난대응 시스템이 전혀 갖춰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대형참사가 터질 때마다 '체계적인 수습·구조 체계'를 세우겠다며 개선책은 내놓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지난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로 292명이 사망했을 때도,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로 192명이 사망했을 때도 정부는 서둘러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책을 앞다퉈 발표했지만 십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렵다.
더욱 큰 문제는 이미 각종 재난대응 및 예방과 관련해 각종 연구보고서가 속속 발표돼 왔지만 정책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례로 서해 훼리호 침몰사건 이후 지난 10여년간 국내에선 선원 안전교육, 여객선 관리체계, 재난 발생 시 소통체계 구축, 사고 수습 컨트롤타워 운영, 노후.개조 선박 관리방안, 민간 구난업체 활용방안 등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응책을 밝힌 연구보고서가 속속 발표돼 왔다. 사고대책 매뉴얼도 무려 3000여개가 만들어져 있지만 이번 사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매뉴얼은 있지만 '말과 글'에 불과했을 뿐 어떤 기관도 그에 따라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범정부 차원의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하지도, 운영하지도 못했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명확하게 책임 소재를 가린 후 피해자와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도록 현장의 재난대응시스템과 소통창구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발표된 각종 재난관련 매뉴얼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대형 재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확실한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점은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통한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현장 대응이다. 이를 위해 정부 관계기관이 컨트롤타워를 맡되 현장 사정에 밝은 구조전문가들이 현장지휘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이원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직후 관할 소방서장을 현장책임자로 투입해도 구조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된 이유가 평소 훈련을 통해 이 같은 시스템이 잘 정착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구조전문가가 현장지휘를 책임지고 컨트롤타워가 뒤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되면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소통 부재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이번 침몰사고가 재난대응 매뉴얼이 구축돼 있는데도 실제 상황에선 제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평소 재난에 신속히 대처하는 훈련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영훈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안전공동체연구센터 소장은 "사전에 사고 유형별, 규모별로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 사고가 발생하면 최단시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이 돼있어야 한다"며 "매뉴얼이 아무리 체계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어도 현장에서 소통과 협력 등이 훈련으로 몸에 배어있지 않으면 우왕좌왕하기 쉽다"고 말했다.
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전문가 진단 안영훈 안전공동체연구센터 소장
박근혜정부는 출범 시 국민 안전을 제1 과제로 내세웠다. 행정안전부의 명칭은 안전행정부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에 대해 안영훈 지방행정연구원 안전공동체연구센터 소장은 복잡한 위기대응 체계와 사고상황에 대한 훈련 부족을 문제로 꼽았다. 다음은 안 소장과의 일문일답.
―비슷한 해상사고가 수차례 있었는데도 현장에서 체계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사고에 직면하면 누구나 당황하게 된다. 평소에 알고 있던 것들도 실행에 옮기기 어렵게 마련이다. 훈련이 필요하다. 사고 상황에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다 알지만 몸에 배지 않으면 실제 상황에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없다.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평소 민방위훈련을 한다고 하지만 체계적이지 못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그 시나리오에 따른 피해를 분석해서 체계적인 행동패턴을 숙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사고수습 과정에서 정부가 우왕좌왕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소통 문제다. 사회적 재난은 안전행정부에서 관리하고 자연재난은 소방방재청에서 책임지게 돼있다. 해경은 해경대로 소통체계가 있고, 새 정부 들어 해양수산부가 생기며 일정 부분 담당하기도 한다. 이런 보고체계가 혼선을 빚으면서 의사결정 구조가 무너졌다. 중대본은 한쪽으로는 전 부처에 사고 관련 연락관이 연결돼 있어야 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분야별 전문가 풀이 구성돼 있어야 하는데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은 재난이 발생하면 사태를 신속히 파악하기 위한 전문가그룹이 바로 현장에 갈 수 있다. 우리도 권역별로 5분대기조처럼 움직일 수 있는 재난상비인력이 필요하다.
―재난인력 얘기를 했는데 전문가 풀이 부족한 건가, 아니면 시스템 부재로 있는 재난전문가를 활용하지 못하는 건가.
▲분야별로 보면 재난, 산업, 방재 등 여러 전문가가 있다. 정 부족하다 싶으면 외국의 전문가라도 연결할 수 있는 시대다. 전화나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파하고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다. 자원은 충분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은 부족하다. 정부3.0 기조가 이런 것들을 통합하는 것이고, 중대본의 역할이 지역에서의 체계를 관리하는 것인데 이게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대비 없이 상황에 맞닥뜨리다 보니 보고를 제대로 받은 경험도 없다. 이번에도 밑에서 보고를 제대로 못한 것이지 않은가. 동원 가능한 자원이 얼마나 있고, 어떻게 자원을 조달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초기에 배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유지만 시킬 수 있었더라도 사람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장비가 너무 멀리 있었던 탓이다. 발생 가능한 사고요인을 검토해 장비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활용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제1 과제를 국민안전으로 삼았다. 이런 의지와 체계에도 불구하고 왜 실제 대응은 부실할까.
▲매뉴얼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3400개라고 하는데 그렇게 많이 필요없다. 개인의 행동패턴까지 다 규정해 복잡하고, 찾아보기도 힘들다. 공통적인 행동패턴만 매뉴얼에 담으면 된다. 세부적인 내용은 지역이나 기간산업별로 각자가 맡아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순환보직 체계인 공무원 특성상 매뉴얼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초·광역 단체장이 을지훈련 등에서 적극적으로 지휘해 보는 경험도 부족하다. 정치적 지도자나 기관장들도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리더십도 필요하다.
―안전관리 체계에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대책은.
▲시스템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중앙안전대책본부,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이름만 해도 너무 복잡하다. 국무총리실, 안전행정부 등 소관 부처도 다양하다.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통합 지휘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보텀업 방식(상향식)으로 체계를 개편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통적으로 누구나 다 숙지해야 할 행동패턴을 보급하고 개인의 임무를 부여한 매뉴얼을 만들어 그만큼의 책임을 줘야 한다. 추가로 그 지역이나 집단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고 유형과 관련한 대응 시스템 몇 가지만 만들면 된다. 태풍이 온다고 해서 다르고, 배가 침몰한다고 해서 행동양상이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내용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단순화해야 한다.
sane@fnnews.com 박세인 기자
■선진국 재난대응 어떻게
세월호 침몰사고와 같은 재난사고에 대비해 현장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로 구성된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관급이 진두지휘하는 안전행정부 중심의 위기대응 체제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해.재난을 다뤄본 적이 없는 행정 관료들은 실제 상황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선진 각국의 재난대응이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가로 구성된 재난관리 전담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또 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에게 많은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재난사고를 통제한다.
미국은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국가적 재난사태를 총괄한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9·11테러 당시 FEMA는 사태 수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뉴욕시에 전권을 맡겼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관할소방서장은 뉴욕시장의 명령을 받아 세계무역센터(WTC)가 붕괴된 현장의 초기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했다.
FEMA는 미국 전역에 10개 지방청과 2개 지역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미국 전역의 재난관리계획 수립, 피해경감 프로그램 개발과 주요 재난 발생시의 지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재난 발생시 연방정부의 모든 자원을 끌어모으고 조율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때에 따라 재난사태 수습을 최선봉에서 지휘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내무부 산하에 시민안전총국(DDSC)을 두고 있다. 이 조직은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위기관리 인력과 각 분야별 권한을 행사하는 관련기관인 국방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교통부 등의 각 중앙부처와 위기대응 분야별 전문가, 위기대응을 위한 적정한 특수장비 등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독일은 연방정부의 국가재난 방지를 위해 연방국민보호재난지원청(BBK)을 운영한다. BBK는 연방내무부 소속 기관으로서 업무 수행에 있어서 연방부처 및 주 기관의 자문에 응하거나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재난·재해관리체계는 총리부 산하에 국토청을 두고 국토청 방재국에서는 방재기획, 방재조정, 방재대책 그리고 방재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두고 있다. 일본의 재난재해관리체계에서 정부기구 외에 주목할 것이 주요 재난정보시스템이다.
일본의 방재관계기관 등은 재해대책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방재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대규모 재해 시 효과적 통신수단이 될 수 있는 무선통신시설을 정비해 나가고 있다.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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