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새마을호의 추억

양승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5.13 18:02

수정 2014.10.27 17:15

개통 10주년을 맞은 고속철 KTX가 국민 생활 전반에 안긴 변화는 거의 개벽에 가까웠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레일 위의 광속혁명'이라는 찬사에 걸맞게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묶은 KTX는 출퇴근은 물론 여행, 쇼핑 등 수많은 분야에서 기존의 생활 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누적이용객 4억1400만명에 하루 평균 15만명의 승객을 태워 나르는 KTX는 교통분담률도 최고 58%(서울∼부산)까지 올라 빠르고 편리한 육상 교통수단의 대명사로 단단히 자리를 굳혔다.

KTX에 왕좌를 내주긴 했지만 2003년까지 우리나라 철로 위의 '왕'은 단연 새마을호 열차였다. 넓고 편안한 객실, 안락한 좌석을 갖춘 새마을호는 시속 100㎞를 넘는 준고속으로 철길을 질주하며 오래도록 챔피언으로 군림했다. 새마을호의 전신인 관광호가 1969년 경부선에 투입된 후 어느 육상 교통수단도 한동안은 속도와 품격에서 이 열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최고 시속 110㎞로 서울∼부산을 4시간50분 만에 주파한 관광호는 특1등칸, 1등칸, 살롱카(식당칸) 등으로 짜여진 객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럭셔리 기차로도 명성을 떨쳤다.

1974년 8월 15일부터 새마을호로 이름을 바꿔단 후에도 철길에서만은 이 열차를 따라 잡을 적수가 없었다.
육상교통의 중심이 자동차 쪽으로 기울고, 마이카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더 빠른 신형 열차 투입이 이뤄지지 못한 탓이었다. 레일 장대화 사업에 힘입어 1985년부터 새마을호의 서울∼부산 운행 시간을 4시간10분으로 단축한 게 그나마 두드러진 변화였다. 4시간의 벽을 넘진 못했어도 새마을호는 34년의 세월을 철로 위의 챔피언으로 버틴 셈이었다.

하지만 KTX의 등장은 새마을호 전성시대를 단숨에 끝내 버렸다. 시속 300㎞의 초고속 열차에 밀린 새마을호는 느림보 취급을 받으며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코레일이 'iTX-새마을' 열차의 운행을 12일 시작했다.
새마을호를 대신하기 위해 국내 기술로 만든 이 열차는 기존 새마을호보다 편의 시설이 우수하고 가속 성능도 뛰어나 서울∼부산 운행 시간을 20분 정도 단축시킬 예정이다. 산뜻하게 등장한 새마을호의 업그레이드가 반갑다.
초고속 KTX도 좋지만 다른 열차의 수준도 함께 높아져야 진정한 철도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는 법이다.

tanuki2656@fnnews.com 양승득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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