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때문에 온 국민이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의 균형이 깨진 상태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로토닌문화원 이시형 박사는 세월호 참사가 한 달 이상 이어지면서 국민이 집단 우울감과 분노에 빠져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제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국민이 정이 많고 감정적이라 세월호 참사를 두고 다른 나라 국민보다 많이 공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공감만 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22일 세로토닌문화원 이사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인 '국민 정신 주치의' 이시형 박사에게 국민 정신건강 극복 방안을 들어봤다.
―국민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지금 세월호 참사로 국민 전체가 우울증에 빠져 있다. 사고가 단발로 끝난 게 아니라 한 달 이상 연장됐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지쳐 있다. 물론 감정이라는 것은 슬플 때 슬퍼하고, 마음이 아플 때 충분히 아파해야 한다. 그것을 막으면 안 된다. 마음이 아프겠지만 시간도 많이 흘렀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또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죽을 것같이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치유가 된다. 집안에 초상이 나면 슬프지만 밥은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여자들은 부엌일을 하고 상주들도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등 마냥 슬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의 문제점.
▲사회가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원칙 하나만 지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옛말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설마 사고가 날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게 큰 참사를 불렀다. 구조 변경부터 시작해서 안전하리라 믿었던 게 문제다. 우리 국민은 무모한 낙천주의 기질이 있다. 사실 이번 참사는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져도 터질 문제였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이를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조직 자체가 이미 썩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십년간 자리를 꿰차고 있던 사람들이 문제에 안일하게 대처했다.
―국민이 집단 우울증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되는데.
▲세로토닌은 인간의 본능인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의 욕구가 충족돼 행복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뇌간에서 세로토닌이 분비되는데 사람이 즐겁다고 느낄 때 호르몬이 분비돼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즐길 때나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 한 달 이상 슬프고 힘든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 국민은 세로토닌 균형이 깨지게 됐다. 뇌간은 운동·감각 신호를 전달하는 통로 기능을 한다. 이 때문에 자연과 함께하며 움직이면 세로토닌이 좀 더 많이 분비된다. 힐링이라는 것도 세로토닌을 뇌에 분비하는 것이다.
―일부 국민은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고 있는데.
▲정부를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일을 수습하는 것도 정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성숙한 국민으로서 자세를 보여야 할 때다. 다음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일을 수습하고 해결하게 도와야 한다. 이제 감정적 상태에서 벗어나 이성을 찾고 현실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단원고에 북을 보내신다고 들었다.
▲최근 세로토닌문화원에서는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북을 제작해 학교로 보내주고 있다. 청소년은 정신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나이인데 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1~2시간 북을 치게 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면서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산에 가서 새소리, 물소리가 들리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 뇌의 피로가 없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기분 좋은 상태일 때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이에 착안해 힐리언스 선마을을 만들어 자연의 치유력을 활용한 의학프로그램을 적용해 사람들의 힐링을 돕고 있다. 세로토닌 분비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이른 아침 태양을 쬐면서 30분가량 걷는 것이다. 이는 '최고의 보약'이다. 유가족들도 마음이 아프고 힘들겠지만 누워만 있으면 마음이 더 힘들어진다. 아침에 아무 생각 없이 잠깐 걸으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고등학교에는 북을 보내지 않는데 단원고에 보낼 북은 이미 제작해 뒀다. 생존자와 같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모두 마음이 힘들기 때문에 미약하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최근 문인화를 배우셨다는데.
▲80세가 되고 나서 인생을 되돌아보니 가장 못하는 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동안 살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거기서 성공을 얻기도 했다. 사실 별로 실패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실패라는 감정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고민해 보고 경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지난해 4월 지인 20여명을 모아 김양수 화백에게 한국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한두 달 동안 사군자만 그리는데 다른 사람보다 재능이 없었다. 실제로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사군자를 못 그리면 그보다 쉬운 산이나 나무를 그리자고. 그러다 거기에 시를 입혀 문인화를 그리게 됐다.
―적지 않은 연세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유는.
▲요즘은 100세 시대다. 80세가 되어서도 나처럼 다른 새로운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인화를 그리면서 김 화백이 그림에는 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이 있다고 했다. 내 그림은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그림과 함께 쓴 글이 사람들에게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그림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 두 마리가 날아가는 그림에다 '맨손의 새는 자유로이 난다'라는 글을 덧씌우면 사람들이 한번 더 생각하는 문인화가 되는 것이다. 이를 묶어 '여든 소년 산이 되다'라는 책도 출판했고 6월 4일에는 경인미술관에서 전시회도 연다. 80세가 넘어도 이렇게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다. 특히 그림을 그리고 나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 생겼다.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예전에 '시'라는 영화에서 시를 잘 쓰려면 사물을 잘 관찰해야 한다는 대사가 있었다.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글귀를 입히다보니 사물 하나하나가 자세하게 보이고, 깊이 보게 된다. 세월호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사람이나, 성격이 급하거나 잡념이 많고 주의 집중이 안 되는 사람은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림을 아예 못 그리던 나도 해내지 않았나.
―정신건강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우리가 어렸을 때는 춥고 배고프고 신체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여유가 없어서인지 마음이 힘들진 않았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춥고 배고픈 사람은 없지만 취업이 안 되는 등 마음이 힘든 사람이 많다. 특히 30~40대에 일이 잘못됐다고 '난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100세 시대다. 30~40대라도 마라톤 풀코스에서 절반도 돌지 않은 것이다. 지금 조금 힘들어졌고 뒤처졌다고 해서 인생 마지막까지 그 상황이 이어지라는 법은 없다. 자학하지 말고 다시 힘을 내보도록 해야 한다.
■이시형 박사는..
정신과 의사이면서 국민 정신건강 주치의다. 80세임에도 불구하고 세로토닌 문화원 이사장이자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서울사이버대 석좌교수, (사)한국산림치유포럼 회장,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 한국청소년희망재단 이사장 등을 맡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7년에는 강원 홍천에 한국 최초의 웰니스 마을인 힐리언스 선마을을 세우면서 국민의 정신건강 힐링에 앞장서고 있다. 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는 '배짱으로 삽시다' '100세 시대 젊고 건강하게' '세로토닌하라'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76번째 저서인 '여든 소년 산이 되다'를 펴냈다.
■약력 △80세 △대구 △경북대 의대 △미국 톨레도대 머시병원 인턴 △예일대 정신과 후박사 △경북대 의대 정신과 교수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교수 △강북삼성병원 원장 △성균관대 의대 교수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제천국제한방바이오 엑스포조직위원회 위원 △국방부 정책자문위원회 인사복지분과위 위원 △(현)(사)세로토닌 문화원장 △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서울사이버대 석좌교수 △(사)한국산림치유포럼 회장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 △한국청소년희망재단 이사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