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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사회 만들자] (1·①) "서있는데 안전벨트 메라고?".. 대한민국의 현실

최경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5.25 16:55

수정 2014.10.27 04:36

[책임지는 사회 만들자] (1·①) "서있는데 안전벨트 메라고?".. 대한민국의 현실

[책임지는 사회 만들자] (1·①) "서있는데 안전벨트 메라고?".. 대한민국의 현실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신의 생활 주변을 돌아보는 국민이 많아졌다.

일상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에 스스로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옳은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눈감고, 편법에 길들여진 생활을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한다.

사회 구석구석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박혀 있는 모순들은 시민의식 변화만으로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보여준 시민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목숨을 건 잠수를 감행했던 민간잠수사, 내 일처럼 유가족을 돌본 자원봉사자, 유족과 고통의 나날을 함께한 천안함 유족들이 있었다.

파이낸셜뉴스는 세월호 참사에도 여전한 안전불감증과 잘못된 관행들을 되돌아보고 비극 속에서 희망의 꽃을 피운 이들의 이야기를 총 2부 6회에 걸쳐 게재한다.



강원도의 한 시골마을, 초등학생들의 통학길 안전을 위협하던 17.98㎡의 단층 건물 하나 철거하는 데 3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생활 속의 '작은 세월호'다.

태백시 통리초등학교는 학교 가까운 곳에 철도가 지나간다. 학생들은 이 철도 건널목을 지나 등하교를 한다. 철도 옆에는 건널목지킴이가 사용하던 작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아이들의 시야를 가려 다가오는 기차를 볼 수가 없다. 건널목 안전을 지켜주던 건물이 지금은 한 업체의 창고로 쓰이고 있고 지킴이도 없어 오히려 위험시설로 변질됐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과거 자동차와 열차가 추돌하는 사고도 있었고 인명피해도 발생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건널목에 안전시설을 요구하는 민원이 제기돼 왔다.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김모씨는 지난 2012년 공식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철도시설공단에 건물을 철거하고 안전시설을 보강하라고 요구했다. 자신도 이 학교 졸업생인 김씨는 30여년 전부터 위험한 철길을 건너 다녔는데 자식까지 같은 길을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다른 학부모들도 동참했다. 그러나 공단과 관계 당국의 무관심 속에 1년6개월을 끌었다. 민원이 해결되지 못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세월호 참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씨가 처음 시설공단에 민원을 제기했으나'불가' 통보를 받은 이유는 이 건물이 철도시설공단 소유이지만 민간 업체가 임대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시설물을 사용 중인 민간업체는 공공의 안전보다는 작은 이익에 급급했다. 이 지역 철도는 한 석탄 회사가 무연탄을 나르는 용도로 사용 중이었고 문제의 건물도 무연탄 운송을 위한 창고로 사용 중이었다. 시설공단은 이 업체가 창고로 계속 사용하겠다고 하자 철거가 어렵다고 주민들에게 통보했다. 김씨는 경찰과 태백시에도 민원을 넣었다. 관계 당국은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렸지만 강제할 권한은 없었다.

4개 기관이 얽혀 있는 일이었지만 책임지는 곳이 없어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하자 김씨는 서울에 있는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 호소했다. 결국 권익위원이 수차례 현장을 방문해 문제가 커진 뒤에야 해결 움직임이 보였다.

권익위 관계자는 "모두 다 건널목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었지만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의견을 모아야 처리가 가능했는데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이 우리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생활 속 작은 일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국민들은 '내가 세월호 선원이었다면 관행처럼 행해온 과적에 반대할 수 있었을까. 출항이 늦더라도 화물을 단단히 결박해야 한다고 따질 수 있었을까'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다. 참사 이후 안전 의식이 변화하는 움직임은 곳곳에 나타나고 있 다.

지난 23일 아침 출근시간, 경기 수원에서 서울 강남 방향으로 향하는 좌석전용 'M버스' 안에서 운전기사는 고속도로 진입을 앞두고 "안전 벨트를 매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이전에 이미 안내방송에서는 같은 주문이 있었지만 기사가 재차 강조한 것이다. 승객들은 주섬주섬 벨트를 찾아 모두 채우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앞자리 승객 몇몇만 못이기는 척 벨트를 맸던 풍경이 지금은 확연히 바뀌었다. 스스로 벨트를 이미 매고 있던 승객도 상당수였다.

세월호 이후 달라진 풍경들을 시민들이 몸소 체험하고 있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가 비슷한 대책을 반복했듯이 시민의식도 반짝 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는 확실하다. 하지만 시민 의식이 높아져도 안전불감증을 강요하는 시스템은 여전하다.

같은 날 또 다른 버스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같은 노선을 운행하는 광역급행버스가 정류장에 멈춰서자 운전기사는 "조금씩 들어가 주세요"라며 통로에 서 있는 승객들에게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다그쳤다.

그 틈을 비집고 버스 앞문에는 또 3명이 올라타 출입문 계단까지 점령했다. 운전기사가 하차용 뒷문을 열자 이번엔 그쪽으로 4명의 승객들이 올라탔다. 좌석에 앉은 승객이 45명, 통로를 메운 승객 30여명, 이렇게 70여명의 승객이 꽉 들어찬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100㎞가 넘는 속도로 내달렸다. 버스라고 도로교통법상 고속도로에서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 규정이 예외일 리는 없다. 그러나 관행으로 여겨 단속하지는 않는다. 승객들은 손잡이를 꽉 잡는 것 외엔 달리 안전을 도모할 방법이 없었다.

앞서 안전밸트에 대한 달라진 풍경은 좌석제로 운영되는 'M버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입석이 허용되는 대부분 수도권의 광역급행버스는 여전히 위험을 안고 있지만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작은 세월호'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고 입석을 금지하는 입법을 예고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노선 조정을 놓고 지자체 간 이견이 있고 버스업체가 늘어날 부담을 떠 안아야 하는 문제 등은 풀리지 않고 있다.

2013년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2011년 기준)를 보면 우리나라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101.2건으로 OECD내 1위이며 프랑스(16.5), 스페인(26.6), 영국(44.6), 일본(83.5)에 비해 아주 높은 수준이다.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역시 10.5명으로 폴란드(11.0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고 영국(3.1), 일본(4.3) 독일(4.9) 프랑스(6.1) 등 주요 선진국과 크게 차이가 난다.

승객 안모씨는 "나는 통로에 서 있는데 운전기사가 앉아 있는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얘기하는 걸 듣고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요금은 똑같이 냈는데 늦게 탄 승객은 죽어도 좋다는 것인지 할말이 없다"고 말했다.

khchoi@fnnews.com 최경환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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