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뒤뚱뒤뚱 세월호 국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6.12 17:43

수정 2014.06.12 17:43

[fn스트리트] 뒤뚱뒤뚱 세월호 국조

조선 선조 때 집권 사림이 분열됐다.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인사권을 쥔 이조정랑 자리를 놓고 김효원을 지지하면 동인(東人), 심의겸을 지지하면 서인(西人)으로 갈렸다. 김효원의 집이 도성 동쪽, 심의겸의 집이 서쪽에 있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건전한 토론만 보장된다면 당파라고 다 나쁜 건 아니다. 동인·서인은 그렇지 않았다.
선조 23년(1590년) 조선은 일본 정세를 정탐하러 통신사를 보냈다. 선조는 정사에 서인 황윤길, 부사에 동인 김성일을 임명했다. 이듬해 귀국해서 제출한 보고서는 180도 달랐다. 황윤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 "눈빛이 반짝반짝한 게 담과 지략이 있는 인물인 듯하다"고 평가했다.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아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된다"고 폄하했다. 보고 내용이 충돌하면 정사의 말을 따라야 하지만 당시 집권세력이던 동인은 서인 정사의 말을 무시했다. 그 결과 조선은 무방비 상태에서 임진왜란을 맞았다.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가 삐걱거리고 있다. 증인을 놓고 한바탕 씨름이더니 이젠 기관보고 일정을 두고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새누리당은 월드컵 기간 중이라도 속전속결로 처리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철저한 사전조사가 먼저라며 월드컵 뒤로 미루자고 맞서 있다. 어느새 세월호가 월드컵의 종속변수로 전락한 것 같아 입맛이 쓰다. "해답은 현장에 있다"며 특위 현장본부를 진도체육관에 설치하고 현장 담당 의원을 배정하겠다던 약속도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26년 전인 1988년 13대 국회는 5공 청문회를 열었다. 이때 이른바 청문회 스타들이 떴다. 그중에서도 초선이던 노무현 의원은 단연 돋보였다. 그는 5공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장세동 전 대통령 경호실장을 조리 있고 당당하게 몰아붙였다. 청문회 마지막 날(1989년 12월 31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집어던진 것도 노무현이었다. 그 명패엔 분노한 민심이 담겨 있었다. '대통령 노무현'의 싹은 그때 텄다.

세월호 국조 특위는 오는 8월 청문회를 열 계획이다. 세월호 사고를 다루는 청문회에서 스타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하지만 가족들 나아가 국민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의원이 있다면 진상규명의 스타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8월 청문회에서 과연 스타를 볼 수 있을까. 전망은 어둡다.
현 19대 국회는 약체다. 폼만 잡지 고된 일은 외면한다.
어영부영하다 21세기판 임진왜란 보고서가 나올까 걱정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