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3부·1) ‘후원금 앵벌이’ 나서는 보좌관들.. 오세훈법의 ‘구멍’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6.17 16:38

수정 2014.06.17 16:38

[우리의 문제는 정치에 답이 있다] (3부·1) ‘후원금 앵벌이’ 나서는 보좌관들.. 오세훈법의 ‘구멍’

"난 '오세훈법'의 최대 수혜자다. '오세훈법'이 없었다면 정치권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검은 돈'에 손 벌리지 않고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돈 선거'에는 부정부패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 출신 중진 의원

'오세훈법'은 정치인의 팔과 다리를 자른 악법이다.
최근 의원들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편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행태나 '후원금 쪼개기' 등도 모두 '오세훈법'의 풍선효과라 할 수 있다. 18대 국회 초선 의원
정치권의 도덕적 타락과 돈선거가 횡행하던 2000년 초 국회는 특단의 정치개혁을 단행한다. 현재의 정치활동과 선거운동 등을 규정하고 있는 정치관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16대 국회 말인 2004년 3월 국회를 통과한 정당법.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개정안 등 이른바 '오세훈법'이다. 이 법이 통과된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그러나 정치권의 도덕적 타락과 돈선거의 폐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편법과 음성적 활동에 능한 정치인만 살아남는다는 불만도 나온다.

■모금 한도액 못 모으면 의원실 '비상'

해외에 체류 중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대신해 본지 인터뷰에 응한 핵심 참모는 당시 정치상황과 관련, "어느 정당, 정치인 할 것 없이 집회식 개인후원회와 정당후원회를 통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며 "법인이나 각종 단체와 '선(先)후원.후(後) 대가' 형태의 악순환이 반복됐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4년 현재 정치권은 '쪼개기 후원금'(여러 사람 명의로 나눠서 건넨 불법후원금)과 출판기념회란 탈을 쓴 정치자금 모금 행사 등으로 또 다른 형태의 비리사슬을 구축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의 '은밀한 거래'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의 감시망을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세훈법이 낳은 부작용 중 하나인 '쪼개기 후원금'. 개인이 기부한 정치자금에 대해 최대 10만원의 세액을 공제해주는 현행법을 악용하는 사례다.

현재 정부 부처로 자리를 옮긴 전직 보좌관 출신 A씨는 "연말까지 법정 모금 한도액을 달성하지 못하면 의원실별로 비상이 걸린다"며 "심기가 불편해진 영감(의원을 지칭하는 은어)들의 앵벌이 압박이 엄청난 스트레스"라고 전했다.

이 경우 보좌진은 그동안 의원이 받아온 각종 명함을 비롯해 피감기관, 특히 공기업에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넣어 후원금 모집에 나선다

A씨는 "10만원 이하 기부는 사실상 그대로 돌려받기 때문에 서로 부담이 없다"며 "가장 만만한 피감기관에 부탁하면 보통 소속 직원 50명 정도(500만원)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는 물론 후원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는 주소까지 넣은 명단을 의원실로 가져다준다"고 밝혔다. 이어 "간혹 본인의 정치 성향과 다른 의원에게 후원금을 내는 데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언론이나 선관위에 제보하는 사례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현행 법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회의원들의 모럴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는 원외인사가 됐을 때 절정에 이른다.

오세훈법 시행으로 폐지된 지구당이 당원협의회란 조직으로 재탄생,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지구당과 달리 당원협의회의 활동사항 및 회계 내용은 선관위의 감독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편법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17, 18대 국회에서 보좌하던 중진의원이 낙선한 후 현재 초선 의원실에서 근무 중인 B씨는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낙선한 이들이 해당 지역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재기를 모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지역 토착세력들이 월 100만~200만원씩 쥐어주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보험료 납부 형태로 매달 일정 금액을 챙겨주면 해당 위원장이 원내 진입 시 더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조치다.

B씨는 "단적인 예로 16, 17대 국회의원이 18대 때 떨어진 후 19대 국회를 통해 금배지를 다시 다는 경우가 있는데 4년 가까이 백수로 지낸 이들이 무슨 돈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재기에 성공했는지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오세훈법 시행 10년, 입법 초기 당시 대다수 의원은 "4.15 총선 직전 급조된 법"이라며 개정 의지를 불태웠지만 현재는 선관위의 개정 의견까지 묵살할 정도로 이를 악용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18대 국회에 이어 지난해에도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용 공개 강화를 골자로 한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하고 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며 "탈법과 편법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고 있지만 불법으로 규정할 만한 근거가 마땅치 않아 적발하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도 "오세훈법은 후원금이 적을수록 좋다는 오류에서 출발한 실패작"이라며 "돈 안 드는 선거가 아니라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쓸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법 정치자금의 대명사가 된 출판기념회는 부도덕의 온상이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핵심 당직자를 보좌했던 C씨는 "서울 여의도에서 출판기념회를 열면 현금으로 5억원가량이 들어왔다"며 "이후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의원 본인만 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국회의원 후원회의 연간 모금 한도액이 1억5000만원임을 고려하면 3배가 넘는 돈을 단 하루 만에 거머쥐는 셈이다.

■출처도, 사용내역도 확인 못해

더욱이 이 돈은 현금다발 그대로 여행가방이나 골프백 등에 담겨 의원 자택의 사금고로 직행한다는 게 여러 정치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런데도 선관위 등 당국은 이 돈의 출처나 사용내역을 확인할 수 없다. 출판기념회가 날로 음성화되기 때문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각 후원회는 매년 12월 31일까지 선관위에 회계보고를 해야 하지만 출판기념회를 통해 들어온 돈은 정치자금이 아닌 축의금 형태로 보기 때문에 보고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원외 당협위원장이나 정치지망생들까지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모을 정도로 그 폐해가 극에 달한 만큼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책 보좌관 출신으로 현재 기업 대관업무를 하고 있는 D씨는 "서점에는 나오지도 않는 의원들 자서전 한 권에 1000만~2000만원을 내고 가는 사람이 있다"며 "대부분 피감기관 소속인데 이 돈을 정치자금으로 분류하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취재팀 이두영 부장 김기석 전용기 최경환 김학재 김미희 예병정 박소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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