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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그 사람은] (11) 2010년 2월26일 오후 2시 김연아, 전설이 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07 17:02

수정 2014.07.07 17:02

[그 시절, 그 사람은] (11) 2010년 2월26일 오후 2시 김연아, 전설이 되다

[그 시절, 그 사람은] (11) 2010년 2월26일 오후 2시 김연아, 전설이 되다

2000년 이후 대한민국은 큰 변화를 겪어 왔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미국발 금융위기,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9·11테러, 가계 부실, 집값 하락, 내수경기 침체, 세월호 참사 등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다사다난했다. 이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도 명멸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창간 14주년을 맞이하여 창간 이후 21세기 대한민국을 움직였던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을 14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 따고 싶어요."

지난 2000년 11월 30일 방영된 한 방송사의 뉴스에서 앳된 소녀가 말했다. 인터뷰는 처음인 듯 시선은 카메라를 쳐다보지 못했다. 자막에는 '김연아 신흥초등 4년'이라고 나왔다. 10년 뒤인 2010년 그 소녀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피겨계에 한 획을 그으며 밴쿠버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기록으로 '피겨 여왕'에 등극한다.


■2010년 대한민국을 녹였다

"78.50. 쇼트프로그램 역사상 최고의 점수입니다. 현 채점제도에서 세계신기록입니다."

2010년 '007 메들리'에 맞춘 김연아의 연기가 끝나고 점수가 발표되자 미국 NBC의 해설위원은 마치 자국 선수가 우승이라도 한듯 목소리를 높였다.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 종목에서도 150.06점을 받으며 합계 228.56점이라는 전무후무한 점수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피겨 여왕, 피겨계의 신, 피겨계의 비욘세, 퀸 연아 등. 세계 각국 외신들은 지난 5월 김연아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경쟁적으로 경의를 표했다. 앞서 '비엘만 스핀'의 창시자인 스위스의 데니스 비엘만은 영국의 로빈 커슨스, 러시아의 예브게니 플루셴코 그리고 김연아를 역대 가장 완벽한 스케이터로 꼽았다. 미국 피겨 전문 칼럼니스트인 제시 헬름스도 최근 한 칼럼을 통해 "소냐 헤니, 페기 플레밍, 자넷 린, 도로시 해밀, 김연아가 역대 최고의 피겨 전설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일부 팬은 김연아를 '전설 위의 전설'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연아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계에 한 획을 그은 별이 됐다.

김연아는 가장 듣기 좋은 수식어로 '2010 밴쿠버 올림픽 챔피언'을 꼽았다. 가장 싫어하는 별명은 '피겨 요정'으로, 그 이유는 '손발이 오글거리기 때문'이란다.

■꿈과 노력으로 일군 성취

김연아는 1996년 여섯 살에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 김연아는 피겨와의 첫 만남을 '세렌디피티(전혀 뜻밖의 행운)'라고 회상했다. 군포 신흥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선수의 꿈을 키워 남다른 재능을 나타냈다. 한국 피겨 스케이터로서는 처음으로 열두 살에 트리플 점프 5종을 모두 완성했다.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인 2002년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 13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된 김연아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ISU 주니어 그랑프리와 세계선수권에서 1위, 2위의 성적을 거뒀다. 이후 김연아는 은퇴하기까지 수많은 기록과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며 피겨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김연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단어는 '꿈'과 '노력'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영감을 준 책으로 호주의 전직 TV 프로듀서인 론다 번이 쓴 '시크릿'을 꼽았다. 책의 메시지는 이렇다. 세상에서 성공을 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으며 그 비밀은 '끌어당김의 법칙', 즉 생각이 현실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생각이 장차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끊임없이 노력할 때 소망은 현실이 된다.

김연아는 자신의 재능과 노력은 '반반'이라고 밝혔다. 타고난 재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김연아의 식단만 해도 그렇다. 체중 조절을 위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빵과 떡볶이 등은 입에 대지 않는다. 하루 3시간씩 10년,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하다는 '1만시간'도 김연아가 빙상 위에서 보낸 시간과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발목 인대 부상, 2006년 말부터 이어진 고질적인 허리 통증, 2008년의 고관절 부상 등 여왕의 화려함 뒤에는 김연아가 감내한 고통의 시간이 함께 있다.

■인생 제2막 IOC위원 꿈꾼다

김연아는 지난 6월 3일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과에 합격했다. 오는 9월 등록을 마치면 대학원생으로서 새출발하게 된다. 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싱글 판정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큰 변수가 없는 한 결과가 바뀌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거취에 대해 김연아가 구체적인 발언을 한 적은 아직 없다. 2018년 IOC 선수위원에 도전할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올해 러시아 소치올림픽에 출전한 이유도 IOC 선수위원이 되기 위한 자격을 얻기 위해서였다. 2018년 선수 투표를 통해 상위 1·2위에 들면 IOC 선수위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2016년 하계올림픽에서 진종오나 장미란 선수가 선수위원으로 선출되면 규정상 자격을 잃게 된다.
만약 IOC 선수위원의 꿈이 무산되면 현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수행하고 있는 IOC 일반위원 자리를 노려볼 수도 있다. 이 회장의 임기는 2022년까지이지만 이 회장의 건강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대학원 졸업 후 피겨 해설가나 후진 양성에 전념하거나 혹은 김연아의 방송계 진출도 가능한 대안 중 하나로 보인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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