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는 "1984년 세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보육원에서 도망쳤다"면서 "앞서 두 번 실패했을 때는 원장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도가니'를 보니 그때 생각이 난다"면서 1983년에는 경찰이 원장을 잡아갔다가 다시 풀어주는 일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유씨는 충남 천안에서 구두닦이, 중국집 배달원 등을 하다가 열아홉 살 때 안양으로 올라왔다.
유씨는 어렴풋이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파마 머리에 미인으로 기억한다"며 "소도 길렀고 집 뒤에 엄청나게 넓은 밭이 있었는데 어딘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씨는 미아가 될 당시의 상황도 대강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할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살던 곳은 작은 읍내였는데 할머니 등에 업혀 논길을 걸은 적도 있고, 실수로 농약을 마셔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간 적도 있다. 어느 날 혼자 돌아다니다 길을 잃었고 이름 모를 면사무소와 충남 홍성군청을 거쳐 도내 모 보육원으로 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씨에 대한 기록은 보육원 입소 연도와 당시 나이, 이름 정도만 남아 있을 뿐 살던 곳이나 처음 발견된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마저도 진짜 본인의 것인지 유씨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믿을 수 있는 것은 이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대개 이름을 모를 경우 보육원 원장의 성을 따르는데 유씨인 것을 보면 이름은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이는 내 몸을 보고 추정했을 수도 있고, 생일은 나한테 물어서 알아냈을 수도 있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가 생일까지 알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유씨는 자신이 처음 발견된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 수년 전 홍성군청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공무원이 "담당자가 없다"며 전화를 끊었고 유씨는 다시 전화를 걸지도, 홍성군청을 직접 찾아가지도 않았다. "공무원들이 귀찮다고 여기고 알려주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유씨는 고향이 어딘지, 형제는 어떻게 되는지, 친인척은 몇 명이나 되는지 등 알고 싶은 것이 많다. 부모님께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게 그의 가장 큰 소원이다. 그는 "부모님의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해도 좋고, 연세가 드셔서 거동이 불편하시다 해도 괜찮다"며 "만나서 같이 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보고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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