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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투어와 함께하는 세계여행] (1) 태고 신비 간직한 코스, 도원이 바로 여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7.24 18:00

수정 2014.10.24 22:32

백두산 천지 일대는 연평균 267일 안개가 낀다. '백 번을 올라야 두 번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백두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모습을 드러낸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 장엄하다. 사진=강문순 기자
백두산 천지 일대는 연평균 267일 안개가 낀다. '백 번을 올라야 두 번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백두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모습을 드러낸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 장엄하다. 사진=강문순 기자

■ 백두산 천지·옌볜 여행

【 옌볜(중국)=강문순 레저전문기자】 백두산 천지를 처음 본다는 설렘을 안고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랐다. 백두산 여정의 백미 천지. '백 번 올라야 두 번 정도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해 백두산'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만큼 정상의 기상 변화가 심하다는 얘기다. 백두산 천지 일대는 안개 일수가 연평균 267일이라 3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고도 한다. 그만큼 천지는 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7월 중순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인데도 관광객들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패딩코트를 입어야 한다. 거센 비바람에 손이 곱을 정도여서 체감온도는 빙점 아래다.

백두산(중국명 장백산)은 2004년 중국 10대 명산으로 선정되면서 해마다 20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중국에서 천지를 오르는 길은 북파, 서파, 남파 세 곳이고 여기에 북한의 동파를 합쳐 총 네 곳이다. 여기서 파(坡)는 고개·언덕을 뜻한다. 백두산은 천지를 분할해 북한이 54.5%, 중국이 45.5%를 가지고 있다. 천지까지 가는 데는 몇 차례 절차가 필요하다. 먼저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한다. 가격은 성수기·비수기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는데 한화로 1인당 8만~10만원으로 비싼 편. 표를 끊으면 관리소 측이 운영하는 버스로 다시 20분을 달린 뒤 이곳에서 다시 지프로 갈아타고 15분 정도 갈 지(之)자 굽은 길을 오르면 2700여m 고지의 천지가 코앞인 종착지에 도착한다.

백두산 비룡폭포(장백폭포)는 200m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중국 북방의 폭포들은 겨울에 모두 얼지만 오로지 비룡폭포만은 1년 내내 웅장하게 흐른다.
백두산 비룡폭포(장백폭포)는 200m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중국 북방의 폭포들은 겨울에 모두 얼지만 오로지 비룡폭포만은 1년 내내 웅장하게 흐른다.

천지의 기상에 따라 비룡폭포(중국명 장백폭포)는 올라가다가도 내려가다가도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웅장한 폭포였다. 60m가 넘는 길이의 폭포로 200m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중국 북방의 폭포들은 겨울에 모두 얼지만 오로지 비룡폭포만은 일 년 내내 웅장하게 흐른다.

인천공항에서 백두산 천지를 가려면 지린성 옌지국제공항으로 가야 한다. 중국 국내선을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도 없고 4시간 정도면 백두산까지 갈 수 있다.

■중국 속의 코리아타운, 옌지

옌지는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다. 말 그대로 중국 속의 한인촌으로 한국의 한적한 도시에 와있는 느낌이다. 관공서, 교통표지판, 상가 간판 등의 글자는 모두 한글이 우선이고 밑에 한자를 병기한다. 이곳에는 조선어 라디오 방송국과 신문사가 있으며 조선인이 세운 옌볜대학교와 옌볜과학기술대학교가 있다. 옌지는 조선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해 개척한 곳으로 이전에는 '북간도'라고 불렀다. 1952년 자치구가 설립되고, 1955년 자치주로 승격했다.

그런데 지금 옌볜조선족자치주는 인구가 감소해 자칫하면 자치주가 취소될 큰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한국 입국 절차 간소화로 부모들은 자녀 학비와 양육비를 벌기 위해 한국으로 빠져나가고 젊은이들은 취직을 위해 인근 대도시로 빠져나가 옌볜 자치구를 유지할 수 있는 절대 인구가 부족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2010년 통계에 의하면 옌볜자치주의 총 인구는 약 227만명이고 이 중에 조선족은 약 83만명으로 36.5%를 점유하고 있는데 초기인 1953년의 70.5%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주는 소수민족의 인구 비중이 전체의 30% 미만이 되면 자치주가 강제로 해제될 수도 있다.

천지 휴게소에서 만난 컵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천지 휴게소에서 만난 컵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옌지에서 용정, 화룡, 이도백하를 거쳐 백두산 천지로 가는 길엔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어 한국인이라면 필수로 돌아봐야 할 코스다.

학창시절 우리가 즐겨 불렀던 가곡 '선구자'의 모티브가 된 일송정(一松亭)과 해란강. 용정시에서 약 3㎞ 떨어진 비암산에 있는 일송정은 원래 산 정상에 우뚝 선 한 그루 소나무로 그 모양이 정자처럼 생겼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용정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곳이었으며 산 정상에 독야청청한 모습의 일송정은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상징이었다. 일제는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이 소나무에 위해를 가해 1938년 결국 고사시켰다고 전해진다. 1991년 3월 용정시 정부는 한국 각계 인사들의 후원으로 옛 자리에 소나무를 다시 심어 복원하고 정자를 신축해 그해 9월 준공했다.

용정시 명동촌에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명동학교 옛터가 있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 뜰의 돌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가 적혀 있어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명동학교는 1906년 설립됐다가 1년 만에 폐교된 '서전서숙'의 민족교육 정신을 계승해 1908년 화룡현 명동촌에 설립한 학교다. 3·1운동 때는 주민과 더불어 대대적으로 독립운동을 해 많은 희생자를 냈다.

화룡에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유적지가 있다.
청산리 전투(청산리 대첩)는 김좌진 장군이 지휘하는 북로 군정서군, 홍범도 장군이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이 주축으로 활약한 독립군이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청산리 백운평.천수평.완루구 등지에서 10여 차례 일본 제국과 벌인 전투를 일컫는다. 청산리 전투는 독립군 병사들의 영웅적 분전, 지형을 적절히 이용한 지휘관들의 우수한 유격작전, 간도지역 조선인들의 헌신적인 지지와 성원이 함께 어우러져 이뤄낸 승리로 평가받고 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홍범도.최진동.안무 등이 이끄는 대한북로독군부의 독립군 연합부대가 중국 지린성 화룡현 봉오동에서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와 싸워 크게 이긴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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