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모두가 존경하는 위인으로 이순신만한 인물이 또 있을까. 관객 모두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영화화하기 힘든 인물이 바로 이순신이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 '명량'은 정공법을 택했다. 사실 그대로 명량해전 승리를 그려낸다.
동시에 영화는 지금껏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이순신의 고뇌, 병사와 민초들의 처절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결말이 정해진 영화를 보면서도 수많은 관객의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다.
'명량'은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 수군이 궤멸한 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영화 전반 한 시간가량은 수군 내부의 의견 대립, 수군을 육군에 통합하라는 조정의 명령에 둘러싸인 이순신의 고민과 번민으로 채워진다. 여기에 조선을 완전히 손에 넣으려는 일본의 움직임까지 더해 영화는 묵직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일부에선 지루하고 늘어진다고 평가하지만 이 같은 전반부 드라마는 승산 없는 전투를 준비하는 이순신의 마음과 관객의 호흡이 유기적으로 걸음을 맞추도록 돕는다. 그렇게 이순신은 이름과 역사로만 존재하는 위인에서 치열한 번뇌에 휩싸인 한 사람이 되어 관객에게 다가온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결기로 시작하는 전투는 러닝타임의 절반인 61분간 이어진다. 긴 시간에 걸친 만큼 전투 장면은 치열하면서도 섬세하게 흐른다. '성웅' 이순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동시에 실제 전투에 가담한 병사와 백성들의 피와 땀을 외면하지 않는다.
왜선의 압도적인 규모 앞에서 아군이 도망갔을 때 홀로 제자리를 지키는 이순신과 그의 대장선을 보며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곧이어 전개되는 현란한 화포 공격으로 왜선이 가라앉는 장면에서 관객은 이순신의 지략과 용맹함에 감탄한다. 성웅의 위대함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그러나 전투가 길어질수록 일반 병사와 민초의 움직임이 관객의 시선을 더욱 빼앗는다. 왜선이 다가와 벌어지는 백병전에선 왜군과 뒤엉킨 조선 수군의 처절함이 롱테이크로 펼쳐진다. 폭발물이 가득 담긴 왜선의 공격을 방어하고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선 백성의 도움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관객은 이름 없는 병사가 승리를 만끽하며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나중에 후손들이 알까"라고 말하는 모습에 더욱 마음이 흔들린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가장 크게 위협한 구루지마(류승룡 분)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긴장감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구루지마를 보면 극 초반과 영화 포스터에서 묘사된 그의 강렬함이 모순처럼 느껴진다. 패배해야만 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구루지마의 허무한 최후는 다소 아쉽다.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주는 역사적 무게 탓에 한국인으로서 쉽게 왈가왈부하기 힘든 작품이다. 다행히 영화는 충분히 훌륭하게 만들어졌다.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 내막은 잘 몰랐던 이순신과 명량해전 그리고 가려졌던 일반 병사와 백성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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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 김종욱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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