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쓰레기로 지저분했던 도심 거리가 다음 날 아침이면 말끔하게 치워진 것을 보면서도 환경미화원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당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환경미화원은 대다수 사람이 잠자리에 든 꼭두새벽부터 거리로 나와 하루 종일 '쓰레기와의 전쟁'을 벌인다. 서울 시내에서 활약하는 환경미화원은 모두 2500여명에 이른다.
'깨끗한 거리를 보면서 피로를 모두 잊는다'는 환경미화원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봤다.
태풍 '나크리'가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2일 새벽 2시30분께 서울 영등포구청 청소과 소속의 환경미화원 이황용씨(47)를 문래동 도로가에 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쉼터에서 만났다. 이곳은 영등포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149명 가운데 영등포역 일대와 경인고속도로, 경인로를 청소하는 18명이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이씨는 연두색 야광작업복에 장화, 안전모, 토시, 장갑을 착용한 다음 대나무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빗자루 각각 1개, 쓰레받기, 쓰레기봉투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일을 나섰다.
■구석구석 담배꽁초 등으로 가득
쉼터에서 담당구역까지 손수레를 끌고 이동하는 데만 10분 가까이 걸렸다. 이씨가 청소를 맡은 구역은 영등포쇼핑센터 7번 출구에서 영등포역 앞까지 영중로 약 500m다. 유흥가이고 유동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쓰레기도 그만큼 많이 배출되는 이른바 '취약지역'이다.
이씨는 "영등포역 앞 중앙차로 버스정류장까지 포함해도 거리상으로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짧은 편"이라며 "일부 지역은 혼자서 2㎞ 넘는 구역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원칙적으로 담당구역이나 업무는 2년에 한 번씩 바뀐다. 그는 "영등포역 앞에서 대림동이나 여의도로 구역이 변경될 수도 있고 거리 청소를 하다 재활용 담당으로 옮기기도 한다"며 "그래야 다른 업무를 이해할 수도 있고 여러 동료와 어울릴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횡단보도에서 본격적으로 청소작업이 시작됐다. 여기저기에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대부분이 보도블록 틈에 끼여 있어 작업을 더욱 힘들게 했다. 플라스틱 빗자루를 일자로 세워 능숙하게 빼내는 그의 모습은 '생활의 달인'에서나 봄직한 장인(匠人)처럼 느껴졌다. 식당 건물 앞 계단에는 행인들이 버린 일회용 커피잔, 음료수 캔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여름에는 음료수 캔이나 병을 제일 많이 치워요. 편의점 이 외에 24시간 영업하는 커피전문점 등이 늘어나면서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그나마 다 마신 병이나 캔은 사정이 나은 편이에요. 반쯤 남은 캔이나 병에 담배꽁초까지 뒤섞여 있으면 악취에 치우기도 더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 환경미화원들은 여름보다는 겨울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추워서 사람들이 덜 돌아다니니까 쓰레기 양도 그만큼 줄어듭니다."
쓰레기는 이씨가 허리를 펴고 5m를 걸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만큼 '불타는 금요일'을 보낸 이들의 흔적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는 얘기다. 한 상가 앞에는 계단 여기저기에 취객들이 누워 잠자고 있어 청소를 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이씨는 특히 노숙자를 보면 가급적 피하려고 애쓴다. 괜히 부딪혔다가는 불편한 경험만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가장 난처할 때는 일부 노숙자가 아무 데서나 큰일(?)을 볼 때다. 그는 "누가 지나가건 말건 길거리에서 바지를 내린 채 대놓고 용변을 보는 이들이 가끔 있다"며 "아무 겁날 것 없는 술에 취한 노숙자와 시비가 붙어봐야 손해보는 건 우리라서 아무 말 하지 않고 묵묵히 청소만 한다"고 말했다.
■100L 봉투 하루 20∼30개 소요
어느덧 시곗바늘이 오전 4시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을 시작한 후 2시간 가까이 지났지만 종착지인 영등포역은 멀게만 느껴졌다. 이씨의 상의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고 간간이 손을 닦는 수건은 까매졌다. 휴대용 온도계를 꺼내보니 온도는 30.7도, 습도 50%였다. 그런데도 이씨는 "어제는 더위에 땀이 비오듯 쏟아져 일을 제대로 못할 정도였는데 태풍이 온다고 해서 그런지 오늘은 바람도 살살 불고 일하기가 훨씬 수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활용 쓰레기는 모아서 마대자루에 담고 폐기물은 도로 한쪽에 따로 쌓았다. 이런 쓰레기를 차로 실어가는 팀이 따로 있단다. 그새 이씨가 준비해온 100L짜리 쓰레기봉투 10장은 동이 났다. 그는 "대림시장 쪽에서는 하루 40~50장을 쓰는 경우도 있다"며 "이곳도 평소에는 쓰레기가 3배는 더 나오는데 이번 주가 확실히 휴가 절정기인 것은 분명한가 보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때였다. 환경미화원이 가장 얄밉게 생각한다는 행인들이 등 뒤에 나타났다. 방금 청소한 자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다. 2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담배를 피우며 서 있다가 택시가 오자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택시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치우고, 더럽혀지고, 또 치우는' 일상이 반복되니 화가 날 법도 하건만 이씨는 12년차 베테랑답게 여유를 보였다. 그는 "'이거 언제 해' '또 더러워지네' 등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일을 못한다"며 "금세 다시 더러워지더라도 청소하고 뒤를 돌아봤을 때 길이 깨끗해진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씨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당시 각각 초등학교 4학년이던 딸과 1학년이던 아들은 벌써 20대로 성장했다. 이씨는 "아버지가 환경미화원임을 숨기지 않고 친구들과 길거리를 지나가도 반갑게 인사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라며 "아들 녀석은 새벽에 나와서 직접 청소를 해보기도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조기퇴직과 취업난 등이 겹치면서 환경미화원의 인기도 과거에 비해 매우 높아졌다. 정년(60세)이 보장되는 안정성 덕분이다. 이씨는 "내가 입사할 무렵 영등포구청에서는 지원자 46명 중 13명이 선발됐는데 최근에는 6~9명을 뽑는 데 200여명이 몰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환경미화원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작업복'을 입었을 때는 여전히 홀대를 받기 일쑤다. 이씨는 "한 번은 작업복을 입은 채로 시장 상인에게 '이렇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상인이 노발대발하더라"라며 "정장을 차려입고 가서 환경미화원에게도 쓰레기 무단투기를 단속할 권한이 있다면서 얘기를 하니까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더라"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루 세 번 담당구역 반복 청소
오전 6시가 넘어가자 날이 완전히 밝아졌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눈에 띄게 늘었다. 마지막 고지는 다시 교차로다. 역시나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청소를 하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담배꽁초가 하얀 점처럼 수를 놓고 있었다. 이씨는 "돌아갈 때 다시 치우면 된다"고 말했지만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는 못했다.
잠시 후 이씨의 손수레와 똑같은 모양의 손수레를 만났다. 길 건너 영등포역광장을 맡은 이씨의 동료가 일을 일찍 끝내는 바람에 버스정류장을 대신 청소하고 왔단다. 이로써 오늘의 첫 임무는 마무리를 지은 셈이다. 이씨는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에 한 번,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하루 세 차례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오전 7시가 가까운 시간, 평소 같으면 아침식사를 위해 쉼터로 돌아갈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일이 더 남았다. 휴가를 간 동료의 구역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청소하러 가야 한단다. 이씨는 50L짜리 쓰레기봉투를 꺼내 손수레에 싣고는 빗질을 하면서 온 길을 되짚어갔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신아람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