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한류, 말잔치인가.. 성장동력인가] (8·끝) 韓·中·日 관계, 서로 친밀할 때 한류도 탄력

최경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12 17:55

수정 2014.10.24 11:50

[한류, 말잔치인가.. 성장동력인가] (8·끝) 韓·中·日 관계, 서로 친밀할 때 한류도 탄력


"한류, 중국 대공습." "일본, 한류에 무릎 꿇다."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흥행하면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웃 국가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기 원하는 대중들의 심리가 반영된 표현에 불과하지만 상대편에서 듣기엔 불편한 문구들이다.

이런 표현들이 해외에서 한류 바람을 일으키는 연예, 콘텐츠 사업자들에겐 부담으로 돌아온다. 원조 한류 스타인 배용준은 한류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말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연예기획사 JYP의 대표인 박진영은 한 인터뷰에서 "'일본 정벌'이나 '중국 정복' 식으로 지나치게 민족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외국에서 반한류기류를 조장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류라는 말이 국내에서는 자긍심으로 통하지만, 해외에서는 상대국을 얕잡아본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래서 한류는 요란한 행사와 대중 영합적인 정책으로 확산시키기보다는 상대국에 대한 배려와 차분한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냄비 한류는 우익의 먹잇감

최근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는 역사와 영토 문제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역사·문화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서로 얼키고 설킨 관계여서 정치·외교적 문제가 곧바로 한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독도 영유권,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일본 정부의 우경화 행보 등으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잃어버린 20년'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제대국, 일본의 상실감이 겹쳐 한국에 대한 반감이 '혐한류' 풍토를 낳았다. 이것이 일부 우익세력의 편협한 주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과 일본정부, 대중문화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2년 탤런트 김태희가 참석하기로 한 일본 화장품 브랜드 유키고고치의 CF 제작 발표회가 행사 하루 전 취소된 것은 단적인 예다. 일본의 우익들이 김태희의 독도수호 활동을 비난하면서 지속적으로 주최 측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 내에 혐한류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공중파 방송의 한류 스타 출연 감소, 각종 행사 취소 등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일본 교민 이모씨는 "독도, 위안부 문제 때문에 방송에서 한류스타들을 출연시키는 것을 꺼리면서 주요 공중파에서는 이들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 팬들의 한류스타에 대한 정치적 편견도 심각하다. 탤런트 전지현과 김수현이 중국 생수 헝다빙촨(恒大氷泉)의 광고모델이 된 것을 두고 국내에서 문제가 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중국 회사가 수원지를 "창바이산(長白山)"으로 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이용당했다고 공격한 것이다.

한류가 상대국가의 팬들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교민 이씨의 일본인 아내는 "일본에서 인기가 조금 시들해졌다고 바로 중국이나 타이완, 동남아 등지로 활동 장소를 옮기는 한류 스타들을 보면 솔직히 지금까지 일본 팬들은 돈으로밖에 안 보였나 하는 회의도 느낀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탤런트 장나라가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꾸 제가 중국에 가더라고요"라고 말한 것이 '중국에 돈 벌러 간다'는 말로 오해를 사 중국 팬들이 분노한 사례도 있다.

채지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산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일본 내 혐한류의 원인은 일본의 우경화와 아베노믹스 등 사회·정치적인 문제가 배경"이라며 "이런 문제로 문화가 피해를 받는 것이지 음악이나 드라마로 인해 혐한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상대국의 반한류 감정을 고려해 문화는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반한 감정이 너무 세면 마케팅을 덜 공격적으로 한다든지 하는 유동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류, 말잔치인가.. 성장동력인가] (8·끝) 韓·中·日 관계, 서로 친밀할 때 한류도 탄력


■규제 한방이면 무너진다

국내에서 수많은 한류 행사와 한류 정책들이 쏟아지면서 한류 띄우기를 강화하면 상대국의 경계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가 한류를 바라보는 태도는 '장점은 배우되 자국 산업의 토양은 보호하자'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서열 6위인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는 지난 3월 5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왕 서기는 베이징 인민예술극원장 장허핑의 보고를 듣던 중 발언을 끊고,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그 드라마를 봤나. 무슨 별이라고 하던데, 이것 봐라 공무원들이 아무도 모르고 있군, 한국 드라마가 왜 이렇게 중국을 점령하고 먼바다 건너 미국과 유럽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나, 한국 드라마는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참석자들을 질타했다.

왕 서기의 발언은 중국 문화산업도 더욱 분발하라는 지시였지만 자국 문화산업이 한국에 점령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런 지도부의 인식은 해외 산업에 대한 규제정책으로 이어진다.

드라마 '대장금'이 중국에서 크게 흥행하자 중국 정부는 외국 드라마에 대한 수입 제한을 실시했고, 예능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의 포맷이 대박을 터트리자 포맷조차 수입규제(방송사별 연간 1편) 조치를 내렸다.

우리나라 콘텐츠 수출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게임 역시 중국에 규제가 도입돼 기세가 한풀 꺾였다. 2004년 '온라인게임 제품 내용 심사 작업에 관한 문화부 통지'가 발표된 뒤 2005년에는 대중국 수출액이 전년 대비 20.6% 감소하고 수출 비중도 21.6%로 급격히 줄었다.

또한 2007년에는"외상투자산업 지도목록"에서 외국 게임업체가 중국 내에서 독자적으로 회사를 설립할 수 없는 규제정책을 발표한 뒤 한국 게임은 10위권에 1~2개가 링크될 뿐 6~7개를 중국 게임이 차지하고 있다. 규제 이전인 2006년에는 카트라이터, 경무단 등 7개 한국 게임이 10위권에 들었다.

■정부 역할은 숨은 조력자

한류는 일시에 큰 돌풍을 일으키지만 한편으로는 동아시아의 정치·외교 정세나 상대국의 규제정책에 대단히 취약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한류가 문화교류라는 상생의 코드로 자리 잡아야 하고 국가 차원에서 상대국과 상호협력하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맞춰 한류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협정이 하나 체결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시 주석의 방한 하루 전인 7월 3일 청와대에서 중국 신문출판광전총국과 '영화공동제작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2011년 8월 첫 논의가 시작된 지 3년 만의 성과다. 협정의 핵심은 한국영화도 중국과 공동제작영화로 승인받으면 중국 내에서 자국영화로 인정돼 스크린 쿼터 규제를 받지 않게 된다는 것. 양국 간 기술과 스태프들의 교류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협정의 의미는 중국 정부의 규제 정책을 해결하는 데 있어 양국 정부가 합의를 바탕으로 공동발전의 길을 찾았다는데 있다.

채 연구위원은 "문화산업은 실질적으로 문화상품을 파는 사람이 정책적인 키를 쥐고 있지 않다.
문화산업들이 꾸준히 커 갈수 있도록 정부는 기반을 만들어 줘야 한다"며 "문화산업이 워낙 영세한데, 이를 진정한 산업화 단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산업의 기초 인프라를 확보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khchoi@fnnews.com 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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