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4박5일간의 일정으로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커지면서 교황의 행적 및 방한의 의미에 대한 잘못 전달된 부분도 적지 않다.
■교황, 일본 먼저 방문할 뻔
일본 천주교회가 교황의 일본 방문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교황은 한국이 아시아청년대회 개최국임을 이유로 첫 순방지로 한국을 선택했다.
교황이 한국 방문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교황방한기간중에 충남·대전 지역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때문이다. 만약 아시아청년대회가 일본에서 열렸더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후 자신의 첫 번째 아시아 방문국으로 한국이 아닌 일본을 선택했을 것이다.
일반인 대부분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이유가 16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 대한 시복식'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첫 교황 방한이었던 1984년 5월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열린 김대건 신부와 동료 순교자 102위 시성식을 집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일정 가운데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바로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다.
■광복절에 맞춘 의도적 방한
일부에선 교황이 광복절인 8월15일에 맞춰서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8월15일은 한국에선 광복절로 국경일이지만 천주교에선 성모승천대축일이다. 성모승천대축일은 성탄절에 못지 않게 천주교에서 가장 중요한 축일중에 하나다. 제 6회 아시아청년대회'도 이 축일에 맞춰 개최해 의미를 더했다. 지난 1984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던 요한 바오로 2세는 5월중에 방한한 바 있다.
■방한 앞서 명동성당 괴담
교황을 방한을 며칠 앞두고 강풍의 영향으로 명동 성당 중앙 첨탑 십자가가 100여년만에 좌측으로 20도 정도 틀어졌다는 괴담이 돌았다. 이에 대해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이미 명동성당의 십자가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틀어져 있었다고 괴담을 일축했다.
괴담의 원인은 최근 명동성당이 대대적으로 진행한 진입로 리모델링 공사였다. 명동성당은 최근 진입로를 성당 정면으로 바라보게 조성했다. 그전에는 오른쪽으로 옆길로 성당에 진입해야 했다. 정면으로 새로 생긴 진입로로 성당으로 들어가다 보니 이전부터 기울어져 있던 십자가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 분과위원들도 현장을 방문해 서울대교구청 옥탑에서 수평 계측기를 이용, 십자가 상태를 관찰하고 2002년 실측 정사 사진과 같은 상태임을 확인하고서야 괴담 사건이 종료됐다. 다만 왜 처음부터 십자가가 약간 기울어져 있었는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광화문 미사에 백만 인파
교황이 16일 광화문에서 갖는 미사에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견됐다. 일각에선 50만명, 최대 100만명이 몰릴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는 경찰 추산과 추최측의 추산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찰의 추산인원이 더 적은 편이다.
이번 미사에서 전국 16개 교구의 17만2000여명이 공식 초청된 것을 포함해 총 5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예상이 가장 많다. 시복 미사 참석자 17만명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신원 확인은 한 달 전 마무리됐고 이들에게는 개인별 바코드가 새겨진 목걸이형 인식표가 주어졌다.
■교황은 이공계 출신
교황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딴 것으로 이력에 나온다. 교황을 영접한 박근혜 대통령이 물리학과를 졸업한 것처럼 이력이 이색적이다.
또 다른 기록에는 교황이 기술학교를 다니다 21세 때 예수회에 입문해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나온다. 산미겔 산호세대학에서 철학학위를 취득한 후 산타페,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지에서 문학 심리학 강의를 했다. 32세에 사제가 된 후에는 아르헨티나 지방을 돌며 목자로 활동하다 대주교(1998년)와 추기경(2001년)에 임명됐다.
■교황은 춤꾼
첫 남미 출신 교황인 만큼 탱고와 축구를 좋아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1936년 12월 1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철도 노동자 아들로 태어났다.
■교황은 3~4개 언어 달인
교황의 아버지는 이탈리아계 이민자다. 교황도 유창한 이탈리아어를 구사한다. 교황에 선출된 직후 바티칸 성베드로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이탈리아어로 "좋은 저녁입니다. 여러분의 환영에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신학 수업 이외에 칠레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스페인어는 물론이고 독일어에도 능통하다. 뛰어난 언어능력때문에 영어도 잘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교황은 상대적으로 영어는 그다지 잘 구사하지 않는 편인 것으로 전해졌다.
■교황은 구두쇠
교황은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대주교 시절 제공되는 관저와 기사가 딸린 리무진을 마다하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며 종종 식사도 손수 준비했다. 2001년 추기경에 임명되자 주변 지인들에게 "축하 인사를 위해 로마에 오는 비행기 표를 끊는 대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 나눠 주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청빈한 삶을 산 '프란치스코' 성인 이름을 따 즉위명을 택한 것도 그의 검소한 생활과 부합한다.
■결혼할뻔한 교황
교황도 젊은 시절 연애를 했지만 첫 사랑에 실패했다. 교황에게 청혼을 받았지만 거절한 것으로 알려진 할머니가 해외토픽에 오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플로레스 지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자란 아말리아 다몬테 할머니(76)는 어릴적 자신이 교황의 청혼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이제 백발에 안경을 쓴 할머니가 된 아말리아는 지난 1948년쯤 12살 소년 시절 그가 그녀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고 말했다.
아말리아는 "그는 내가 거절하면 신부가 되겠다고 했다"며 "그에게는 다행히도, 난 싫다고 했다"고 말했다.
새로 교황에 선출된 그의 모습에 그녀는 "TV 앞에서 얼어 붙었다"며 "호르헤가 교황이 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교황은 실용주의자
교황은 질병을 막기 위한 피임기구 사용에는 찬성하고 미혼모 자녀들에 대해 세례를 거부하는 사제들에게 위선이라고 비난하는 등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를 실용노선으로 이끈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군부독재 외면
교황은 지난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이어진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에는 침묵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정부군은 좌익세력과 '더러운 전쟁(Dirty war)'을 치렀고 이 과정에서 3만명이 납치되거나 살해됐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주교단 공동성명을 통해 군사독재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사과한 적이 있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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