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아이와 함께 대형 쇼핑몰을 찾은 주부 신모씨(32)는 자신의 친구인 박모씨(32·여)를 만났다. 아이가 누구냐고 묻자 신씨는 '이모'라고 알려줬다. 신씨와 박씨의 관계는 실제로 이모와는 무관한 친구 사이다.
#. 다섯 살배기 아이를 둔 이모씨(38)는 아이가 자신의 친형은 물론 친구들에게도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바로잡아줘야 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부터 친구들이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게 하면서 자연스레 아빠와 가까운 사람을 무조건 삼촌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촌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리고 그동안 삼촌이라고 불러온 친구의 호칭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혼란스럽다.
부모의 형제를 가리키는 '삼촌(외삼촌)'과 부모의 자매를 일컫는 '이모(고모)'의 명칭이 최근 젊은 층 부부들을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떠나 친구나 지인으로까지 일반화되면서 정확한 호칭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골프장에서는 캐디에게 남녀노소 불문하고 '언니'라는 호칭이 통용된 지 오래고 여성고객들은 백화점이나 식당에서도 연배가 비슷하거나 심지어 아래로 보이는 직원들에게 언니로 부른다. 세월호 실질 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는 '김엄마'라는 호칭이 주목을 끌기도 했다.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에서는 여신도를 성과 함께 엄마로 호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저출산의 영향으로 과거에 형제나 자매가 없거나 한두 명에 불과하고 이들마저도 떨어져서 자주 보지 못하는 시대상황에 따라 친한 친구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삼촌이나 이모로 호칭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효'사상과 문화가 혈연관계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만큼 무분별한 호칭 남발을 바로잡아 호칭체계나 가족관계를 둘러싼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다.
■"아줌마보다 이모가 친근"
14일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삼촌과 이모는 가족 호칭·지칭어로만 인정하고 있다. 전통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삼촌, 이모의 의미를 확장해 쓰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언어는 언중(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의 쓰임에 따라 의미가 바뀌므로 단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렵다는 게 국어원의 입장이다.
실제 삼촌·이모의 사전적 의미가 가족관계로 한정돼 있는데도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삼촌과 이모의 의미를 확장해서 쓰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자식에게 자신의 친구를 가리켜 '아저씨' '아줌마' 대신 삼촌, 이모라고 부르라고 하는 부모 대부분은 '친근감'을 가장 큰 이유로 든다. 4세 여자아이를 둔 김모씨는 "제일 친한 친구이기도 해서 딸아이도 친근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친구들을 이모라고 부르라고 한다"고 말했다. 결혼이 늦어지거나 미혼 증가의 시대상황도 삼촌, 이모의 의미 확대에 한몫하고 있다. 또래보다 일찍 결혼한 이유민씨(25)는 "친구 대부분이 미혼인데 이들을 아줌마라고 부르게 할 수 없어 '이모'로 호칭을 붙여주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다 출산율 저하로 형제자매가 크게 줄어든 만큼 삼촌,이모라고 부를 대상이 사라진 것도 무분별한 삼촌·이모 호칭 사용의 배경이 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언중의 자연스러운 언어사용 행태의 변화"라며 "변화가 지속될 경우 삼촌, 이모의 사전적 의미가 확장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내다봤다.
■"호칭체계·가족관계 혼란 우려"
세분화되고 체계화된 호칭체계는 한국어 고유의 특징이다. 영어가 숙모, 고모, 이모 등을 모두 'aunt'라고 처리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삼촌과 이모의 의미확대가 친근감 표현에서는 좋지만 자칫 우리의 호칭체계 전체를 흔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국어 전문가는 "우리나라의 세분화된 친족 지칭·호칭어들은 유교에 기반한 민족의 문화라 할 수 있다"며 "시대 상황에 따른 자연스러운 의미확장을 막을 수는 없지만 씁쓸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삼촌·이모를 자주 쓰던 젊은 부모층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오모씨는 "최근 딸아이에게 외가와 친가의 호칭어들을 가르쳐주는데 갑자기 내 친구인 '○○삼촌은?' 하고 물어서 난감했다"며 "언어사용을 조심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전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박나원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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