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정명훈 지휘자 "우리는 음악으로 통하고 음악으로 말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20 17:57

수정 2014.10.23 22:27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음악은 언어가 필요 없다. 음악으로 다 통하고 한마음이 될 수 있다"면서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이 더 가까워지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김범석 기자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음악은 언어가 필요 없다. 음악으로 다 통하고 한마음이 될 수 있다"면서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이 더 가까워지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김범석 기자

어떤 음악가로 대중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은 평생 해 본 적도 없다. 뭔가를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코딩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20일 파이낸셜뉴스가 만난 마에스트로 정명훈(61)은 이미 세계적인 거장답게 뭔가에 연연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이 60이 넘었으니 그만큼 했으면 편하게 해도 되지 않겠느냐"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음악이 점점 더 좋아지고 더 공부를 많이 하게 된다"고 말하는 천생 음악가였다.
짙은 주름과 중후한 목소리는 그 자체로 악보이고 연주 같았다. 정명훈을 만나러 갔을 때 그는 피아노 연습중이었다. 파이낸셜뉴스와 미라클오브뮤직(MOM) 공동주최로 오는 9월 1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APO) 공연에서 지휘뿐 아니라 직접 피아니스트로 협연도 하기 때문이다. 정명훈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APO를 창단하게 된 이유부터 그를 공부하게 만드는 음악,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대담=정순민 문화스포츠 부장

―APO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예전부터 아시아의 음악가들이 함께 연주하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처음 시작은 일본이었다. 서울시향을 맡기 훨씬 전인 1995년께 일본에서 주로 활동을 많이 했다. 일본 음악가들을 많이 알게 됐고 마침 도쿄국제포럼이라는 대형 공연장의 개관 기념콘서트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실력 있는 아시아 연주자들을 모았고 1997년 도쿄국제포럼홀에서 역사적인 창단 연주회를 가졌다.

―APO가 추구하는 음악적 가치는 무엇인가.

▲우선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음악가들이 모였기 때문에 실력은 기본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음악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이 더 가까워지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악기들이 일단 모이면 누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잊게 된다. 스포츠도 화합의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경쟁이고 시합이다. 이기는 사람 지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생기기 때문이다. 음악은 언어도 필요 없다. 음악으로 다 통하고 한마음으로 할 수 있다. 만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가깝고 친해질 수 있는지 감탄한다.

―서울시향, APO,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여러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기회가 많은데 APO는 어떻게 다른가.

▲어디서 연주를 하든 음악을 대하는 마음은 똑같지만 APO는 아시아가 화합한다는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국적을 떠나 관계를 개선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 이상으로 인간으로서 좋은 모임이라고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한·일관계가 많이 악화됐는데 정치적으로는 항상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 그보다 우리는 아픈 역사가 힘든 것이다. 음악을 통한 화해가 가능하다고 본다. 전쟁을 겪은 부모세대들은 그 역사를 잊을 수 없겠지만 젊은 세대들은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길 수 있고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게 된다.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설 때 어떻게 다른가.

▲일단 스스로를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객의 기대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에 큰 부담은 없다. 그래서 더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항상 프로페셔널한 정신으로 무장해야 하는 것이 음악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나이도 육십이 넘었고 오히려 순전히 음악을 사랑하는 아마추어가 되려고 한다. 그래서 음악이 점점 더 좋아진다. 그런데 마음과 달리 행동은 반대로 나간다. 지휘자로서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공부를 많이 한다.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깊이 파고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음악은 정말 훌륭하고 굉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는 피아노 음반도 냈다.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낸 것이다. 내 손자와 손녀를 위해서였다. 그래서 즐거웠다. 이번 가을에도 또 하나 내려고 구상 중이다.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를 꼽는다면.

▲제일 존경하는 음악가는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다. 이 분은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완전히 '세인트'(성자)다. 파리에서 지낼 때 이분과 굉장히 가까이 지냈는데 딱 교황님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일평생 모든 행동과 곡의 한 음정 한 음정이 하느님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믿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의 음악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성품 자체가 천사였다. 인격적인 면에서도 존경스러운 분이다. 나는 어림도 없는 수준이다

―젊은 음악가들의 롤모델이 됐는데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우선 나는 롤모델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가끔 가다 마스터클래스 같은 데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절대 내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생들 자신의 책임이 99%고 내가 줄 수 있는 건 1%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여러 가지 배움을 얻으면 결국 취사선택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가령 책 한 권을 공부할 때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도움이 될만한 것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그러면 다른 책에서도 하나, 또 다른 책에서도 하나를 기억해서 반죽한 것이 자기 것이 된다. 나는 사실 공부도 잘 못했고 타고난 탤런트도 없었다. 그나마 반죽하는 재능은 조금 타고 났던 것 같다. 훌륭한 음악가들을 만날 때마다 들은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았고 그것들이 모여 일평생 도움이 됐다.

―최근 한국에서는 영화 '명량'에서 보인 이순신 리더십이 각광받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리더인 정명훈은 어떤 리더십을 추구하나.

▲첫째로 리더가 되려면 팔로어가 돼야 한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어떻게 연주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단원이 내 말대로 못하겠다고 하면 다르게 해보라고 한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걸 해보라고 설득한다. 그래서 내가 객원지휘를 힘들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곡을 완성하기 위해선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식의 제안을 하면 일부 단원들은 지휘자를 얕보거나 리더십이 모자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명량'을 한 번 보긴 봐야겠다.

―일 외에는 어떤 취미가 있나. 요리를 굉장히 좋아하는 걸로 유명한데 음식과 음악 중 어떤 것이 더 좋은가.

▲한국에 있을 때는 거의 일만 한다. 집에 돌아와 딱 두 가지 하는 것이 있는데 악보를 보는 것과 요리다. 요리를 잘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빨리한다.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 보관했다가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게 재밌다. 먹기 위해 음악을 하나, 음악을 하기 위해 먹나 생각해 보면 나는 확실히 먹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것 같다(웃음). 연주를 하고 나서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다만 먹는 것보다 연주가 우선이긴 하다. 마음 편히 먹고 싶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향을 맡으면서 최소한 한국에서 3분의 1 이상은 보내겠다고 했는데 잘 지켜진 것 같나.

▲지난 9년 동안 그렇게 했다. 그 정도도 안 하면 한 오케스트라를 책임질 수 없다고 본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올해로 14년째인데 내년에 그만둘 예정이다. 하지만 서울시향과 APO는 다른 오케스트라와는 다른 책임감이 있다. 서울시향은 내가 한국인으로서 후배를 양성해야 할 책임, 한국에서 세계적 수준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APO는 아시아 국가 간의 음악을 통한 화합을 이끈다는 점에서 기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점점 책임을 덜 맡으려고 한다. 덜 한다는 의미는 덜 하면서 어떻게해서든 좀 더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다.

―서울시향의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는 평가를 받는데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제일 필요한 건 서포트다. 보통 기업의 경우 어떤 분야에서 발전이 크고 가능성이 보이면 투자를 하는데 (서울)시에서는 예산을 자꾸 깎으려는 경향이 있다. APO도 마찬가지다. 취지는 좋지만 각 나라들은 자기 나라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도 APO는 아시아 최고들이 모였기 때문에 음악적 수준이 보장되지만 서울시향은 더 육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원이 더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관객과 대중들에게 어떤 음악가로 남고 싶은지 궁금하다.

▲마지막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죽기 전에 무슨 업적이나 말을 남긴다든지 하는 건 나와 맞지 않는다. 심지어 사진 촬영이나 연주를 녹음하는 것도 싫어한다. 오케스트라의 발전이나 퍼블리시티(홍보)를 위해 필요에 의해서 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죽고나서 대중이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은 눈꼽만큼도 없다. 연주도 끝나자마자 금방 잊어버린다. 내가 언제 기가 막힌 연주를 했었는지 반대로 실수를 했는지 기억도 없다. 모든 연주는 그 자리에서 끝난다.
그 연주에 에너지를 다 쏟는 거다. 그러고 나면 다시 다음 연주에 집중한다.
현재와 미래가 있는데 과거로 다시 돌아갈 이유는 없다.

정리=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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