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루 붉은 난간은 큰 길가에 닿았고 푸른 물결은 절문 앞까지 넘실거린다 시끄러운 수레들이 동헌으로 돌아가니 노랫소리 풍악소리 날마다 끊이지 않네."
고려 말기의 문신 정포가 남긴 태화루 제영시의 일부다. 1400여년 전 신라 선덕여왕(643) 때 신라 태화사의 한 누각으로 건립된 태화루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루로 불렸다. 고려 성종이 이곳에 올라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도 이어져 내려오는 등 이름을 알렸으나 임진왜란 전·후 멸실됐다. 이후 태화루를 복원하고자 하는 울산시민의 의지와 시의 노력 끝에 태화루는 400년 만에 울산시민의 품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400년 만에 되돌아온 태화루
올해 대한민국 국토도시디자인대전에서 역사.문화.환경 부문 국토교통부 장관상의 영예를 차지한 울산시 태화루는 태화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생태공원 중간지점에 자리잡았다. 부지면적 1만138㎡, 연면적 731㎡(지상 2층) 규모로, 지난 2011년 9월 첫 삽을 떠 올해 4월 완공됐다. 총 507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으며 이 중 400여억원은 울산시 자체 예산으로, 100억원은 울산지역의 주요기업인 에쓰오일의 지원이 있었다.
정면 7칸(길이 21.6m), 측면 4칸(길이 11.4m)으로 이뤄진 본루(태화루)와 대문채, 행랑채, 사주문, 홍보전시관, 휴게실 등 주요시설로 구성됐다. 본루는 국내 누각 가운데는 드물게 고려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졌다. 주심포 양식은 처마의 무게를 떠받치기 위해 기둥에 설치하는 구조물인 공포를 기둥 위에만 설치하는 것이다. 신응수 대목장, 윤만걸 석장, 양용호 단청장, 소헌 정도준 선생, 이근복 번와장 등 장인들이 참여해 지속 가능한 복합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했다.
시는 이용 편의성을 고려해 산책로, 계단, 건축슬로프, 마운딩 슬로프 등 다양한 태화루 탐방로를 계획, 다른 역사.문화공원과 차별성을 뒀다. 또 턱없는 진출입구, 위치나 방향 등을 알리는 점자블록을 설치하는 한편 핸드레일 설치로 시민들의 안전을 우선시했다. 경관성을 고려한 사인물 통합 디자인은 물론 모감주나무 군락지 보존과 환경수, 유실수 식재 등 생태적인 측면에도 신경썼다.
현재 태화루는 일평균 1500명이 찾고 있는 울산의 관광명소로 명실공히 떠올랐다. 시는 현재 산책로 가로등을 추가하는 한편, 화장실 모기 퇴치용 시설과 휴게문화동 관람 데크 층고 조정, 자전거 보관대 설치 등 개선 사업을 완료했다. 쉼터에서 약간의 음료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편의시설도 조성했다.
■"창의적 디자인·정체성 제고"
심사위원단은 기존 태화루의 형태에 대한 역사적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고증이 어려운 환경에서 현재의 도시 공간구조와 시민의 편의를 고려한 창의적인 디자인을 높이 평가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품격 있는 색채와 디자인을 통해 우수한 경관을 조성한 점, 울산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태화강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태화강대공원, 울산시민공원 등 태화강 주변 공원과의 시각적 연결 및 보행 연결을 시도했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낙후된 주변 지역의 경관개선사업을 함께 추진한 점과 지역성 측면에서 소실됐지만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장소를 중창함으로써 지역 정체성을 제고한 점도 큰 점수를 얻었다. 시 차원에서 준주거지역을 자연녹지지역으로 변경, 모든 시민을 위한 공공공간을 영구히 쓰일 수 있도록 한 점도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심사위원단은 "이 밖에도 공공재정 외에 지역의 주요 민간기업 참여를 이끌어낸 점은 지역기업과 지역시민 간의 유대 증진 차원에서 중요한 성과"라며 "소극적인 최소한의 접근로 확보 수준에 머무는 일반적인 장애인 접근로 설치와는 달리 전체적인 동선 및 경사를 고려한 적극적인 무장애 디자인 역시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다.
■수상소감/"스토리 담은 역사문화 도시로 부상"
큰 상을 받아 기쁘고 도시의 품격을 더하려는 울산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품위 있는 국토, 수준 높은 도시를 겨냥한 파이낸셜뉴스와 국토교통부,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가 주최하고 주관하는 '2014 대한민국 국토 도시디자인대전'은 모든 도시가 욕심내는 상입니다. 그래서 더 기쁘고 2010년에 처음 수상한 데 이어 다시 큰 상을 받게 돼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태화루 중창사업은 울산광역시가 무려 24년 동안 씨름해온 사업입니다. 있던 것을 새롭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역사 속에 사라진 누각을 시간을 거슬러 다시 불러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건물을 헐고 주상복합건물을 짓겠다는 건축주의 건축허가를 취소하고 행정심판을 거치기도 했으며 지주들과의 보상마찰도 있었습니다.
전란으로 소실된 태화루 입지의 고증을 위한 연구와 사료검증도 불가피했습니다. 누각의 양식을 결정하고 재목을 선정하는 일, 기업의 사회공헌 사업에 이르기까지 굽이굽이 구절양장이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400여년 만에 탄생한 태화루가 울산과 시민에게 주는 의미는 크고 깊습니다.
한마디로 울산에 있어서 태화루는 장소의 혼, 게니우스 로키(Genius Loci)입니다.
모든 장소에는 혼이 있다는 게니우스 로키의 울산적 해석이고 역사와 문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통해 도시의 품격을 창출하는 상징체계가 태화루입니다.
우리 시는 태화루 건립과정에서 도출된 역사와 문화, 보전과 개발 등 많은 가치와 교훈을 향후 도시를 디자인하고 품격 높은 생활공간을 창출하는 지렛대로 삼고 있습니다.
잘 아시듯이 디자인은 기교이면서 그 자체로 예술이지만 도시 디자인은 예술 그 이상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도시 디자인은 예술이 생활을 만날 때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울산은 그런 관점에서 품격과 조화, 따뜻함과 스토리가 있는 도시 창조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단순한 해체와 복원이나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가치와 철학이 있는 도시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행복하게도 울산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발상지, 반구대 암각화로 대표되는 문명의 기원, 공해를 극복한 환경도시, 8도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한국판 개척자의 도시 등 풍부한 소재가 있고 특유의 문화적 자산도 많습니다. 울산이 가진 소중한 자산을 살려 품격 있는 도시공간을 재생해 나갈 것입니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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