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는 노약자나 노인들이 보행의 불편을 덜기 위해 잠시 사용하는 도구다. 만드는 것도, 쓰는 것도 모두 어렵지 않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지팡이의 기능과 의미는 별개다. 상징적 역할이 부여될 때가 적지 않다. 노인이 들고 있는 지팡이는 '어르신'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의미한다. 정부가 매년 노인의 날(10월 2일)에 즈음해 100세를 맞은 노인들에게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뜻의 지팡이(청려장, 靑藜杖)를 선물하는 것도 지팡이가 어르신의 지위와 이미지를 잘 나타낸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 작품과 성서, 역사 속의 지팡이는 절대자가 지닌 권위와 초능력의 또 다른 상징이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지팡이는 하느님의 권능을 대변하는 '하느님의 지팡이'였다. 고대 이집트에서 지팡이는 파라오가 가진 왕권의 상징이었다. 잉카제국의 시조 전설에는 초대왕이 황금 지팡이를 던져서 수도로 할 땅을 정한 이야기가 나오고 중국의 선인이나 유럽의 마법사들이 지닌 지팡이도 초능력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를 휩쓴 초대형 베스트셀러 '해리 포터…' 시리즈 속의 지팡이는 신통력을 가진 마법의 도구로 아동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지팡이는 현대 의학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문장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그것이다. 이 지팡이는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의 심벌 속에서도 뱀 한 마리가 지팡이를 휘감고 올라간 형태로 자리잡고 있으며 환자를 수송하는 구급차의 뒷문에도 표시돼 있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잠적 40일 만에 14일 공개석상에 나타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지팡이 짚은 사진이 화제다.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후광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비슷한 자세와 옷차림, 소품으로 치밀하게 연출한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건 절대권력을 휘둘러온 서른살 남짓의 젊은 국가 지도자가 지팡이에 의지한 모습은 불안하다. 지팡이도 권위의 상징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15일은 흰 지팡이의 날.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지원 활동을 강화할 수 있도록 세계맹인연합(WBU)이 지난 1980년 제정한 이날이 김정은 지팡이 뉴스와 겹치니 느낌이 묘하다. 바깥 세상의 변화에 눈과 귀를 막아 버린 북한 지도자들에게야말로 흰 지팡이가 꼭 필요할지 모르겠다.
tanuki2656@fnnnews.com 양승득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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