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2) 손님은 정말 왕인가요? 감정 상하는 감정노동자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0.16 16:29

수정 2014.10.16 18:05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2) 손님은 정말 왕인가요? 감정 상하는 감정노동자들

#1. 서울 신촌 근처의 한우 전문점에서 일하는 최모씨(47)는 요즘 우울증 초기 증세를 겪고 있다. 식당 직원을 하인 취급하는 몇몇 손님 때문이다. 최씨는 "반말로 주문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며 "어떤 손님은 마치 양반이 하인 부리듯 직원을 무시하고 말을 함부로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유명 의류브랜드의 백화점 매장 관리자인 김모씨(33)는 최근 한 고객의 뻔뻔한 환불 요구에 한바탕 소란을 겪어야 했다. 그 고객이 입었던 흔적과 음식 냄새까지 나는 옷을 가져와서 환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목소리가 크면 다 해결되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손님은 왕이다.'

요즘 불경기로 소비자 한 명이라도 붙들어야 하는 중소형 음식점이나 의류매장은 그 어느 때보다 손님을 왕처럼 모신다. 하지만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직원에게 던지는 반말과 무례한 언사는 매장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판매하는 물건에 관계없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블랙컨슈머도 계속 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이번 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제를 '손님은 정말 왕인가요'로 정해 실태를 살펴봤다.

■뮤지컬 공연장마저 '내가 왕'

지난 15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의 A 삼겹살전문점. 퇴근한 직장인과 몇몇 대학생이 저마다 테이블에서 종업원에게 여러 차례 주문을 이어갔다. "김치 좀 갖다 줘" "소주 두 병 추가" 등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는 손님들의 반말 주문은 자연스러웠다. '왕'처럼 행동하는 일부 손님으로 인해 곤욕을 겪는 것이 이미 일상이 돼버린 곳은 음식점, 콜센터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 중간관리자로 일하는 김모씨는 지난해부터 한 대학생 손님의 방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1년간 이 서점에서 100만원가량을 쓴 고객이지만 이 중 60만원에 해당하는 책을 환불했다. 문제는 환불과 교환 과정에서 사소한 트집을 잡아 적립 포인트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특히 이 손님은 여직원에게만 고압적 태도로 접근했다. 김씨는 "실제 구매도 하는 손님이라 출입금지를 할 수도 없어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뮤지컬 공연장에선 지각을 하고도 객석 입장을 요구하는 관객이 직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이런 관객은 '내 돈으로 티켓을 샀는데 왜 못 들어가느냐' '내가 VIP다' 등의 발언과 함께 폭언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아서다. 지난해 서울의 한 대형 뮤지컬 공연장에서 8개월간 일했다는 대학생 김모씨(25)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에 공연 시작 후엔 특정 시간에만 입장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규정을 모두 무시하고 입장을 요구하는 관객들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우리도 감정 느끼는 사람"

업종에 관계없이 인터뷰를 승낙한 종업원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최소한의 존중이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최모씨(21)는 "아무리 어려 보이더라도 물건을 내밀며 다짜고짜 '이거 얼마냐'라고 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인터넷 쇼핑몰 상담원인 박모씨(29)는 "3개월 넘게 사용한 생활용품을 반품하겠다고 하는 50대 남성에게 반품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더니 '무식한 것' '망하고 싶냐' 등의 폭언을 했다"며 "과연 그분은 자기 자식한테도 그런 말을 할까 싶었다"고 말했다.

취재 중 만난 한 음식점 주인 배모씨(30)는 "손님은 왕이다. 그런데 못된 왕, 폭군이 더 많은 것 같다.
돈을 낸다고 해서 상대방을 무시할 권리까지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김종욱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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