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압구정동 일대는 예로부터 풍광이 뛰어난 곳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잠실 쪽에서 내려오다 서남으로 휘어지는 한강 물줄기가 한눈에 굽어 보이는 이곳에 한명회 등 조선시대의 세도가들은 앞다퉈 별장을 짓고 풍류를 즐겼다. 워낙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해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도 배를 띄워 놓고 한바탕 놀고 싶어 했을 정도였다. 성종이 1476년 11월 압구정시를 지어 직접 하사한 데 이어 조선 최고의 산수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은 초록빛 남산과 삼각산 연봉들을 배경으로 한 압구정의 멋진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다(간송미술관 소장 '압구정도').
한강을 사이에 두고 압구정동과 마주 보는 곳은 서울 왕십리 쪽으로 이어지는 성동구 성수동 일대다. 조선시대에 임금이 직접 나와 말 기르는 것을 지켜보고 훈련 중인 병사들을 사열하던 정자인 성덕정의 '성'과 뚝섬 수원지의 '수'를 한 자씩 따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목장과 군대의 무예 검열장이 있었던 이곳은 채소밭도 많았지만 1960년대 이후 중소기업들의 공장이 하나둘씩 들어서며 군소공장 밀집지대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강남 부촌과 서울 성동 지역을 연결하며 한강의 11번째 다리로 이름을 올린 성수대교는 건설 과정에서부터 화제를 뿌렸다.이전 교량들이 기능 및 경제성 위주로 밋밋하게 세워진 데 반해 성수대교는 외관과 미적 감각을 고려한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한강 다리 중 최초로 120m의 장경간(長徑間)으로 건설됐으며 게르버 트러스교의 구조로 다리 밑 공간이 넓어 한강 수면과 잘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9년 10월 16일 준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다리 위를 걸어 보기도 했다.
동아건설이 시공한 성수대교는 정확히 20년 전인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40분경 상판 48m가 끊어져 내렸다. 무학여고생 8명을 포함, 49명의 사상자를 내고 버스 등 차량 5대를 강물에 처박은 참사였다. 날림 공사와 부실 감리가 부른 초대형 인재(人災)였다. 성수대교는 1995년 현대건설이 재건설을 맡아 1997년 6월 과거 오명을 벗고 새 다리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한국 사회에는 후진국형 참사가 넘쳐나고 있다. 대형 여객선이 뒤뚱거리다 맥없이 가라앉고, 땅이 꺼지고 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거꾸로 처박힌다. 성수대교 사고의 교훈은 한결같다. 사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에 안전은 없다는 것이다.
tanuki2656@fnnews.com 양승득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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