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현장르포] 재판 하나하나 귀 쫑긋.. "배심원 어렵지 않네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0.27 17:32

수정 2014.10.27 17:32

지난 23일 서울 서초중앙로 서울중앙지법 서관 4층 중회의실에서 임성근 형사수석부장판사가 그림자배심원들에게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중앙로 서울중앙지법 서관 4층 중회의실에서 임성근 형사수석부장판사가 그림자배심원들에게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관 4층 중회의실. 기자를 포함해 단체, 개인 등 성별과 나이가 다른 35명의 '그림자배심원' 신청자들은 재판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자배심원 제도는 2011년부터 시작된 일종의 모의 배심원 프로그램이다. 국민참여재판 정식 배심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배심원 체험을 원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재판 신뢰도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방청객을 가장해 재판 과정을 지켜본다는 의미에서 '그림자'라는 용어가 붙었다.

정식 배심원은 지정된 사람만 할 수 있지만 그림자 배심원은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단 성범죄 등 민감한 사안은 '재판부에 따라' 연령 제한을 둘 수 있다. 신청횟수는 제한이 없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배심원의 평의와 평결은 재판부가 판결을 내리는데 참고하지만 그림자 배심원의 경우 재판을 마친 뒤 시민들의 의견을 검토하는 용도로만 쓰인다는 점이다.

■돋보인 재판부 대처 능력

오전 10시 총 8명의 정식배심원으로 구성된 국민참여재판이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이동근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이번 재판은 지적장애 3급 남성이 여중생 2명을 강제 추행한 사건이었다. 주요 쟁점은 '심신 미약 인정 여부'와 '양형 결정'이었다.

오전 공판과정에서 평소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피고인이 재판 중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며 쓰러지는 등 돌발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재판부는 의료진을 불러 응급처리를 하는 한편 피고인이 별도의 공간에서 재판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위기를 잘 수습했다. 이날 재판부는 배심원들을 위해 법률 용어를 쉽게 설명하는 등 원활한 공판진행을 위해 세심한 신경을 아끼지 않았다.

정오 무렵 휴정했던 공판은 오후 2시부터 재개됐다. 오후 공판에서는 증인신문과 피고인신문이 이어지며 검찰과 변호인 사이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전개됐다. 양측의 공방은 오후 4시 무렵 구형과 최후변론, 최후진술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평결에 들어가기 앞서 재판부는 "일방적 주장과 사실을 최대한 구분해 판단해 달라"며 신중한 판단을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일일판사' 같았던 배심원 경험

정식 배심원과 그림자배심원들은 각각 별도의 회의실로 들어가 평의·평결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각각 증언과 증거를 근거로 쟁점사항이었던 '심신미약' 여부와 양형에 대해 신중한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렸다. 이날 정식 배심원과 그림자배심원의 판단은 달랐다. 그림자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정식 배심원들은 심신미약을 인정했다. 재판부 역시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

정식배심원의 평결과 재판부의 판결이 공개되자 그림자배심원들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한 그림자배심원은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던 심신미약 인정 여부에서 정반대의 결과로 나와 당황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재판에 참가한 그림자배심원들은 다시 한번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그림자배심원 프로그램이 생긴 뒤 계속 참여를 해 왔다는 한 사람은 "직접 재판과정을 보니 사법부 판결이 한쪽으로 쏠렸다는 오해가 사라졌다"며 "다음 프로그램도 신청해 놨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 참가자는 자료가 좀더 세분화되고 자세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면 "정식 배심원으로도 꼭 참가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오후 6시, 그림자배심원으로서의 일정을 마치고 법원의 감사장을 전달받았다.
이로서 '일일판사'의 직분을 내려놓았지만 그림자배심원들의 얼굴에는 뿌듯함과 함께 왠지 모를 사명감이 번지고 있었다.

윤지영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