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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아이폰6 소동, 단통법 손질 불가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03 16:37

수정 2014.11.03 16:37

애플 아이폰6를 둘러싼 보조금 소동을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시행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라 더욱 그렇다. 단통법만 실시하면 혼탁한 휴대폰 유통시장이 싹 정리될 줄 알았으나 현실은 딴판이다. 이럴 바에야 단통법을 폐지하고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다. 정부는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보조금 대란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동통신사들이 판매점에 준 장려금(리베이트)이다. 단통법으로 손님이 뚝 끊긴 유통점들은 아이폰6 붐에 편승해 리베이트를 불법 보조금으로 '전용'했다. 제 몫을 줄이는 대신 공식 보조금에 추가로 보조금을 얹어준 것이다. 그 결과 80만원에 가까운 아이폰6 값이 10만원대로 떨어졌다. 약빠른 소비자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11·2 소동은 단통법의 근본적인 결함을 보여준다. 시장은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에 한 방 세게 먹였다. 정부는 또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시장이 순순히 물러설 것 같진 않다. 그보다는 단통법 이전처럼 보조금 대란→과징금·영업정지→보조금 대란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통신료 정책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애당초 민간기업끼리 경쟁하는 시장에 정부가 끼어든 게 잘못이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으려 반값 통신료 공약을 내세웠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거기에 장단을 맞췄다. 앞뒤 구분 못하는 국회의원들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으로 단통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일본에서 법을 만들어 통신료를 규제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면서 스스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 오죽하면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이 뒤늦게 반성문을 쓰고 있을까.

단통법 이전의 혼탁한 휴대폰 시장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라도 정부가 시장을 좌지우지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보조금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휴대폰을 싸게 팔겠다는 데 굳이 정부가 나서서 말릴 이유가 없다. 다만 보조금이 결국 통신료로 전가되는 게 문제다. 정부가 할 일은 이통사들이 통신료에서 부당한 이익을 내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데 그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봄 끝장토론에서 규제개혁 승부수를 띄웠다. 정부가 미주알고주알 시장에 간섭하는 단통법은 이 흐름에 정면 배치된다.

단통법은 시장실패를 바로잡으려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으나 정부 실패로 끝날 공산이 커졌다. 시행 한 달밖에 안 됐으니 좀 더 지켜보자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전면 폐지는 미루더라도 보완책 마련은 불가피해 보인다. 보완책은 정부가 시장에서 손을 떼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중국 사상가 장자(莊子)는 "세상을 위해 저울과 도장을 만들면 저울·도장을 이용한 도적질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단통법은 현대판 저울·도장이다.
아무래도 정부는 괜한 일에 용을 쓰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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