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12개의 자동차 전용도로가 있다. 그 길이는 173.5㎞다. 하루 평균 자동차 130만대가 지나가는 이 도로는 누군가가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 갈라지고 팬 도로면을 방치할 경우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길이 필요한 곳은 도로면만이 아니다. 도로 근처 곳곳에 내걸린 각종 불법 현수막, 계절에 따라 찾아오는 눈과 비 등 신경써야 할 것은 차고도 넘친다. 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곳이 바로 서울시설공단이다.
■불법 현수막과의 '숨바꼭질'
지난 10월 30일 오전 서울 마장동에 자리잡은 서울시설공단 본사를 찾았다. 도로관리처 소속의 이성림 과장(45)과 정재부 대리(42)는 맨 꼭대기(20층)에 자리잡은 서울도시고속도로 교통관리센터에서 무전기를 들고 연신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전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서울시 전역의 도로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초록(원활), 노랑(지체), 빨강(정체)이 도로 위에 표시되는 익숙한 그 지도다. 이 과장은 "서울지방경찰청 등과 함께 일하는 곳"이라며 "서울 전역의 차량검지기 1153개와 폐쇄회로TV(CCTV) 153대가 수집한 차량 통행정보는 자동으로 시각화 과정을 거쳐 지도 위에 교통상황을 색깔로 나타낸다"고 말했다.
차량 흐름을 점검하는 것 외에 교통관리센터가 하는 중요한 작업이 하나 더 있다. 서울의 자동차 전용도로 관리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이다. 이 과장은 긴급성이나 민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시설팀 근무자에게 보수·보강 등의 업무를 지시한다. "현수막 제거 요청 등 이곳 상황실로 들어오는 전화만 하루 30건가량"이라는 정 대리의 설명이다.
오전 9시30분께 이 과장, 정 대리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30여분이 지나 동서울터미널 인근 강변북로에서 이흥표 반장(45)이 이끄는 1구간정비반 차량 2대와 합류했다. 정비반은 불법 현수막 제거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과거에는 차량 한 대씩 따로 작업을 했으나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탓에 5년 전부터 2대가 같이 움직이고 있단다. 말하자면 뒤따르는 차량은 보호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강변북로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던 정비반 차량이 잠실대교 북단에서 멈춰섰다. 교차로 녹지대 빈공간 여기저기에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10여분 사이 제거한 현수막이 8개였다. 모두 같은 아파트의 미분양 광고물이었다. 이 과장은 "요즘 제일 많이 걸리는 현수막은 미분양아파트와 수입차 광고"라며 "한 곳에 3~4개씩 걸어놓는 것은 예사이고 '숨바꼭질'하듯이 오늘 떼면 내일 또 걸어놓는다"고 하소연했다.
지나는 한강다리마다 불법 현수막이 3∼4개씩은 꼭 붙어 있다. 이 과장은 "저것들은 날을 따로 잡아서 떼야 한다"며 "상황실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 관리는 '물과의 전쟁'
정비반은 영동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청담대교 아래 포트홀(노면홈)을 메우는 일이란다. '도로 위의 지뢰'로 불리는 포트홀은 여름철 집중호우나 겨울철 폭설로 도로가 파여 생기는 것으로 별다른 표시를 해놓지 않는 한 운전자들이 주행 중 쉽사리 발견하기 어려워 신속한 복구가 중요하다.
'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어떻게 이걸 발견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 과장이 눈치를 챘는지 "시민의 민원이나 제보도 많이 들어오지만 하루 300㎞를 이동하면서 불법 현수막이나 도로 상태를 살피고 다니는 순찰대의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
공사지점은 3차로였다. 교통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별도의 차단시설도 하지 않았다. 양옆으로 차들이 시속 60∼80㎞로 '쌩쌩' 달리는 것이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이 반장은 "안전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솔직히 이럴 때는 '차라리 교통정체 상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아스팔트(아스콘)를 포트홀에 부은 뒤 석회 가루를 뿌리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차들이 지나면서 아스팔트를 다져줄 것이었다. 포트홀 4개를 메우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해답은 정 대리가 알려줬다.
"한마디로 아스팔트를 끓여서 주전자로 부어놓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스팔트 사이로 물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땜질하는 거죠. 교통량이 워낙 많아 지금처럼 임시조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5분만 차량을 통제해도 1㎞ 이상 정체가 발생하니까요. 그러면 상황실로 항의전화가 빗발칩니다. 현장 근무자에게 욕설과 함께 침을 뱉고, 차 안에 있던 병이나 기저귀를 던지는 경우도 있어요. 이번처럼 작은 포트홀은 임시조치를 하고 규모가 있는 경우에만 포장정비팀이 시간을 들여 보수합니다."
이 과장은 "그래도 올여름은 비가 적게 와서 비교적 편하게 넘어갔다"며 "지난해만 해도 포트홀 신고가 하루에도 300∼400건씩 들어와 말 그대로 '포트홀과의 전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하루 100개가 넘는 포트홀을 보수하려니 베테랑만 모인 정비반이 "두손 두발 다 들었다"고 할 정도였단다.
이 반장이 무전기를 통해 "정비반이 보통 하루에 120㎞, 많을 때는 150㎞가량을 이동하며 이런저런 일을 한다"며 "그중에서도 7∼8월 비가 많이 올 때는 포트홀 보수하느라, 예고 없이 폭설이 내리는 겨울날에는 제설작업을 하느라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다"며 추임새를 넣었다.
정비반은 다시 천호대교 방면으로 움직였다. 라디오에서 "주말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왔다. 정 대리는 "가을에는 비 소식이 들리면 걱정부터 앞선다"며 "20㎜ 정도만 와도 낙엽이 배수구를 막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전 11시30분께 천호대교 남단 공항방면 올림픽대로에 도착했다. 직진 차량과 옆에서 끼어드는 차들로 작은 정체가 발생하고 있었다. 무리한 끼어들기를 방지하기 위해 시선유도봉 5개를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걸린 시간은 10분에 불과했다. 이 반장은 "시선유도봉 설치작업은 전국에서 우리가 제일 잘한다고 자신할 수 있다"며 "1년에도 수천개씩 박았다 뽑았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장은 "시선유도봉이야말로 민원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며 "'설치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와 설치기준 등을 고려해 설치하면 이튿날부터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제거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친다"며 "심한 경우 전화기를 붙들고 20∼30분을 설명해서 겨우 설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불가피한 정체에 욕설 난무
오후에는 포장정비반이 일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올림픽대로를 따라가면서 청담대교 인근 제설작업 전진기지에 겨울을 대비해 이미 염화칼슘을 쌓아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과장은 "많이 살 수도, 적게 살 수도 없어 겨울을 앞두고 늘 고민"이라며 "몇 년 전 겨울에는 예측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지방자치단체마다 '염화칼슘 확보전쟁'이 벌어졌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바람에 혼이 나기도 했다"고 소회했다.
포장정비반을 만난 곳은 강변북로 일산방향 성수대교 북단 근처였다. 무거운 트럭들이 지나면서 생긴 '소성변형'을 바로잡기 위한 작업이었다. 도로를 살펴봤지만 뭐가 잘못된 것인지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이 과장이 철제 자를 도로 위에 걸쳐놓자 그제서야 손이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보였다. 타이어의 압력 때문에 도로가 그만큼 주저앉은 것이었다. 제때 수리하지 않으면 굴곡 탓에 운전자가 운전대를 놓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정 대리의 설명이다.
포장정비반에는 '시공이음'이라는 또 다른 적이 있다. 여러 개의 차선을 순차적으로 공사하면서 생기는 미묘한 차이가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를 겪으면서 점차 벌어지는 것이다.
이 과장은 "제대로 공사를 하면 10년을 버틸 수 있는 아스팔트지만 도심의 도로를 전면적으로 통제할 수도, 며칠씩 통제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시간에 쫓겨 시공하는 탓에 5~7년밖에 쓰지 못한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포장정비반 안오훈 반장(45)은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서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데 잠시라도 도로가 막히면 참지 못하는 시민들이 있다"며 "도로 보수의 필요성과 불가피한 정체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김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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