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오라, 복지 디폴트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1.24 16:56

수정 2014.11.24 16:56

무책임한 무상정책 남발.. 정치인들에 본때 보여야

[곽인찬 칼럼] 오라, 복지 디폴트여!

'빛의 화가' 렘브란트(1606~1669년)는 유난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캔버스에 그린 게 50~60점, 종이·판화·데생까지 합치면 100여점에 이른다. 젊은 시절 자화상을 보면 활기가 넘친다. 노후의 렘브란트는 영락없는 쭈그렁 노인이다(사진). 팽팽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화가의 자화상은 진실하다. 후대에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무자비할 정도로 너무나 무정한 기록"이란 평가를 받았다.(최병서 '경제학자의 미술관')

렘브란트가 21세기 한국 복지의 자화상을 그리면 어떤 모습일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지킬 앤 하이드'의 얼굴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맘씨 좋은 키다리 아저씨처럼 시혜를 베푸는 척하던 정치인들은 슬그머니 수금(收金) 모드로 돌아설 태세다. 여의도 정치판에선 증세 논쟁이 한창이다. 공짜라고 떠들 땐 언제고 뒤늦게 깨알만 한 약관을 들이대며 돈을 갈취하는 악덕 상인 같다.

한국에선 복지도 이념 따라 편이 갈린다. 진보 교육감들과 야당은 무상급식을 애지중지한다. 보수 여당은 무상보육을 편애한다. 각자 제 새끼만 감싸는 꼴이다. 국민이야 어느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든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교육청·지자체·중앙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에게 엔드 유저(End User)인 국민의 불편은 안중에도 없다.

렘브란트 '자화상'(1662년)
렘브란트 '자화상'(1662년)


정치인의 이기심에 대해선 일찍이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뷰캐넌(1919~2013년)이 일갈한 적이 있다. 뷰캐넌은 공공선택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1986년)을 받았다. 좀 거칠게 말하면 정치인이 말하는 공공선이란 말짱 거짓이라는 게 뷰캐넌의 주장이다. 겉으론 공익을 내세우지만 속셈은 사익을 채우는 데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면 나랏돈을 제 돈처럼 펑펑 쓴다.
세금도 깎아준다. 국가 재정이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다. 여기서 뷰캐넌의 작은 정부론이 나온다. 정치인의 이기적인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런 마당에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신혼부부를 위한 저가 임대주택 구상까지 나왔다. 타이밍 참 고약하다. 무상급식·보육비가 모자라 쩔쩔매는 판에 또 시혜성 대책을 내놓는 배짱이랄까 무신경이 놀랍다. 궁금해서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미혼 후배에게 물어봤다. 20대 여자 후배는 "결혼은 여자가 손해라는 생각 때문에 안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임대주택 싸게 주면 결혼? "그런다고 얼씨구나 결혼할 것 같진 않아요."

적령기를 한참 넘긴 남자 후배는 결혼을 해도 애를 안 낳는 이유로 보육·교육·집을 꼽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걸작이다. "싱글세 물릴 생각 말고 싱글용 임대주택 내놓으면 대박일 텐데 말이죠. 나중에 결혼하면 싸게 분양으로 전환하는 거죠. 싱글끼리 모여 살면 자연히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거기서 결혼도 하고 그러지 않을까요?"

복지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야경국가 시절 국가의 역할은 국방·치안에 머물렀다. 21세기 국가는 소득재분배 기능까지 맡았다. 문제는 속도다. 분에 넘치면 탈이 난다. 전성기 로마제국은 걷은 만큼 썼다. 쇠퇴기 로마는 쓸 만큼 걷었다. 공익으로 포장된 정치인들의 사익 추구를 경계하자. 복지비에서 펑크가 나고 선거에서 당해봐야 정치인들도 '앗 뜨거라' 한다.
복지 디폴트를 두려워할 것 없다. 디폴트는 입에 쓰지만 몸엔 단 약이다.
렘브란트처럼 우리도 정직한 자화상을 그려보자. 그럼 이런 외침이 절로 나올 거다. "오라, 복지 디폴트여!"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