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간 M&A도 외국계 선호… 국내 IB 기회조차 없어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기업 M&A 시장의 최대어로 꼽히는 KT렌탈 인수전의 경우 매각주관사가 외국계인 크레디트스위스(CS)다. KT렌탈 인수에 뛰어든 롯데그룹 역시 외국계인 도이치증권을 인수자문사로 선정했다.
■국내기업 간 M&A도 외국계 독식
LIG손해보험도 골드만삭스가 매각주관사를 맡으면서 인수자문사들이 줄줄이 외국계로 선정된 바 있다. 당시 롯데그룹은 CS를 선정했고 KB금융지주는 계열사인 KB투자증권을 선정하긴 했으나 외국계 증권사인 도이치증권사와 공동주관을 맡겼다.
한 증권사 IB담당 임원은 "흔히 매각주관사가 외국계로 선정되면 이에 맞춰 인수자문사도 대개 외국계로 선정한다"며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없는데 관행적으로 그렇게 진행된다"고 말했다.
대형 M&A의 경우 국내 증권사가 매각주관사로 선정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 외국계 IB와 공동주관사를 맡게 되는 식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삼성증권과 KDB대우증권이 JP모간과 함께 매각주관을 맡았고 대한전선의 경우 하나대투증권이 JP모간과 공동주관을 맡았다.
국내 IB 관계자들이 가장 허탈해하는 부분은 국내 기업 간에 이뤄지는 M&A에 있어서도 굳이 외국계 IB를 주관사로 선택하는 경우다. 이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일이 잘 안됐을 경우를 대비한 면피용이라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가간(크로스보더) 딜의 경우 아무래도 외국계 IB가 네트워크도 방대하고 자금조달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외국계 IB를 선정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며 "그러나 인수후보자들이 국내 회사인데 굳이 외국계 IB를 선정하는 것은 말하자면 '면피용'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경영진 입장에서는 실패했을 경우를 고려해야 하는데 국내 IB를 선택했을 경우 일이 잘 되지 않으면 꼬투리를 잡힐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IB에도 기회 줘야…
반면 자문사를 선정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글로벌 IB에 일을 맡기는 것이 더욱 안심이 되는 게 사실이다. 자문사 선정 과정에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트랙레코드' ,즉 그간의 M&A 실적이기 때문이다.
'기회를 줘야 일을 배우지 않느냐'는 국내 IB와 '일을 잘하는 쪽에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는 기업들의 주장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과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고리를 어디선가 끊지 않으면 국내 M&A 시장의 글로벌 IB 독식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공정경쟁은 경쟁자들이 균질하다는 가정하에 이뤄지는 것인데 이대로 둔다면 외국계 IB의 독식이 고착화되고 말 것"이라며 "국내 IB들이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무조건 잘하라가 아니라 일단 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실장은 "참여할 기회조차 없는데 열심히 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마치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어퍼머티브 액션(소수 계층 우대정책)을 도입한 것처럼 국내 IB에도 기회를 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기업 간 M&A만이라도 국내 IB가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며 "M&A의 경우 대개 대형금융기관이 참여하는 만큼 자금지원 등에 있어 혜택을 주는 등 제도 마련을 통해 국내 IB가 커나갈 수 있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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