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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대학입시제도와 수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12.22 16:46

수정 2014.12.22 16:46

[차장칼럼] 대학입시제도와 수능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1월 13일)이 치러지기 일주일 전인 지난달 초. 인터넷의 한 유명 수험생 카페에는 초조한 심경을 담은 학생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당연히 수능을 앞둔 불안함 때문일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이들의 고민은 예상과는 달랐다. 수시전형에 지원한 대학의 합격자 발표 예정일이 수능일 직전인 11월 11일이었기 때문이다.

수능 최저등급기준을 폐지한 대학의 수시전형에 최종 합격할 경우 수능은 의미가 없어진다. 수시 합격자가 심심해서 수능을 치르다 지루해서 중간에 나왔다는 '전설적'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수시 합격자 발표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합격-불합격자에게 수능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수시 합격자 발표일이 수능일 근처인 대학 중에는 예정보다 먼저 명단을 공개하는 곳도 있다.

수험생들은 "조기발표가 나야 탈락해도 수능에 집중할 수 있다"며 대학의 입시 담당부서에 일정을 앞당겨 주기를 요청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수시 탈락의 후유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수능을 치르려는 절실함이 엿보이는 상황이다.

수능 전 수시 합격자 발표일 문제가 초조함이었다면 수능 점수 발표 이후에는 학생과 대학 모두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이른바 '수시 납치'다. 이는 수능에서 평소 실력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수시에 지원한 대학에 합격, 더 좋은 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을 지칭하는 수험생들의 은어다.

실제로 올해 사상 최대 '물수능' 속에 등장한 29명의 만점자 가운데도 '수시 납치'의 희생양이 된 학생이 등장했다.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지만 수시 합격자 명단에 포함돼버린 것. 현 입시제도는 수시에서 합격할 경우 정시 지원을 할 수가 없다. 수시전형에서 안전지원을 했던 학생의 "안타깝고, 슬프고, 눈물 난다"는 말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수시 합격자가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앞날이 불투명한 재수를 택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대학들은 수능 점수가 수시전형의 기본적 자격요건 정도라는 입장이지만 합격자가 도망을 가버리는 모양새는 당혹스럽다.

수능은 지난 1994년 시작돼 올해로 벌써 21년차에 이르는 시험이다. 수능이 의미를 갖는 것은 시험을 치르는 모든 학생의 땀과 노력이 객관적으로 채점되기 때문이다. 수십년 전부터 출제기관의 담당자들은 매년 수능 당일 아침 등장해 "정규 교육과정을 성실하게 공부한 학생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수십년의 내공이 쌓일 동안 수능은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해마다 지적을 받아왔다. 올해 수능은 출제방식에 대한 문제점이 공론화되며 대대적인 수정이 예고된 상황이다.

수능은 현 대학 입시제도의 상징이자 핵심적인 요소다.
문제점이 드러났다면 이를 수정·보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수능은 다른 의미에서는 입시제도라는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다.
한 조각만 바꾼다고 새로운 퍼즐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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