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9월 기획재정부를 박차고 나와 자본시장의 꽃을 피우겠다며 꿈을 불사르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잘해야 본전'인 곳으로 통하던 투자은행(IB)에 둥지를 튼다. 그에겐 넘지 못할 벽이 아니었다.
첫발을 들여 놓은 NH투자증권(옛 NH농협증권)을 구조화금융(SF) 강자로, KDB대우증권과 KB투자증권을
프로젝트파이낸싱과 기업금융시장 강자로 키워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이 그의 자산이다.
시장에선 그를 구조화금융 전문가, 새로운 금융영토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한다.
올 1월 KB투자증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전병조 대표(51) 얘기다.
대담=박승덕 증권부장
증권업계에 불어닥친 칼바람이 매섭다. 외환위기 때보다 상황이 더 어렵다는 증권사 직원들의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새내기 CEO인 전병조 KB투자증권 사장은 담담하게 새로운 미래를 얘기한다. "대한민국 최고를 넘어 세계 금융시장에서 인정받는 종합금융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다. 10~30년 후를 내다보고 최고의 증권사를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닦고 싶다."
전 사장은 그 첫발을 떼면서 'KB금융그룹 내 자본시장의 미래 성장동력 역할 강화'라는 3개년 중장기 전략방향을 수립했다. 또 3대 중점 추진과제로 '핵심사업 시장 지배력 강화' '상품경쟁력 제고를 통한 신규 수익 확보' '자산관리(WM) 사업부문 흑자 기조 공고화'를 추진하고 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 끈기와 열정의 교훈을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당나라 때 시성(詩聖) 두보와 함께 시선(詩仙)으로 불렸던 이백이 이 고사의 주인공이다. 이백이 냇가에서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려는 노파를 보고 비웃자, 노파가 "중도에 그만두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해 크게 깨달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마부작침의 각오로 뛰고 있는 전병조 사장. 그가 꿈꾸는 KB투자증권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KB지주의 '미션'과 '의중'은 뭐라고 생각하나.
정보기술(IT)과 모바일의 진화로 은행 업무는 머지않아 사람이 필요 없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모바일 환경에 대비해 모든 것을 고객 위주로 바꿔야 한다"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말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WM과 CIB(기업투자금융) 비즈니스는 다르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CIB 비즈니스는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을 생각으로 뛰겠다. 인수합병(M&A) 인수금융,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인수금융은 현재 H사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KB투자증권은 프로젝트금융에 강하다. 프로젝트금융은 3~4년씩 걸리는 장기 비즈니스인 만큼 잘만 하면 핵심 코어 비즈니스로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KB투자증권만이 이 역할을 할 수 있고, 그룹도 이를 기대하고 있다.
■M&A를 통한 인수합병 계획은.
M&A로 덩치가 커진다고 경쟁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 가치에 앞서 전문인력 보유와 자본력이 중요하다. KB증권은 아직 대형사에 비해 자본력은 약하지만 강점을 갖고 있다. 7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온 게 이를 방증한다. 물론 필요하다면 M&A도 검토해 볼 문제다. 특히 그룹과의 시너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자칫 WM부문 같은 경우 '자기시장잠식(cannibalization)'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문제인 만큼 M&A를 위해선 철저한 준비와 사전 테스트 선행이 필수다. KB금융지주의 LIG손보 자회사 편입에 따른 LIG증권 문제는 아직 논의 단계가 아니다. LIG손보 합병이 끝난 후 시황이 좋아지면 매각으로 기울 것이고, 정 안되면 (KB증권과) 붙일 수도 있다.
■모바일 업무환경을 구축 중이라던데.
고객 플랫폼이 모바일로 바뀌는데 우리만 엉덩이 붙이고 있으면 되겠나. 아직 내세울 단계는 아니다. 모바일 환경에 맞춰 비즈니스 프로세스 혁신(BPR)을 추진할 계획이다. 시장 '신뢰' 측면에서도 변해야 한다. 내부통제나 감시·감독만으로는 금융사고를 막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절차가 없어 사고나는게 아니라 행위자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벤치마킹 모델이다. 예를 들면 특정 영업부서에서 10억원에 대한 자료가 자금운용 등의 부서로 넘어오면 '10억원' 숫자를 시스템에 입력하고. 내용을 집어 넣어야 결재과정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업무 전번에 걸쳐 '공정설계'를 다시 할 생각이다. 구상중인 시스템이 구축되면 보안 강화는 물론 업무효율의 극대화와 비용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올해 경영 계획이나 목표는
지난해에 너무 잘하다 보니 2년차 징크스가 걱정이다. 특히 은행과 연계해 CIB부문의 영업을 강화할 생각이다. 해외시장도 발을 더 넓힐 생각이다. 직접 진출 보다는 KB금융그룹의 CIB 경쟁력 강화와 연계해 은행의 현지법인이나 지점과 협업체제를 구축하고 해외 프로젝트 금융에 참여할 생각이다. 아울러 유수의 해외 금융기관과(BOC·CIMB 등)의 양해각서(MOU)를 통해 해외 비즈니스 네트워크(Business Network)도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역외 유니버설뱅킹 허용으로 해외에서 다양한 금융업무를 영위할 수 있는 만큼, KB국민은행과 협업을 통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할 방침이다.
정리=kmh@fnnews.com 김문호 기자
■ 전병조 사장은
'관피아·낙하산….' 관료 출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내는 말들이다. 전병조 KB투자증권 사장(51)은 관료 출신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인 22살에 행정고시(29회)에 합격해 '천재 소년'으로 불렸다. 공직 생활도 탄탄대로였다. 재정경제원 시절 금융정책과와 재정경제부때 지역경제정책과,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고위공무원 등을 두루 거쳤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켠엔 늘 아쉬움이 있었다. "국제금융국에서 대부분을 보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협상 실무 책임자도 해봤지만 허전했다. 호기심이 자본시장으로 이끈 것 같다." 학교와 공직생활에서 배운 지식·경험을 현장에서,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보탬이 될 수는 없을까를 고민 하던 중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증권시장에 첫발을 내딘 것은 2008년. 처음엔 공무원 출신이란 이유 하나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적잖았다. 그는 실력 하나로 시장의 고정관념을 깼다.
첫 직장인 NH투자증권(옛 NH농협증권)을 구조화금융(SF) 강자로 끌어올렸다. 그는 또 지난 2012년 대우증권에서 공기업 최초로 1000억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을 주관했다. 발전사업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는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유럽 투자은행을 제치고, 세계 최대인 1조 5000억원대 영국 티스포트 바이오매스 발전사업 금융자문사로 참여한 것. 해양수산부 파견 시절에는 허베이 스피릿호 기름유출 사건을 총괄했다. KB투자증권을 채권발행시장(DCM)과 주식발행시장(ECM) 등 IB시장에서 업계 최고 증권사로 올려놓은 것도 그다.
전 사장은 요즘 가장 큰 고민이 하나가 있다. 어떻게 하면 직원이 행복한 KB투자증권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실감나게 담아내며 대한민국의 공감을 이끌어냈던 인기 드라마 '미생'. 전 사장은 "미생의 '마부장, 박과장, 성대리'와 같이 완장차고 갑질하는 조직문화부터 뿌리 뽑고, 사내 문화를 바꿔나갈 생각"이라고 의욕을 내비쳤다.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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