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배우들 '드림팀'…원작보다 재밌을걸요
할리우드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 '맨 프럼 어스'를 무대에 올린 최용훈 연출가는 "영화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연극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박범준 기자
행정가로서 지난해 1월까지 14개월간 국립극단 사무국장을 지내면서 연출가 최용훈(52)은 작품 활동에 목말라 있었다. 사무국장직에서 내려오자 마자 연달아 네 작품을 몰아친 이유다. 이 가운데 지난해 11월부터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하고 있는 '맨 프럼 어스'는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해가 바뀌고도 여전히 관객몰이 중이다. 1만4000년을 산 사람의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설정부터 배우 이원종의 프로듀서 데뷔작,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2007년)를 연극화한 세계 첫 무대, 연극·영화·드라마를 종횡무진하는 베테랑 배우들의 총출동으로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뚜껑을 열었을 때 관객들의 기대감은 만족감으로 터져나왔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용훈 연출은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많이 웃었다. 관객의 사랑을 듬뿍 받는 연극의 연출다웠다.
원작 영화의 호평으로 인한 부담감은 없었다. "영화는 보지도 않았어요. 원래 스스로 판단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참고자료를 잘 안 봐요. 다만 영화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연극으로 만들려고 많이 고민했죠. 영화는 다양한 편집기술로 관객을 더 쉽게 끌어들이는데 연극은 불가능하니까 음악의 사용이나 배우 동선, 템포를 세밀하게 신경썼어요."
작품에서 1만4000년을 살았다고 주장하는 건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 역사학 교수 존 올드맨이다. 학장 자리도 마다하고 학교를 떠나야 했던 이유는 10년, 그가 늙지 않는다는 걸 주변인들이 알아챌 수 있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동료 교수들과의 마지막 자리에서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진실을 털어놓는다. 심리학, 인류학, 생물학, 고고학, 미술사학 등 자신의 분야를 토대로 동료들은 올드맨의 주장을 검증하려고 한다. 다소 전문적인 지식이 나열됨에도 불구하고 촘촘한 호흡으로 진행되는 흥미로운 토론에 관객들은 몰입한다.
"연기적인 디렉션이 크게 필요 없었죠. 배우들이 워낙 다 베테랑이라 재량에 맡겼어요. 다만 동선을 포함한 움직임은 세밀하게 통일했어요. 캐스트가 여럿이다 보니 이게 안 맞으면 작품이 흐트러질 수 있거든요."
화려한 캐스트를 빼놓고는 이번 공연을 말할 수 없다. 문종원, 박해수, 여현수가 주인공 올드맨을 맡았고 김재건, 최용민, 정규수, 서이숙 등 내공있는 배우들이 탄탄하게 극을 떠받친다. 이원종과 최용훈 연출이 머리를 맞대고 캐스팅에 공을 들인 결과였다. 둘의 인맥이 시너지를 냈고 제안을 했을 때 대부분의 배우들이 흔쾌히 승낙했다. 아쉽게 함께하지 못한 배우도 있었다. "이런 올드맨은 어떨까 싶어 배우 고수에게도 제안을 했었어요. 스케줄 조정이 안돼 굉장히 안타까워 하더라구요." 최 연출은 "바쁜 배우들의 스케줄 때문에 더블, 트리플로 캐스팅을 하다보니 드림팀이 구성됐다"며 또 한번 크게 웃었다.
28년 연출인생에서 최 연출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관계'다. 총 21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이번 작품의 컨트롤 타워로서 가장 신경쓴 것도 '팀 분위기'였다. 연습 시작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공연이 끝난 뒤 술자리를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1986년 창단해 한국 연극계 대표 극단으로 자리잡은 '작은 신화'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사람을 좋아하는" 연출이다. 80% 이상 창작작품을 연출하는 것도 "작가들과 부대끼며 좋은 작품을 건져내 무대에 올리는 재미가 있어서"다. 오는 4월에도 '작은신화'의 대표로서 그런 작품 '합석전후'와 '혜주 미용실' 두 편을 세상에 내놓는다.
"연극 작업은 사람간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제 연출 철학이기도 해요. 함께하는 스태프, 배우들과 친해져야 작품에 대한 얘기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거든요. 이번 공연은 팀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그 좋은 에너지가 관객들에게도 전달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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