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 인천=윤경현 기자】 식품 수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3년 기준으로 수입한 식품을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23조6000억원에 달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가 간 교역 확대로 인해 식품 수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다양한 제품이 국내로 수입되면서 위해사고 발생 시 유해물질이 지역과 국경을 넘어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식품안전에 대한 국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식품안전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실시한 한 설문조사 결과 국민 5명 중 1명은 식품안전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입식품의 검사를 책임지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항상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다. 작은 실수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식약처 산하 6개 지방식약청 가운데서도 가장 바쁜 곳이다. 인천공항, 인천항, 평택항을 통해 중국, 일본은 물론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각종 가공식품과 식재료, 약재 등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온다. 연간 4만여건의 식품.의약품을 시험·검사하며, 수입식품의 경우 전체 물량의 약 55%를 책임지고 있다.
지난 22일 인천항 인근 보세물류창고를 돌아다니며 수입식품 검사를 벌이는 경인식약청 수입관리과 김학수 검사관(33)과 박현선 검사관(28·여)의 하루를 따라가봤다.
■미로 같은 물류창고 곳곳에 위험
김 검사관과 박 검사관을 만난 것은 오후 2시께 인천항 건너편 신흥동의 한 보세물류창고였다. 뒤칸 일부를 짐 싣는 용도로 개조한 승합차에는 '수입식품 관능검사차량'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김 검사관이 "시간이 촉박하다"며 얼른 차에 오를 것을 종용했다. 차 안은 검체를 담는 비닐백(봉지)으로 가득했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이들은 경력 3년차의 검사관이다. 김 검사관은 민간기업에서 5년 동안 식품안전 관련 업무를 맡았었고, 박 검사관은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에서 일하다 수산물검사 업무와 함께 식약처로 옮겨왔다.
김 검사관은 "오전에는 사무실에서 수입신고 접수를 하고 오후에는 바로 검체를 채취하기 위해 현장으로 나온다"면서 서류뭉치를 보여줬다. 그는 "보통 하루에 15∼20개 물류창고를 돌아다니는데 오늘은 12개 업체로 평소보다 훨씬 적다"고 부연했다. 곁에 있던 박 검사관이 "20개 창고를 돌면 오후 5시가 훌쩍 넘는다"며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사무실로 돌아가 검사를 의뢰하고 현품을 확인하는 데 1∼2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퇴근시간을 지키는 것은 일주일에 하루도 안된다"고 거들었다.
5분가량 이동해 첫 번째 물류창고에 도착했다. 수거할 검체는 과자였다. 박 검사관이 화물관리번호와 수입화물 품목카드를 확인한 후 "맞다"고 알려주자 김 검사관이 주저 없이 포장박스를 뜯고는 품목별로 3개씩 비닐백에 나눠 담았다.
숨돌릴 틈도 없이 냉장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 검사관이 박스에서 양상추 한 통을 꺼내 유심히 살펴보더니 냄새를 맡고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관능검사를 실시하는 중이었다. 그는 "관능검사는 제품의 성질이나 상태, 맛, 냄새, 색깔, 표시, 포장상태 등을 검사하는 것"이라며 "관능검사에서 위해 발생 우려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정밀검사를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잠시 후 김 검사관의 손에는 브로콜리가 들려 있었다.
박 검사관은 그새 베트남산 뼈포와 쥐포가 가득 쌓인 곳으로 갔다. 박스 6개를 골라 포장을 연 다음 수거용 비닐백에 검체를 한 움큼씩 담았다. 그뿐 만이 아니다. 다섯 박스는 따로 챙겼다. 미생물검사가 필요한 경우 포장을 열면 교차오염의 우려가 있어 박스째 가져간다고 했다.
쥐포가 담긴 박스 하나가 10㎏, 총 50㎏의 만만치 않은 무게다. 박 검사관은 "동료 검사관 16명 가운데 13명이 여성이라 남자 검사관과 동행을 하는 날은 운이 트인 날"이라며 "여성 검사관들끼리 나왔을 때 무거운 검체를 옮기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깨나 고추씨 등 일부 농산물의 경우 40∼50㎏에 달하는 포대를 차에 실어야 한다. 김 검사관이 "무거운 것을 들다 허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김 검사관이 포장 위에 큼지막한 글씨로 '검체 반환'이라고 썼다. 그는 "말 그대로 '검사를 마친 후 물건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뜻"이라며 "검사가 끝난 뒤 폐기처분하는 것도 있고 수입업자에 돌려주는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옆에서는 박 검사관이 수거한 양을 확인하고 물류창고 관계자에게 서명을 받았다. 혹시라도 중간에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5∼6곳의 물류창고를 돌고 나니 어느새 시곗바늘은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차 안은 수거한 검체들로 절반이 채워졌다. 다음 창고로 이동하기 위해 후진하는 순간 '쿵'하는 충격이 온몸을 강타했다. 소형 트럭과의 접촉사고였다. 대형 컨테이너와 지게차들이 미로를 형성하고 있는 물류창고에서는 얼마든지 발생가능한 사고였다. 운전을 하던 김 검사관은 업무 중 경험하는 첫 사고라고 했다. 박 검사관은 "운전이 능숙하지 못한 여성 검사관들에게 복잡한 물류창고는 시험대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루 최대 26개 창고서 검체 수거
사고를 수습한 후 이동한 물류창고에서는 일본산 채칼과 야채분쇄기를 수거했다. 식품뿐만 아니라 식품 용기와 기구, 포장까지도 검사대상이라는 점이 의외였다.
널찍한 물류창고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기자는 지게차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아찔한 순간을 몇 차례나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김 검사관과 박 검사관의 발놀림은 놀라울 만큼 재빠르게 지게차의 동선을 피해다녔다. 박 검사관은 "지게차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위협적이긴 마찬가지"라며 "이를 피해서 해당 품목이 적재된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기술"이라고 했다.
중국산 술과 약재로 주로 쓰이는 천궁·애엽 등도 이날의 검사대상이었다. 박 검사관이 애엽이 담긴 포대를 자세히 보더니 "신고내용과 다르다"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는 "신고서류에는 30㎏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24㎏짜리 포대"라며 "신고자에게 연락해 정정신고 안내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해서는 창고 위치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 올라타자 박 검사관이 물류창고 이름을 댔고, 김 검사관은 단박에 찾아냈다. 인천항에는 식품을 취급하는 물류창고만 200여개나 된다는데 어떻게 손쉽게 찾는지 궁금했다. 김 검사관은 "처음 창고의 위치를 외우는 데만 2∼3개월이 걸렸다"면서 "창고들이 없어졌다, 생겼다를 반복하고 상호를 변경하는 경우도 있어 애를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음 물류창고에서는 건고사리를 수거했다. 이날은 수입물량이 적어 두 박스만 개봉했으나 많을 때는 최대 16박스까지 뜯어 검체를 채취한단다. 지게차와 컨테이너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니 이번에는 캐나다에서 들여온 포장재 랩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검사관이 물류창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큰 롤에서 10여m를 잘라서 비닐백에 담았다. 마지막 수거품목은 염장 연근이었다. 검체를 채취한 후 김 검사관이 "염장 연근을 보니 생각이 났다"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품목 중 하나가 단무지용으로 수입되는 염장 무"라고 털어놨다. 대부분 400㎏짜리 궤짝으로 포장돼 들어오는데 깨끗한 위생상태에서 검체를 채취해야 하고, 채취하는 양도 많기 때문이다. 김 검사관은 "멸균봉투를 써야 하고, 손에 알코올도 뿌려야 한다"며 "보통은 600g씩 5개를 수거하는데 수입량이 많으면 10개까지 늘어나 30분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박 검사관은 가장 당황스럽게 만든 품목으로 식용 개구리를 꼽았다. 그는 "살아있는 식품이 들어오는 사례가 드물다"면서 "축산물도, 수산물도 아니어서 식약처로 넘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드물지만 주말에도 검사를 나와야 할 때가 있다. 김 검사관은 "유전자변형(GMO)이 의심되는 미국산 밀이 검사대상이었는데 모선에서 하역작업에만 4∼5일이 소요됐다"며 "중간중간에 계속 검체를 채취해야 해서 주말이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오후 4시가 넘어 검사관들을 태운 차는 정부과천청사로 방향을 잡았다. 2시간 동안 수거한 검체는 모두 38개 품목이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제외하고는 수거한 검체들로 가득 채워졌다. 검사관들은 화장실 한 번 가지 않았고 물 한 잔 마실 여유도 갖지 못했다.
김 검사관은 "최고로 많은 날에는 26개 물류창고를 돌아다니며, 70여개 품목의 검체를 수거해 차에 다 싣기 힘들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박 검사관이 "오늘은 날씨까지 좋아 일하기가 훨씬 수월했다"며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이동이 불편해 시간이 배로 걸린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검사관들이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중국의 춘제(2월 18∼24일)다. 수입식품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물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김 검사관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기간이어서 휴가도 다녀오고 한다"며 "반대로 설·추석 명절을 앞두고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고 말했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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