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리턴매치' 朴대통령과 대립각 세우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2.08 21:55

수정 2015.02.08 21:55

문재인 대표는..

문재인 신임 당대표(62.부산 사상)는 야권 대선후보 사상 가장 많은 득표를 했음에도 대선에서 패배한 비운의 인물.

하지만 정치 입문한지 불과 3년 만에 제1야당 대표로 '선출직 권력'을 얻으면서 본격적인 자기 정치를 펼치게 됐다. 특히 대선후보로 경쟁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3년차에 접어들어 대국민 소통 부재, 내각 인사 논란, 정책 당청 갈등 등을 겪으면서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시점에서 박 대통령과의 '리턴매치'를 통해 정부·여당과 제대로 된 대립각을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유명한 그는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장례 과정에서 상주 역할을 맡으며 보여준 절제력과 의연함으로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정치권에서는 이 일이 그가 처음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첫 사례로 보는 시각이 많다. 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뒤늦게 사법시험에 뛰어든 문 대표가 판사를 지망했지만 학생운동 전력이 있어 임용이 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결국 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난 그는 각종 인권·시국·노동 사건을 기꺼이 맡다 보니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고 말한다.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두려했다" "정치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던 그는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결국 현실정치의 길로 뛰어들었다. 이명박 정권의 퇴행을 더는 두고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2012년 4월 부산 사상구에서 총선에 출마한 그는 정치신인으로 부산에서 당선되며 19대 국회에 입문했다. 그리고 불과 두 달 뒤 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고 100만 국민이 참여한 당시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13번 모두 1등을 차지하며 대통령 후보가 됐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 후보와 쉽지 않은 단일화도 거쳤지만 결국 대선에서 패했다.

이번 전당대회 출마에 있어서도 대선 실패의 책임을 묻는 당내 반대세력과 '당권-대권 후보 분리'를 줄기차게 주장한 박지원 후보와 끈질긴 승부를 벌여야 했다. 하지만 문 대표는 이번 경선에서만큼은 강한 권력의지를 갖고 당대표에 도전했고 결국 쟁취했다.


측근에 따르면 "내가 아닌 누구라도 지금의 상태라면 우리 당 대표로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라는 생각이 문 대표가 당권에 도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한다. 문 대표는 전당대회 3일 전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끈 후 바로 당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계파갈등을 극복하고 화합과 혁신을 통해 내년 총선만을 향해 달리겠다는 그의 의지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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