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매 맞는 남편이 있었다는 거 알아?"
어느 날 저녁 TV 뉴스를 보던 아내가 질문을 던졌다.
'믿을 수 없는' 심정으로 "그 시대는 '삼종지도(三從之道)' '여필종부(女必從夫)'가 여자에게 최고의 덕목이었다는데 말이 되는 얘기냐. 그 반대겠지"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그저께부터 읽고 있는 책('조선의 부부에게 사랑을 묻다' 정창권 지음)에 나온 얘기라며 눈앞에 들이밀었다.
책에 따르면 조선 중기 충남 공주의 무인 우상중은 '전함에 기생을 태웠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볼기를 맞은 것은 물론 수염까지 베이는 수모를 당했다. 또 덕산현감 이형간은 부부싸움 끝에 집에서 쫓겨나 동헌에서 자다 목숨을 잃었다. 중종 12년(1517년)에는 한 해 동안 남편들이 매를 맞는 사건이 6건이나 발생했고, 임금이 어전회의에서 "이러다가는 조선 남자의 씨가 마르겠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예나 지금이나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아내와 아이들이다. 하지만 상당수 남편이 아내에게 얻어맞고 사는 것 또한 사실이며, 최근에는 그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경찰에 신고된 남편 대상 가정폭력은 모두 1100여건에 달했다. 1년 만에 3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쪽팔려서' 신고하지 못한 남편들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 가정폭력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 남성의 전화'에 접수된 상담건수는 지난해 2230건에 달했다.
매를 맞는 남편들이 아내보다 체격이 작거나 힘이 약한 것은 아니다. 외국의 경우 아내가 던진 재떨이에 맞아 코뼈가 부러진 권투선수, 야구방망이에 맞아 무릎 뼈가 부러진 유도 선수도 있다. 무엇보다 남편이 경제적인 능력을 상실해 가정 내에서 주도권을 빼앗긴 탓이 크다. 서울의 모 지구대 경찰관은 "남편이 매를 맞는 현장에 출동해보면 남편이 직장을 잃고, 아내가 돈을 버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실제로 남편들은 40∼50대에 조기퇴직을 하면 새로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일용직조차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소연한다. 반면 아내들은 주방일 등 적은 수입이라도 일을 할 수가 있어 자연스레 경제권을 쥐게 되고, 이는 무능력한 남편에 대한 폭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더구나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된 남편들은 보호도 받지 못한다. 아내의 경우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오면 쉼터나 피해자긴급보호센터 등 잠시 몸을 맡길 곳이 더러 있지만 남편은 그렇지 못하다. 말 그대로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고만다. "남편이 아내의 폭력을 피해 집을 뛰쳐나오면 노숙자가 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도가 없다"는 어느 경찰의 말이 현실을 잘 대변해준다.
법도 남편들에게 더 냉정하다.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피해를 본 아내는 굉장히 보호를 받지만 남편이 아내에게 폭행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믿어주지 않을뿐더러 훨씬 엄격한 증거를 요구한다. 남편들은 이래저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모든 가정폭력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남편들에게도 좀 더 따스한 손길이 닿았으면 한다. 남자건 여자건 맞으면 아픈 것은 매한가지다. 머잖아 '매 맞는 남편의 집'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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