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 인프라 건설을 지원할 은행 설립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한판 붙었다. 그 패권경쟁이 중국의 승리로 기울고 있다. 미국은 전후 70년간 국제금융 무대에서 어느 나라도 거역하지 못한 절대 강자였다. 막강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세계의 돈줄을 좌지우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만들겠다는 것은 미국의 글로벌 금융패권에 대한 반발이자 도전이었다. 이 도전에서 중국은 미국의 동맹국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권력이 미국에서 중국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중국은 지난해 8월 주변 20개 개도국과 함께 AIIB를 설립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중국은 주변 개도국들과 공동으로 아시아에 중국판 마셜플랜이라 불리는 초대형 인프라 건설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중국 내륙~중앙아시아~중동~유럽을 철도로 연결하고 바닷길로 동남아~인도~아프리카~유럽을 연결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이 그것이다. AIIB는 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아시아의 인프라 개발 수요는 8조달러(9000조원)에 이르지만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 등이 거의 자금지원을 못해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 중국 측의 주장이다.
미국은 즉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양해각서를 맺은 나라들 중 AIIB에 돈을 댈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인도 정도였다. 미국은 자본력이 있는 서방 동맹국들의 참여를 막아내면 AIIB는 사실상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차이나머니의 힘 앞에서 미국의 저지선은 맥없이 뚫렸다. 영국에 이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이 잇따라 중국의 손을 잡았다. 한국과 호주도 참여 의사를 비쳤다. 적어도 35개국 이상이 창립 멤버로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은 미국과 그의 아성인 국제통화기금(IMF)과도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손을 내밀었다. 중국이 오너가 되고 미국의 동맹국들이 대거 참여하는 번듯한 국제금융기구가 다음 달 출범한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무기와 돈이다. 중국의 연간 국방예산은 아직도 미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제력은 미국의 60%까지 따라 갔다. 외환보유액이 4조달러에 육박하며 미국 국채 1조3000억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자 무역적자국이지만 중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자 세계 2위의 무역흑자국이다. 이르면 향후 10년 안에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중국은 이제 돈에서는 미국에 꿇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2008년에 미국은 혹독한 금융위기를 겪었다. 중국의 눈에는 미국의 약점들이 많이 보였을 것이다. 지난해 말에는 니카라과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대운하를 착공했다. 미국의 파나마운하 바로 위쪽에 파나마운하와 경쟁하는 운하를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이다. 니카라과는 중남미의 대표적인 반미 국가다.
세계경제의 성장 중심축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힘의 공백을 파고들어 자신의 세력권을 여기저기 확대하고 있다. 일대일로 구상과 AIIB를 발판으로 아시아에 자국 중심의 거대한 경제권을 형성한다는 계획도 그중 하나다. 성장동력이 고갈되고 있는 한국 경제에 이것은 새로운 동력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까딱하면 우리 경제가 중국의 하청 경제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경제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중국을 최대한 활용하는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험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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