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49) 하룻밤 새 10㎞ 누비며, 매의 눈으로 '짝퉁' 단속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4.01 17:08

수정 2015.04.01 17:46

서울 중구청 위조상품 전담 태스크포스

'짝퉁' 단속에 나선 서울 중구청 위조상품 전담 태스크포스(TF) 수사관들이 지난달 26일 밤 동대문패션타운의 한 상가에서 '가짜' 명품 시계를 판매하는 매장을 단속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짝퉁' 단속에 나선 서울 중구청 위조상품 전담 태스크포스(TF) 수사관들이 지난달 26일 밤 동대문패션타운의 한 상가에서 '가짜' 명품 시계를 판매하는 매장을 단속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서울의 한복판인 중구에는 명동과 동대문, 남대문시장 등 3곳의 관광특구가 있다. 한 해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 가운데 절반을 웃도는 800여만명이 이들 관광특구를 거쳐간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쇼핑을 즐기며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명동과 동대문시장 등지에서 팔리는 '짝퉁' 상품은 그동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대한민국은 짝퉁 천국'이라는 인식을 강렬하게 심어줬다. 3개 관광특구를 모두 관할하는 중구청이 '짝퉁' 상품을 단속하는 전담팀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중구청 관계자는 "서울의 관광특구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위조상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창피해서 안되겠더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밤 서울 중구청 시장경제과 위조상품 전담 태스크포스(TF) 소속의 특별사법경찰관들과 함께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명동·남대문으로 나갔다. "향후 업무에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당사자들의 우려에 따라 조덕진 팀장을 제외하고는 성만 공개한다.

■지속적 단속에 '짝퉁' 줄어

위조상품 전담 TF의 사무실은 건물 옥상 쪽켠에 별도로 마련돼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한 층은 걸어올라가야 하고, 인터폰을 통해 방문자를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어준다. 모두가 단속에 적발돼 조사를 받으러 나오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시곗바늘이 오후 9시30분을 가리키자 조 팀장과 수사관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명동을 시작으로 동대문을 둘러볼 계획이란다. 조 팀장은 "남대문은 오후 7∼8시면 노점들이 문을 닫고 명동은 보통 10∼11시까지 장사를 한다"며 "동대문은 오후 10시30분께 문을 열어 다음 날 새벽 2∼3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수사관들은 "2∼3일에 한 번씩 야간단속을 나가면서 체력적 부담과 함께 생체리듬이 깨져 힘들다"며 "오죽하면 구청 내에서 기피부서로 첫손가락에 꼽히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특히 '짝퉁'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야간단속을 마친 다음 날에도 단속에 걸린 노점상들을 조사하느라 쉬지도 못했다. 조 팀장은 "올해 들어서도 2월까지는 9명이 3개조로 나뉘어 주말·휴일도 없이 매일 야간단속을 벌였으니 지금은 근무여건이 훨씬 나아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날 단속에 투입된 수사관은 모두 6명이었다. 그중에서도 TF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조 팀장은 2013년 3월부터 2년을 꼬박 단속에 나서고 있는 '짝퉁' 적발의 달인이다. 지난해 1월부터 TF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 수사관 역시 '짝퉁'을 취급하는 이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라고 불릴 정도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수사관들이 도착한 곳은 명동 은행연합회관 앞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장 수사관이 "다리가 좀 아플텐데 준비 단단히 하고 왔느냐"고 농담을 건넸고, 기자는 "전혀 문제 없다"며 웃음으로 답했다. 그는 "단속을 나왔을 때 걷는 거리가 보통 10㎞ 안팎"이라고 했다.

수사관들은 흩어져서 명동 골목골목을 누볐다. 의류,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이 나타나면 느린 걸음으로 훑고 지나가기를 계속 반복했지만 장 수사관의 날카로운 레이더에 걸리는 노점은 없었다. 장 수사관은 "명동은 지갑이나 벨트, 액세서리 '짝퉁'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지속적인 단속 덕분에 크게 줄었다"며 "명동 노점의 상당수가 음식으로 업종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본 관광객이 '짝퉁' 제품의 주요 고객인데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눈에 띄게 뜸해졌다"며 "중국인 관광객은 자기 나라에도 좋은(?) '짝퉁'이 많아서인지 잘 안 산다"고 덧붙였다.

조 팀장은 "매일 단속을 나오다 보니 버젓이 진열해놓고 파는 사례는 거의 없어졌다"며 "과거에는 2∼3명이 단속을 나가도 다 못 잡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건당 압수물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강조했다.

서울 중구청 위조상품 전담 태스크포스(TF) 수사관들이 지난달 26일 밤 명동 거리에서 '짝퉁'을 판매하는 노점상을 단속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서울 중구청 위조상품 전담 태스크포스(TF) 수사관들이 지난달 26일 밤 명동 거리에서 '짝퉁'을 판매하는 노점상을 단속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예리한 눈으로 '짝퉁' 찍어내

오후 11시가 가까워오자 명동에서 허탕(?)을 친 수사관들은 동대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수사관들은 어디서부터 훑어볼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장 수사관은 "노점들의 경우 단속반이 뜨면 재빨리 도망을 가버리기 때문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동선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동대문에 다다르자 신 수사관이 "오늘의 마지막 코스가 될 것"이라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너편을 가리켰다. 인도에는 이미 노란색 천막이 줄지어 서있었는데 어림잡아봐도 200m는 족히 되는 듯했다. 조 팀장은 "명동이나 남대문은 수사관들도 활동력이 왕성한 시간대여서 그나마 낫지만 동대문은 새벽에 주로 단속을 하는 터라 두세 배로 힘들다"고 푸념했다.

수사관들을 태운 승합차는 작은 골목길에서 멈췄다. 대형 상가들이 모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 수사관은 "동대문의 30여개 대형 상가 가운데 '짝퉁'을 취급하는 곳은 10곳 정도"라며 "이들 상가를 위주로 단속을 벌인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인근에는 구청 직원들이 무리를 지어 서있었다. 조 팀장은 "원래 '짝퉁'의 천국이었던 골목인데 지난해 10월부터 노점 설치를 막기 위해 밤마다 지키고 있다"며 "덕분에 노점이 모두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고 설명했다.

한 대형 상가 앞에 이르자 조 팀장이 수사관들을 향해 점검할 구역을 정해줬다. 기자는 장 수사관을 따라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여성용 의류와 신발 등을 파는 소형 매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미로 같은 매장 사잇길을 장 수사관은 희한하게 잘 찾아서 돌아다녔다.

상가 안에 남자라고는 수사관들과 기자가 전부였다. 행동거지 역시 일반 쇼핑객들과는 달라 단박에 눈에 띄었다. 하지만 장 수사관은 한 바퀴만 도는 것이 아니라 조금 미심쩍은 곳은 두 번, 세 번을 돌기도 했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인지 20여분이 지나자 눈이 따갑고 눈물이 자꾸 흘렀다.

1층으로 올라온 장 수사관이 한 액세서리 매장에서 '보테가베네타' 상표의 팔찌를 발견했다. 주인은 "자신이 하던 것을 잠시 판매대에 걸어둔 것"이라고 했다. 장 수사관이 주인의 동의를 얻어 매장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다른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상가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조 팀장을 뒤쫓아 액세서리 매장이 많은 지하 2층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조 팀장이 어느 매장 진열대에 있는 '구찌' 상표의 귀걸이를 발견했다. 새끼손톱 절반 크기였지만 '매의 눈'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내 수사관들이 모여들었다. 조 팀장과 다른 수사관이 매장 내부를 확인하는 사이 장 수사관은 주인으로부터 진술서를 받았다. 여기저기서 '티파니' '마크제이콥스' 등 명품을 베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상황이 대강 정리되자 조 팀장은 다시 단속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거 뭐야. 여기도 있네"라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0m도 떨어지지 않은 시계 매장에서 '짝퉁'을 찾아낸 것이다.

조 팀장이 '샤넬' 브랜드가 새겨진 시계를 들고 추궁하자 주인은 "상표가 아니라 디자인을 차용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거짓말은 금세 들통이 났다. 수사관들이 매장 안 서랍을 열자 '샤넬' 외에 '구찌'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의 상표를 단 '짝퉁' 시계 100여개가 더 나왔다.

■신분증이 가장 큰 무기

한양공고 앞을 지나 노란 천막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동시간을 제외하고는 3시간 가까이 앉아 본 기억이 나질 않았다. 거리에는 일본·중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내국인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한 노점상이 장 수사관에게 알은 체를 했다. 두어 차례 단속에 적발된 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조 팀장이 "여기 장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두번씩 단속에 걸린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수사관은 "남대문시장에서는 가족들이 노점 5∼6개를 소유하면서 '짝퉁'을 판매한 사례도 있었다"며 "덕분에 엄마와 아들, 딸이 줄줄이 단속에 적발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조 팀장은 얼마 전 노점상들과 물리적 충동을 빚어 무릎에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노점상들의 상당수가 전과자 등 거친 사람들이고, 숫자상으로도 항상 밀리기 때문에 가끔 신변에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며 "보호장구를 따로 갖춘 것도 아니어서 '신분증' 하나로 누르는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단속에 적발되고도 계속 '짝퉁'을 파는 이유가 뭘까. 조 팀장은 "벌금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짝퉁' 제품의 규모 등을 따져 벌금을 매기는데 보통은 100만∼300만원에 그친다. 지금까지 최고로 큰 벌금액수는 90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였단다.

길을 걷던 장 수사관의 눈에 '데상트' 상표가 박힌 스포츠 의류가 들어왔다. 주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텐트 안에는 다른 '짝퉁' 상품은 없었다. 조 팀장은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날이 새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 3벌에 불과했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장 수사관은 '30분이 경과된 이후에도 소유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영장 없이 압수하겠다'는 알림장을 판매대에 올려둔 채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노점 사이를 눈으로 쓸고 가던 조 팀장에게 '에르메스' 브랜드와 똑같은 반지가 꽂혔다. 액세서리를 꼼꼼하게 하나하나 확인했다. '브랜드' 이름이 정확하게 찍혀 있어야 단속이 가능하다고 했다. '에르메스' '불가리' 상표를 단 반지 5개를 찾아냈다.

이번에도 주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조 팀장은 알림장과 함께 30분을 기다렸다. 봄이라지만 새벽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길거리에 서서 시간을 보내기는 여간 고되지 않았다.
조 팀장은 새벽 1시가 훌쩍 넘어서야 '상표법 위반으로 물건을 압수했으니 낮 12시까지 구청으로 와서 의견을 제시해달라'는 알림장을 남긴 채 돌아섰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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