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체감 혜택 적고 통신산업에 막대한 피해
정치권 '직접 관여' 말고 서비스 경쟁 촉진 유도를
4·29 재보궐선거부터 내년 총선까지 이어지는 본격 선거시즌을 앞두고 정치권이 선거철만 되면 들고 나오는 통신 요금 인하 압박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업계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전가의 보도' 처럼 선거철만 되면 통신비 인하 카드를 또 치켜 들었다"며 "정치권의 인위적 요금인하는 정작 수혜자인 국민들은 혜택을 체감하지 못해 불만이고, 한국 ICT 산업의 근간이 되는 통신산업은 막대한 손실로 국제 경쟁력을 잃어 두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어리석은 정책"이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9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은 현행 통신 서비스 요금에 포함된 기본료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업계에서는 우 의원 외에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통신요금 인하 정책들이 잇따라 제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여당 역시 야당의 통신요금 인하 정책에 맞불을 놓을 대안을 내놓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걱정도 확산되고 있다.
미방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4·29 재보선을 앞두고 경제정당을 표방한 야당이 서민들의 체감지수가 높은 통신비를 고리로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있다"며 "이 문제에 여당이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부담이기 때문에 우선 논의 테이블에는 올려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통사 2년치 영업익을 요금할인?
우 의원이 발의한 기본료 폐지 정책을 단순계산해 현실에 적용하면 이동통신 3사의 3년치 영업이익에 맞먹는 수익을 폐기하는 정책이다.
현재 이동통신 3사의 종량제 요금 기준 기본요금은 월 1만1000원 가량이다. 연간 1인당 13만2000원 가량의 통신비를 폐지하자는 말이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를 약 5000만명이라고 가정하면 연간 연간 약 6조 6000억원의 직접적인 손실이 예상된다.
이는 국내 이통3사의 영업이익 합계의 3년치 가량이 된다.
지난해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은 1조 8251억원, KT는 2981억원의 손실, LG U+는 576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KT가 명예퇴직금 때문에 손실을 낸 특수 상황이었던 점을 감안해 이동통신 3사의 예년 영억이익을 계산하면 연간 약 2조9000억원 가량이다.
2년치 이상의 영업이익이 기본료 폐지 정책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통신업계는 "이동통신 기술이 날로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기존 통신망을 업그레이드 하는 비용이 막대하게 소요되는데 기본료 폐지라는 단순한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항변하고 있다. 또 "연간 영업이익 보다 많은 요금할인 정책이 생기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으로서 통신업계는 다른 분야에서 소비자 혜택을 줄이고, 고용과 투자를 줄이는 수 밖에 없다"며 "표심을 위해 내놓는 단순한 요금인하 정책이 국내 ICT 산업의 미래와 기업활동을 모두 망치는 정책이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은 무책임한 법안"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체감 혜택 적어 소비자들 시큰둥
사실 가계통신비 절감 정책을 선거에 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 사례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당시 가계통신비 20% 절감 공약을 내놓은 것이다. 이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정부는 월 5000원에서 최대 1만원까지 통신요금을 직접적으로 인하할 것을 통신사에 요구했다.
그러나 ICT 산업 붕괴에 대한 우려와 산업 붕괴가 국민 경제에 직격탄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 이명박 정부는 결국 월 통신 요금 1000원 인하를 결정했다.
당시 이 정책은 이동통신 업계와 ICT 산업의 불만을 낳은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실효성이 없다'는 비난만 받았다. 결국 실적챙기기에 급급한 정부의 '전시행정'에 불과하단 평가로 막을 내렸다.
당시 소비자들은 "한달에 단돈 1000원을 아껴 가계통신비가 줄었단 걸 체감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사업자들은 "직접적으로 요금인하 압박을 가하는 대신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는 식으로 시장 자율에 맡기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 같다"며 반발했다.
■인위적 시장개입 피하고 서비스 경쟁 촉진해야
ICT 분야 한 전문가는 "민간 기업들이 경쟁하는 통신 시장에서 정부나 정치권이 직접 요금정책에 관여하는 것은 시장 붕괴의 결과를 낳는다"며 "인위적인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책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최고의 소비자 혜택이 된다는 점을 정부나 정치권이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박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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