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병동 김진숙 수간호사(왼쪽)가 이경숙 간호조무사와 함께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머리를 씻겨주고 있다.사진=윤경현 기자
경북 김천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병동 서화진 간호사가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식사를 돕고 있다.사진=윤경현 기자
【 김천(경북)=윤경현기자】'뇌종양 수술을 한 차례 받았던 아내에게 암이 재발한다. 간병을 위해 병원에서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남편의 피곤한 하루하루가 쌓여간다.'
최근 개봉한 영화 '화장'의 내용 중 일부다. 실제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가족이 입원했을 때 치료비 이상으로 보호자를 힘들게 하는 것이 '간병' 문제다. 병실 보조의자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픈 부모를 누가 간병할 것인지 형제들끼리 다툼을 벌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연구에 따르면 입원환자의 19%는 간병인을 쓰고, 35%는 가족이 이를 떠안는다. 간병비용은 연간 3조원으로, 환자 1인당 275만원이 들어간다. 입원비(231만원)보다 많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불리는 포괄간호서비스는 이 같은 고민을 단박에 해결해준다. 간병인도 가족도 병실에 없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간병까지 맡는다. 관건은 간호인력의 확충이다. 포괄간호서비스병동의 경우 일반 병동에 비해 2배 이상의 간호인력을 필요로 한다.
지난 9일 경상북도 김천에 있는 김천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병동을 찾아 기본적인 간호는 물론 환자들의 손과 발 역할까지 대신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목욕·세발까지 보호자 역할 대행
김천의료원 3층 포괄병동(32병동)에서 일하는 김진숙 수간호사(48·여)의 하루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이른 아침 7시에 시작된다. 먼저 야근조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고 회진 준비를 한다. 오전 8시30분에 시작한 회진은 오전 10가 돼서야 끝이 났다.
간호사 경력 26년차의 베테랑인 그에게도 포괄병동은 어렵고 힘들다. 기본 간호 이외에 보호자를 대신해 환자의 식사 보조나 목욕 수발 등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과, 내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등 여러 환자들이 모이는 병동이라 항상 공부를 해야 한다. 그는 "다양한 과를 경험했지만 아직도 모르는게 많다"면서 "의사가 간호사에게 환자를 믿고 맡기려면 환자에 대해, 병에 대해 그만큼 알아야 하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농촌도시의 특성상 '아이고 허리야'를 버릇처럼 외치는 노인 환자들이 많고, 포괄병동에 대한 수요도 많을 수밖에 없다. 하루 3만5000원인 유료 간병방에 비해 본인부담금 5700원만 내면 되는 포괄병동이 경제적으로도 큰 이득이다. 그래서 포괄병동의 침대는 늘 만원이다. 지난 해 병상 가동률은 93.3%, 이달에는 95.8%를 기록하고 있다. 포괄병동에 들어오기 위해 대기 중인 환자도 있다. 이날도 46개 병상 가운데 44개는 이미 주인이 있고, 2개만 비어 있었다. 그나마도 오후에 새 환자가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 포괄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모두 18명, 간호조무사까지 합쳐도 24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46개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24시간 돌보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는 6∼7명이 일하지만 늦은 밤부터 새벽에는 4명이 전부다.
김 수간호사는 "지난 해 2월 포괄병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56병상에 간호인력은 32명으로, 1명이 환자 7.6명을 돌봤다"며 "병원 증축공사 등으로 병상이 축소되면서 간호인력도 덩달아 줄어 지금은 1명이 환자 9.2명을 돌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가 남산처럼 부른 박미진 간호사(33·여)가 지나가자 김 수간호사가 그의 손을 붙들었다. 김 수간호사는 "오는 6월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애기 낳고 난 후에 병원 그만둔다고 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간호인력 구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실제 병동 내 게시판에는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채용공고가 붙어 있었다. 포괄병동 간호사의 절반은 이제 20대 초반인 1∼2년차 간호사들이다. 지난 해만 해도 14명의 간호사가 새로 들어왔지만 그중 5∼6명은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김 수간호사는 "김천과학대 등에 간호학과가 있어 인력 수급에 도움이 되고 있으나 연봉 등에 큰 격차가 있어 대다수는 서울·대구 등 대도시로 빠져나간다"고 하소연했다.
최진희 간호사(24·여)는 지난 해 간호사가 됐다. 처음에는 '보호자 없는 병동'이라고 해서 가족이 없는 사람들 내지는 불우한 사람들만 오는 병동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해보니 일이 만만치 않았다. 하루를 콜벨 울림과 함께 시작해 콜벨 울림으로 마무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는 "식사 보조와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일, 침상 목욕과 세발 등 내가 알고 있던 간호사의 일과는 너무 달랐다"며 "다른 병동 간호사들은 하지 않는 보호자 역할까지 맡아서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힘든 날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같은 2년차인 서화진 간호사(23·여)도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너무 달라 많이 힘들었던 기억 밖에 없다"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돼서 괜찮지만 지난 해만 해도 여러 번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털어놨다.
서 간호사는 또 "인력이 적어서 야간근무가 가뜩이나 힘든데 아픈 증상이 밤에 더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콜벨도 더 자주 울린다"며 "늦은 시간에는 담당 주치의를 바로 호출하기도 힘들어 애를 먹는다"고 덧붙였다.
김 수간호사가 한 간호조무사와 함께 병실로 향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머리를 씻겨드리려는 참이다. 물 없이 가능한 샴푸를 쓰는 덕분에 많이 편해졌단다. 김 수간호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환자는 제외하고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 세발은 두 번씩 해드린다"고 설명했다.
사실 포괄병동을 시작할 때 어느 선까지 해줘야 하는지 몰라 막막했었단다. 속옷을 입힌 상태에서 샤워를 시켰는데 '때를 밀어달라'는 할아버지 환자까지 등장했다. 김 수간호사는 "집에서 남편 발을 씻겨준 적도 없는데 참으로 난감했다"며 "어린 간호사들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소회했다. 결국 샤워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침상에서 세정제를 사용해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아주는 방법으로 바꿨다.
■'환자와의 교감' 포괄병동의 특권
점심식사 시간이 되자 서 간호사가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하는 한 할머니의 식사를 도와드리기 위해 나섰다. 메뉴는 비빔밥과 미역국이었다. 환자를 옆으로 �힌 채 밥 한 숟가락, 국 한 숟가락을 번갈아 떠넣어줬다. 할머니가 불편함을 호소하자 서 간호사는 환자의 자세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면서 한술이라도 더 뜨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간호사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하나같이 한국으로 시집온지 3개월 밖에 안 된 베트남 출신 여성환자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그는 지난 해 시아버지와 함께 남편이 모는 경운기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서 포괄병동에 입원했었다. 시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남편은 의식불명으로 대구의 큰 병원으로 후송됐다.
시어머니가 보호자로 있었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말을 못하는 처지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가 아파요?'라는 간단한 질문도 온갖 손짓, 몸짓을 동원해야 했다. 급기야는 사전을 들고 서로 단어를 찾아 보여주기도 했다.
최 간호사는 "보호자가 있었다면 간호사들도 이렇게까지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고, 딱딱한 환자-간호사 관계에 머물렀을 것"이라며 "포괄병동이었기에 환자와 교감할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으로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간호사들을 힘들게 하는 환자도 더러 있다. '포괄서비스'라는 단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40대 남자 환자는 '옷을 모두 벗기고 갈아 입혀달라'는 요구를 한 적도 있다. 김 수간호사는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아니어서 '도와드리기만 하겠다'고 했더니 '이런 거까지 해주는데 아니냐, 너희가 이런 거 하려고 있는거 아니냐'고 오히려 역정을 내더라"면서 "순간 '내가 이러려고 간호사가 된 게 아닌데'라는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서 간호사는 "간호사들도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가족들이 왔을 때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쏟아내시는 환자들을 보면 서운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허리 골절로 입원하신 90대 할머니는 입원기간(3개월) 내내 불만사항을 늘어놓으셨지만 정작 퇴원하실 때는 연신 '고맙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더라"며 웃었다.
최 간호사는 지난 해 가을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가 변했다고 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출근길이었다. 병원 앞에서 어떤 여성이 최 간호사를 보고는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모르는 사람이 왜 나한테 인사를 하지'라며 의아해하며 지나려는데 그 여성이 최 간호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여름에 포괄병동에 입원하신 적이 있는데 너무 친절하게 대해줘서 좋았다. 최근에 다시 입원을 하셨는데 포괄병동으로 옮길 수 없겠나" 하고 부탁을 했다.
최 간호사는 "다른 백마디 말보다 그 보호자의 '어머니가 고마워했다'는 한마디에 그동안의 모든 수고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면서 "어느덧 '나는 포괄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라는 자부심까지 생겨났다"고 말했다.
김 수간호사도 "걷지도 못하는 아픈 몸으로 왔다가 건강한 몸으로 걸어서 나가는 환자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환자들이 병원을 나서면서 '딸·아들보다 고맙다'고 인사를 할 때는 정말 뿌듯함을 느낀다"고 거들었다.
오후 2시가 넘어가면서 김 수간호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새로 오는 환자를 맞기 위해서다. 5층에 입원 중인 70대 할머니 환자라고 했다. 정형외과로 입원을 했는데 한쪽 눈은 실명했고, 다른쪽 눈도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설명이다. 그는 "간호사 하나가 전적으로 매달리다시피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환자 5명을 맡는 것보다 힘들다"며 "도움이 절실한 환자이니 할 수 있는 만큼 성심성의껏 돌봐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수간호사는 "오늘은 상대적으로 조용하지만 수술이 많거나 입·퇴원이 많은 날에는 간호사들도 더 힘이 든다"며 "얼마 전 퇴원 8명, 입원 11명이 하루에 벌어진 적이 있는데 퇴근시간 무렵에는 간호사들이 모두 지쳐서 헉헉거릴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취재를 마치고 내려오니 1층 로비에 할머니 여럿이 앉아 있었다. 그중 김천시 양천3동에 사는 이분덕 할머니(91)를 만났다. 그는 지난 해 8월 2주 동안 포괄병동에 입원했었다. 할머니는 "자기 부모도 잘 돌보지 않는 요즘 세상에 나이 들고 아픈 나를 돌봐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머리를 감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주니 좋지요. 제 부모도 아니고 생판 남이잖아요. 더럽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손주같은 어린 아이들이 목욕하는 날이라며 몸을 깨끗이 닦아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샴푸 냄새가 좋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blue73@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