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경상보조금=정당보조금, 올해 경상보조금만 400억 육박.. 국회가 액수 결정 '셀프 인상'
"원칙적으로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본다."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김문수 위원장의 발언이 나온 직후 혁신위 내부가 술렁였다. "김 위원장 개인 의견"이라고 일축하는가 하면 "정당 국고보조금제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헌법에 근거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돈을 안받겠다 하니 자칫 당 공식 입장으로 비춰질까 우려한 반응들이었다. "돈 없이 정치하기 힘들다"며 정당 국고보조금이 꼭 필요하다는 정치인들 주장을 대변하는 사건도 터졌다. 불법 경선·대선자금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키며 정치권 안팎을 휩쓴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일어난 직후 정당 국고보조금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감시 사각지대… 금액도 '셀프인상'
헌법 제8조 제3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정당에 보조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고보조가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정당이 이른바 '돈에 휘둘려'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까봐 지급되고 있다.
정당 국고보조금은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으로 나뉜다. 선거보조금은 공직선거가 있는 해에만 지급된다.
매년 4분기로 나눠 지급되는 경상보조금은 교섭단체의 구성 여부, 정당 의석수, 득표율에 따라 배분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4분기 새누리당은 약 48억8587만원, 새정치민주연합은 약 44억4350만원, 정의당은 5억3087만원의 경상보조금을 받았다. 올 한 해 정당들에게 지급될 경상보조금은 392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정당 수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정당 국고보조금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보조금의 액수나 범위, 용도 및 배분방식, 지급기준 등은 모두 입법기관인 국회가 결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셀프 인상'이다.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금액 인상보다도 제대로 감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민 혈세로 지급되는 만큼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국회는 지난 2004년 정치자금법을 개정하면서 정치자금의 단일회계원칙 및 공개원칙, 기부한도 제한 등 투명성을 담보하는 제도를 도입했으나 정당의 국고보조금 집행 내역은 명확히 공개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중앙선관위도 "(국고보조금을 포함한) 정당의 정치자금 수입.지출 총괄표와 지출 증빙서류 명세서를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토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수차례 의견을 개진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국고보조금을 전용(轉用)하는 사례가 대거 적발되기도 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잡아낸 정당 국고보조금 부정·부당집행 건수는 20여건에 달했다.
새누리당은 2010년 여성정치발전비 법정의무사용액 중 1034만9285원을 사용하지 않았고, 새누리당에 합당된 미래희망연대 중앙당과 연구소는 정책개발용역과제를 수행하면서 정책과제물 8건에 배당된 총 6500만원을 용도 외로 사용해 적발됐다.
구(舊)민주당은 2008년 도당 경상보조금에서 13만원을 사적용도로 지출했고 2009년 여성정치발전비 법정의무사용액 중 478만5000원을 여성정치발전비로 지출하지 않았다. 같은해 대학생정책자문단 졸업연수 등 행사경비 중 참석자가 부담해야 할 180만8000원도 법정용도 외로 지출했다.
민주당은 또 2009년부터 2012년까지 6668만원의 국고보조금을 다수의 유급직원 등에게 상여금 등 명목으로 허위지급하고 이를 차명계좌로 반환받아 불법 선거경비 등으로 지출한 후 허위 회계보고해 적발됐다. 이로 인해 당시 새누리당, 민주당을 비롯한 정당들은 5억원의 보조금을 감액당했다. 정당 국고보조금 전용은 이제 정치권에서 하나의 '관행'이 됐다.
■잇단 자성의 목소리 "제도적 장치 마련"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중앙당과 시·도당은 국고보조금과 당원의 당비 사용내역을 당 홈페이지에 매월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같은 당 김성태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 혈세가 마치 눈 먼 돈처럼 쓰이고 있는 정당 국고보조금의 개혁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조경태 의원은 별도의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고보조금을 투명하게 썼는지 전면적인 외부감사를 촉구하는 건 일리있다"고 말했고 같은당 이인영 의원은 2·8 전당대회 출마 당시 정당 국고보조금 공개시스템 구축을 제안키도 했다.
이같은 의견에 힘입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자신이 공약한 '네트워크 정당'의 연장선상에서 국고보조금 지출 내역의 투명한 공개를 천명했다. 문 대표는 지난 2월 "스마트폰 하나로 당 돌아가는 상황도 다 알고 당 활동 및 의사결정에도 참여토록 하고 국고보조금 사용내역도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정당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도 개선을 위한 법안도 제출됐다.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은 자당 소속 의원 119명의 서명을 받아 정당 국고보조금 예금계좌를 별도로 신고토록 하는 '정치자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모든 정치자금의 지출내역이 한 계좌에서 이뤄지다보니 국고보조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로 회부된 상태다.
■"집행내역 공개 강제해야" 감사 필요
정당 국고보조금 집행내역의 공개와 감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정당이 자발적으로 정보공개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정치자금법은 각 정당이 국고보조금 집행내역을 중앙선관위에 보고토록 하고 있지만 이를 알기 위해선 선관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해야 한다. 이 때문에 별도의 정보공개 청구없이 정당 스스로 집행내역을 공개토록 관련 조항을 법에 명시하는 게 하나의 방법으로 거론된다.
전문가들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를 필두로 한 연구팀은 국회 입법조사처에 제출한 '한국 정당정치의 선진화를 위한 정당법 개정방향의 모색' 보고서에서 "현행 정치자금 중 선거비용에 한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토록 하는 걸 모든 정치자금으로 확대토록 하는 선관위의 정치자금법 개정의견은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측면에서 적극 검토해야 하는 내용"이라고 진단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연구원인 조복경 서강대 연구교수도 "회계투명성 보장장치를 지금보다 강화, 합법적으로 걷은 돈을 투명하게 쓰는지에 대한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정당 국고보조금에 대한 회계검사제도가 실질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감사원법 제2조는 직무상 독립을 보장하고 있고 동 법안 제23조 제2호는 선택적 감사사항으로 '국가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보조금을 제공한 자의 회계를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나 국무총리의 요구가 있는 때'를 규정하고 있어 정당 국고보조금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된다.
문제는 정당들이 이를 거부하면 강제로 할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DJ정권 말기 감사원이 정당을 상대로 직무감사를 벌이려 했으나 당시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야당 탄압'이라며 결사반대 해 무산된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학과 교수는 "정당 국고보조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인 만큼 감사원의 감사를 받도록 하는 게 맞다"면서 "선관위에 (국고보조금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당 국고보조금 전용 실태를 폭로했던 새정치민주연합 평당원인 이충렬씨는 지난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고보조금 사용 명세에 대해 5년마다 감사원 같은 외부기관의 감사를 받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ys8584@fnnews.com 김영선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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