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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연예술의 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6.01 19:59

수정 2015.06.01 19:59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전통연희패에 들어갔다.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터였다. 국문학도라면 우리 전통음악과 극의 기본은 알아야지, 학식 있는 선비처럼 풍월을 읊고 잘 노는 한량처럼 가무를 즐겨야지. 이런 생각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약간의 허세와 막연한 호기심의 발로였다.

동기가 어쨌든 간에 그 시간이 분명 의미없지 않았다. 이후의 인생을 좀더 풍요롭게 혹은 열린 시각을 가지고 살도록 만드는 자양분이 됐다.
장구와 북을 배우며 어깨와 오금이 절로 움찔거리는 우리 장단의 흥을 알았고 고성오광대를 전수받으며 은근한 풍자의 통렬한 맛을 체험했다. 밤에는 선후배들과 흥청망청 마시며 세태를 논하는 가운데 낭만이 있었다.

특히 마당극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사회 구석구석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됐다. 마당극은 전통연희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1970~80년대 형성된 진보적 연극운동의 주도적 양식이다. 패거리와 함께 농촌과 외국인 노동자 문제, 고령화 현상을 두루 꼬집었던 작품, 여전히 억압받는 세계의 여성 인권 문제를 다뤘던 작품 등을 매년 직접 쓰고 관객을 모아 판을 벌였다. 지금에 와 다시 읽어보면 정제되지 않은 표현과 문학성과는 거리가 먼 솔직함에 얼굴이 붉어지지만 때묻지 않은 열정과 순수함이 있었다.

누구보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봐야 하는 직업이라는 기자가 되고 이제 3년 남짓. 초심이 이렇게 금세 무너질 수 있나, 부끄러워지던 중에 다시, 그 초심을 돌이켜보는 계기를 무대에서 만나고 있다. 풍자, 우화, 패러디 등 다양한 기법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작품들이 최근 부쩍 눈에 띄며 화제를 모았다.

"동시대적 문제의식이 없는 작품은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한다!"(연극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 "나라를 만들어 좋은 왕이 되고 싶거든 정치를 잘하는 놈에게 정치를 맡기고, 세상 이치를 잘 아는 놈들에게 법을 만들게 하고, 정직한 놈들에게 권력을 줘."(뮤지컬 '로빈훗') "현찰은 잘 처리될 겁니다. 투표만 잘 처리되면요."(뮤지컬 '유린타운')

이같은 작품 속 대사들을 통해 관객들은 대리만족을 느끼며 치유받기도 하고, 현실 문제와 대입시키며 문제의식을 갖기도 하며 저마다 감흥을 느끼고 감화를 받게 된다.


이강백 극작가는 광우병 촛불 시위가 있었던 2008년부터 지난해 세월호 사건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며 "절박한 감정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여우인간'을 집필했다고 했다. 뮤지컬 '유린타운'에 출연 중인 배우 성기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지만 작품을 통해 우리는 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당장 세상을 바꾸는 파괴력보다도 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게 공연예술의 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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