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을 투자한 뮤지컬 '아리랑' 초연을 앞두고 그는 거침 없이 말했다
망하겠죠. 초연에서 어떻게 50억을 뽑겠어요. 하하." 공연제작사 대표가 자신이 50억원을 투자한 뮤지컬의 초연 개막을 앞두고 이런 말을 웃으면서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52)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원작으로 해 동명 뮤지컬로 옮겼고 내달 11일부터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 유발자 김준수가 출연하는 '데스노트', 한국 초연 10년 기념으로 조승우가 출연하는 '맨 오브 라만차', 흥행 보증수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줄줄이 개막을 앞두고 있다. '아리랑'은 이에 맞서는 토종 창작뮤지컬이다. 광복 70주년에 맞춰 준비기간만 5년이 걸렸다. 2009년 초연한 뮤지컬 '영웅' 이후로는 이렇다 할 대형 창작뮤지컬도 없었다. 공연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리랑'은 공연제작자로서의 사명감
모순적이게도 "공연이 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지난 2일 서울 논현동 신시컴퍼니빌딩에서 만난 박 대표는 '아리랑'을 무대에 올리는 것을 "공연 제작자로서의 사명"이라고 했다.
"역사적인 부분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공연 무대에 옮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 관객들과 꼭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우리 선조들의 한맺힌 역사, 젊은 세대들도 알아야죠."
박 대표에게 '아리랑'을 무대에 올리는 목적은 '돈'이 아니었다. "4개월 동안 전회 매진이 된다고 해도 수익을 내기는 어려운 구조에요. 투자도 안 받았어요. 내가 편하려고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는 일은 안해요. 망해도 혼자 망해야죠."
제작사 대표이기 이전에 '연극쟁이'로 불리던 그다. '창작뮤지컬 제작 1세대'로 현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이기도 하다. '흥행'을 평가하는 기준도, 공연을 제작하는 목표도 여느 제작자와 사뭇 다르다. "지금까지 참 많이 망해봤어요. 흥행은 초월했죠. '아리랑'이 국내 창작뮤지컬의 체계적인 제작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하는 작품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리랑'을 보면서 많은 제작자들이 자신감을 갖게 되느냐, '역시 창작은 어렵구나'하며 주저 앉게 만드느냐, 이 분기점에 있는 거죠."
■조정래부터 안재욱까지…발벗고 OK
문화예술계의 '어른'들과 친분이 두텁기로 유명한 그다. 자기 사람을 살뜰히 챙기는 '의리파'로도 정평이 나 있다. 최근에는 뮤지컬계 최초로 '표준계약서'를 도입했다. "무대를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을 예우해주는 게 당연하죠. 극단 정신이 신시의 기본이에요. 돈벌이 수단에 놀아나지 않는 것. 힘들어도 무대를 만드는 것. 그러면서 앙상블도 훌륭해지고 맷집도 세지는 거죠."
'아리랑'을 준비하면서 특히 많은 이들이 흔쾌히 제작과 출연에 발벗고 나섰다. 원작자인 조정래 작가부터 그랬다. "(조정래)선생님과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죠. 처음에 '아리랑'을 뮤지컬로 만든다고 찾아갔을 때 이것 저것 따지지도 않고 승낙하셨어요."
각색과 연출은 신시컴퍼니의 스테디셀러 연극 '푸르른 날에'를 연출한 고선웅이 맡았다. "고선웅이 하는 거면 그냥 믿고 맡겨요. 기본 이상은 확신하거든요." 출연진도 별도의 오디션 없이 박 대표가 신뢰하는 사람들로 직접 캐스팅했다. "티켓이 잘 팔리는 스타라고 캐스팅하지 않아요. 이 작업을 정말하고 싶은 사람들과 해야죠.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뭔가 만들어내거든요." 안재욱은 박 대표의 전화 한통에 바로 수락했고 이창희의 경우 '이 작품이라면 출연료를 안 받아도 좋으니 출연하고 싶다'는 얘기가 전해져 캐스팅 됐다.
■10년 내에 "또 대형사고 친다"
'아리랑' 이후에도 박 대표의 구상은 넘쳐난다. "뭘 해야겠다고 말하면 하고야 만다"며 선포하듯 늘어놨다. 우선 계획은 올 하반기 연극 '렛미인'을, 내년 상반기 신경숙의 소설 '리진'을 원작으로한 연극을 초연한다. '이럴 줄 알았다'라는 제목으로 세번째 책도 출간한다. 그간 공연의 성패담을 담았다. 3년 내 연극 '푸르른 날에'의 뮤지컬화. 최근 고선웅 연출과 술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생긴 중장기 목표다.
장기적인 목표도 있다. "제가 보통 8~10년 주기로 대형 사고를 치거든요. 이중섭 화가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을 만들어보려고요." 현재 대본을 받아놓고 검토 중에 있다.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절대 작품성·흥행성을 논할 수 없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얼마나 절박한 에너지로 준비했느냐에 따라 관객들의 호응을 받고, 대중성이든 예술성이든 가질 수 있게 되겠죠. 진솔한 정신으로 만든다면 대가는 충분히 받는다고 믿어요. 사실 유지하는 게 초연 올리는 것보다 더 공력이 많이 들어요. 장기적으로 '아리랑'도 '맘마미아'나 '시카고'처럼 롱런하는 뮤지컬로 세워야죠."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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