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소버린 경영권 분쟁 뒤 소버린 8000억원 차익 챙겨
지배구조 S등급 기업 '제로' 투기 목적 자본들에 무방비
소 잃기 전 외양간 고쳐야..
과거 적대적 M&A 사례땐 결국 외국계 자본만 이득
자사주 취득 외 방도 없어 경영권 방어수단 마련 시급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가 작심하고 삼성물산 공격에 나섰다. 타깃은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각으로까지 확대됐다. 삼성물산도 헤지펀드의 공격을 비판하며, 즉각 반격에 나섰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는게 중론이다.
이번 사태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막연한 선호와 허술한 국내 법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전문가들은 효율적인 경영권 방어책 마련을 주문한다. 아울러 대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버린이 남김 교훈을 되새길 때
지난 2005년 7월 18일. 소버린자산운용은 SK 보유주식 전량을 매각해 '소버린-SK 경영권 분쟁'을 2년4개월 만에 갈무리했다. 소버린은 이날 장 시작 전 시간외매매를 통해 SK 주식 1902만주(14.8%)를 국내외 기관에 전량 매각했다. 소버린은 8000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다.
엘리엇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도 소버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재계 한 관계자는 "외국 자본이 한국경제에 소위 긍정적인 기여도 하지만 단순히 투기 목적으로 들어오는 자본들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기업의 고질적인 병폐인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SK도 2년이 넘는 동안 소버린 '몸살'을 앓으면서 이사회 중심 경영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 작업으로 기업가치가 크게 올랐다. 당시 해외 매체를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지배구조 개선 성공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비온 뒤 땅이 더 굳는다'는 말처럼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도 확고해졌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소버린이나 엘리엇의 공격은 국내 기업에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 가치를 제고하고 소액주주도 중시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면서 "투자자본은 틈을 보이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국내 상장사 694곳의 환경경영(E)과 사회책임경영(S), 지배구조(G) 등을 평가한 결과 전체 중 76.5%가 'B'와 'C' 등급이었다. 이는 전년과 같은 수준으로 상장사들의 지배구조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배구조 부문에서 가장 우수한 S등급에 해당하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이 지배주주와 최고경영자의 사적 이익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여 기업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면서 "좋은 지배구조가 갖춰지면 수익성이 높아져 다시 지배구조의 개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적대적 M&A, 효율적 방어수단 도입해야
과거 소버린이 인수합병(M&A) 이슈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SK 주가는 급변동했다. 그러나 승자는 개미도 국내 기관도 아니였다. 8000억원이 넘는 자본은 챙긴 소버린이었다.
삼성물산의 주가도 7만원대까지 치솟는 등 변동성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4년 영국계 헤지펀드인 헤르메스도 삼성물산 주식 5%를 매집한 뒤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급등하자 보유지분을 모두 팔아 치워 300억원대의 차익을 거둔 바 있는 만큼 개미 투자자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 이벤트에 따라 삼성물산의 주가 상승하겠으나 주당 8만원 이상 시 과열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전용기 현대증권 스몰캡팀장은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의 현물배당 요구는 동의를 얻기에 한계가 있다"며 "합병이 부결될 경우 오히려 주가가 다시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고, 삼성물산의 개정 상법상 배당 가능 한도는 2조원 전후로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현물 배당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한국 대기업이 적대적 M&A에 대해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가능한 방어 수단은 자사주 취득과 신주의 제3자 배정,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 정도다. 하지만 자사주 취득 외에 다른 수단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해외자본의 공격을 막기 위해 기존 주주들이 시가보다 싼값에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을 인정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국가도 있다. 최대주주 등에게 보유 지분율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다만 기업의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수단을 도입하기 전에 균형을 이룰 공격수단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지나친 경영권 보호는 자본시장 발전을 해치고 경영의 비효율성을 증가시킨다"며 "향후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제도와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하려면 기업 간 M&A 활성화와 함께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kmh@fnnews.com 김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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