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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공무원들은 '철밥통'으로 불린다. 공무원법에 따라 신분보장이 철저히 이뤄지고, 시간이 흐르면 호봉에 따라 봉급이 차곡차곡 올라가니 '만년 직장' '만년 직업'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이들에게는 '신의 직장'이라는 부러움 섞인 조소가 따른다. 그래서 정부가 '개혁'을 부르짖을 때마다 첫손가락에 꼽힌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공복(公僕)들도 참으로 많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해 신년기획으로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을 내놓았다. 중국동포 밀집지역으로 치안 수요가 많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대림파출소 경찰관을 시작으로 지난 11일 강원 영월의 간이역인 태백선 쌍룡역 역무원까지 58차례에 걸쳐 전국 곳곳을 누볐다. 모두 '우리가 낸 세금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고생하는 이들에 대한 얘기다.
■탄가루 날리는 막장이 일터
기자는 지난해 12월 강원 태백의 장성탄광으로 향했다. 광산보안관 경력 29년의 이광국 동부광산보안사무소 부소장 등과 엘리베이터와 같은 케이지를 타고 땅속으로 900m를 내려갔다. 꼬불꼬불한 갱도는 허리를 펴기가 불가능할 정도였고, 탄가루가 자욱해 한 치 앞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1시간 반에 걸쳐 3㎞가량을 이동해 채탄 작업이 진행되는 '막장'에 도착했다. 기온을 재보니 영상 31도였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혔다.
장 부소장은 "과거에는 도시락을 갖고와 광부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도시락 뚜껑을 열면 탄가루가 수북히 앉아 밥에 고추장, 김치, 물을 섞은 '물말이'를 만들어 마시곤 했다"고 소회했다.
환경미화원과 항만청소선 등 우리가 사는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이들도 만났다. 지난해 8월 어느 토요일 새벽 기자는 서울 영등포구청 청소과 소속의 환경미화원 이황용씨를 따라 거리 청소 체험을 했다. 영등포쇼핑센터 7번 출구에서 영등포역 앞까지 영중로 약 500m가 담당구역이었다. 유흥가이고 유동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쓰레기도 그만큼 많이 배출되는 이른바 '취약지역'이라고 했다.
여기저기에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보도블록 틈 사이에 끼여 작업이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빗자루로 능숙하게 빼내는 이씨의 모습은 '생활의 달인'에서나 봄직한 장인(匠人)처럼 느껴졌다.
쓰레기는 허리를 펴고 5m를 걸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포장마차와 공중전화 부스 사이의 작은 틈 등 쓰레기는 상상 그 이상의 장소에도 숨어 있었다. 2시간여 만에 이씨가 준비해온 100L짜리 쓰레기봉투 10장이 동이 났다.
서툰 비질에 손목은 시큰거렸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2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담배를 피우며 서있다 택시가 오자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택시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방금 내가 청소하고 지나온 자리였다.
오전 7시가 가까워서야 체험은 마무리됐다. 크게 한 일은 없었음에도 온몸이 구석구석 쑤셔왔다. 하지만 이씨의 일은 끝이 아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에 한 번,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하루에 세 차례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했다.
바다에도 청소부가 있다. 올해 초 부산 앞바다에서 만난 해양환경관리공단의 항만청소선 '파란호'다. 성수기(?)인 여름에는 하루에 서너 차례 나가 10t가량 수거하고, 비수기인 겨울에는 한 달에 2∼3회 정도 청소를 벌여 한 번에 2∼3t을 건져올린다.
바다 위의 쓰레기이지만 대부분이 육지에서 사람들이 버린 것이다. 빗물에 쓸리거나 바람을 타고 바다로 유입된다. 컵라면 용기부터 스티로폼, 각목, 밧줄, 생수병, 부탄가스, 콘돔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 북항대교 아래에서 불과 20여분 건져냈을 뿐인데 뱃머리는 온통 쓰레기로 가득 찼다. 파란호가 지난해 수거한 바다 쓰레기는 부피톤수로 1050t, 실제 무게는 465t에 이른다.
가끔 송전탑에 곡예를 부리듯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누군가를 목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가정·사무실 등으로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송전선로 지킴이' 한전KPS의 송전전기원이다.
지난해 7월 인천 시화호 주변 영흥 송전선로에서 만난 송전전기원들은 도전복으로 중무장한 채 80∼160m 높이의 철탑에 올랐다. 로프에 의지한 채 밤송이처럼 박힌 가로 20㎝의 발판볼트를 딛고 거침없이 오르는 모습이 마치 암벽타기 선수처럼 보였다. 선로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문제가 있으면 보수하는 게 이들의 임무다.
송전전기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날씨다. 태풍이 몰아치는데 낙뢰가 쳐 선로가 고장 나면 날씨에 관계없이 긴급히 복구해야 한다. 선임과장인 이모씨는 "걱정할까봐 가족한테는 무슨 일을 하는지 말을 안한다"며 익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구제역도, 화염도 두렵지 않아
지난 1월에는 최일선에서 구제역과 사투를 벌이며 땀 흘리는 충북 축산위생연구소를 찾았다. 변현섭 주무관은 '을미년' 새해를 돼지들과 함께 맞았다.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라는 문구는 잊어버린 지 오래라고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축사 안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추위와 바람을 막느라 커튼 같은 것을 사방으로 쳐놓았기 때문이다. 돼지들이 싸놓은 똥으로 인해 발목까지 '푹푹' 잠겼다. 장화 위로 덧신을 두세겹씩 겹쳐서 신어보지만 축사를 나올 때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구제역이 발생한 현장에 나오면 최소한 사나흘, 길면 일주일은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의식주를 해결하기조차 힘들다. 축사가 농가와는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 데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 데가 마땅치 않아 자동차 안에서 자고, 컨테이너박스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지내기도 한다. 세수나 양치질은 호사에 속한다. 들어갈 때 말끔하던 얼굴이 나올 때는 꾀죄죄한 몰골에 수염까지 덥수룩하게 자라 '거지꼴'이 되기 일쑤다. 변 주무관은 "전쟁터에서 호텔을 찾을 수는 없고 공직자로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산림청 소속의 산림헬기 조종사들은 봄에는 산불 진화, 여름에는 병해충 방제, 겨울에는 산림사업용 자재 운반 등으로 1년을 바쁘게 산다. 봄 산불이 한창일 때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출동을 한다고 했다. 1년에 보통 150시간 정도 헬기를 타는데 산림항공본부의 경우 기자가 방문한 지난 5월 초 이미 평균 120시간을 넘어섰다. 경기와 강원 지역에서 예년보다 산불이 많이 발생한 탓이라고 했다.
조종사들은 하루 8시간 이상 조종석에 앉을 수 없도록 규정돼 있지만 큰 산불이 나면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9∼10시간 동안 진화작업에 매달리기도 한다. 이럴 때는 연료보급하는 10여분 동안 쉬고, 식사도 김밥으로 간단하게 때워야 한다.
산림헬기 조종사들 사이에는 사명감이 지나쳐 '불나방이 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문영석 기장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불나방이 될 필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올해 5월에는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경찰도 만났다. '범죄의 천국'이라 불리는 중미지역 과테말라였다. 경찰교육원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8월 '행정한류 전문관'으로 파견된 김은중 경감이 '치안한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과테말라 경찰청과 협의를 거쳐 '사이버범죄 및 테러 수사과정'을 신설하고 22명의 교육생을 뽑아 올해 1월부터 15주에 걸쳐 수업을 진행했다.
기초과정으로 성에 차지 않은 김 경감은 우리 경찰청에 전문가 파견을 요청했다. 4월 중순 부산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홍성진 경사와 과테말라 주재관을 지낸 대구 서부경찰서 박성훈 여성청소년과장이 과테말라로 건너왔다. 그들은 2주간 휴대폰에 저장된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모바일 포렌식, 범죄현장에서 디지털 증거를 수집하는 기법, 손상된 메모리 정보 및 영상을 복구하는 기법 등을 전수했다.
그리고 지난 5월 초 과테말라 경찰청은 교육생 중 10명을 선발해 특수수사대 조직범죄과 내에 '사이버범죄수사팀'을 만들었다. 김 경감이 타향만리에서 10개월간 노력한 결실이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가장 기억에 남는 주인공 가운데 하나는 '광산보안관'이다. 이들은 전국 수백개 광산의 안전을 관리하고, 사고 발생 시 사고원인을 조사한다. 채굴 중단, 광업주 처벌 등의 권한을 갖고 있어 업계에서는 '저승사자'라 부른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각광받는 직업이었 으나 석탄산업의 사양화와 함께 기피 직종으로 전락했다. 사실상 광부들과 같은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설공단 도로관리처 정비반은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올림픽대로, 강변북로가 일터다. 갈라지고 파인 도로면을 보수하고, 도로 곳곳에 내걸린 각종 불법 현수막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 계절에 따라 찾아오는 눈과 비 등 이들이 신경써야 할 것은 차고도 넘친다. 지난해 10월 말 정비반을 처음 만난 곳도 청담대교 아래 올림픽대로였다. 포트홀(노면홈)을 메우는 일이 한창이었다. 공사지점은 3차선. 교통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별도의 차단시설도 하지 않았다. 양옆으로 차들이 시속 60∼80㎞로 달리는 것이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포트홀 4개를 메우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이흥표 반장은 "안전사고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솔직히 이럴 때는 '차라리 교통정체 상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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