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는 박 대통령 뜻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 이어 국회법 개정안 자동폐기 수순으로 총의를 모으며 뒷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날 '여당 원내사령탑'을 지목하며 작심 비판에 나서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국회 보이콧에 나선 대야 전략을 구상하기도 전에 청와대와 야당 양쪽에게 사퇴 압박을 받는 '사면초가' 상황에 빠지는 등 당분간 '박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뒤따른 후폭풍에 시달릴 전망이다.
■野 메르스 外 보이콧 초강수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박 대통령이 결국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자 강력하게 반발했다. '메르스법을 제외한 모든 의사일정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띄우고 박 대통령을 압박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표는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드리는 것이 정치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사라지고 대통령의 고집과 독선만이 남았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이어 그는 "(거부권 행사는)야당과 싸우자는 것뿐 아니라 국회와 싸우자는 것이고 의회민주주의와 싸우자는 것"이라며 "입법권 침해이며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차원의 공동 노력도 주문했다. 문 대표는 "여당도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해선 안된다"며 "여야가 함께 대통령의 폭거에 맞서고 국회 입법권을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야당은 국회 의장과 여야 당 대표 및 여야 원내대표간의 3자 회담을 제안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메르스법을 제외하고는 국회 의사일정을 모두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거부권 행사는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이 훼손되는 것"이라며 "이 나라는 정쟁으로 몰린다. 나라의 삼각추가 훼손된채 휘청거릴 것이다. 이에 일단 모든 국회 협상을 중단한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다만 "메르스 특별법에 대해선 국민의 간절한 요구사안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취급을 해야한다"며 처리 의사를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격앙된 분위기 속에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해야 한다는 강경 기류가 우세했지만 여당의 '민생 발목잡기 프레임'을 피하기 위해 메르스 관련 법안만 분리 처리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원내대표 뜻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동의하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메르스 사태 후속법안을 처리에 돌입했다. 국회는 이날 가능한 본회의까지 열고 이를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與 朴 작심 비판 충격 속 '뒷수습'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 속에 국회법 개정안 폐기 수순에 돌입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자체가 어느 정도 예상됐기 때문에 이날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국회법 개정안 자동폐기쪽으로 의견이 수렴됐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를 지목한 박 대통령의 날선 비판에 대해 충격을 받은 새누리당은 김태흠·김현숙 의원 등 친박계(친박근혜) 의원이 개인성명을 냈을 뿐 의총에서 거취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6월 국회가 멈추는 등 야당과 대치정국이 형성된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를 거세게 압박하는 것이 당장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의총 중 기자들과 만나 "큰 방향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대한 입장과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재의결 절차를 밟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대다수고 재의결해서 부결시키자는 의견은 극소수"라고 전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이어 "원내대표 책임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이 화합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점심 때 재선의원 긴급회동을 제안한 박민식 의원도 기자들과 만나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직접적으로 거명한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재선의원 모임도 제가 판단하기로는 특정인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비화되는 데에는 반대한다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김무성 대표도 유 원내대표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이날 비공개 최고위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이 유 원내대표 책임론을 거론했으나 취재진의 질의에는 "그런 의견은 없었다"고 에둘러 유 원내대표를 감쌌다. 유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친박계의 압박에 못이겨 사퇴할 경우 당 내홍 비화는 물론 국회 전체가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친박계 중진들은 유 원내대표가 사면초가 상황에 처했지만 실제 사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gogosing@fnnews.com 박소현 김호연 윤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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