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피우고 집을 나가 딴살림까지 차린 '유책배우자'가 단지 별거가 장기간 이어졌다는 이유로 조강지처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을까?
2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혼인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유책주의)'는 기존 판례 유지여부를 놓고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날 공개변론은 한국정책방송(KTV)과 인터넷 포털사이트, 대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생중계 돼 더욱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날 공개변론에 오른 사건은 외도로 인해 15년 가까이 별거 중인 남편 백모씨(68)가 법률상 부인 김모씨(66)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의 상고심이다. 백씨는 1976년 결혼해 김씨와 자녀 셋을 뒀지만, 1998년 다른 여성 A씨와의 사이에서 혼외자를 낳고 2000년부터 A씨와 살아왔다.
남편은 최근 부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지만 1,2심 재판부는 "부인은 여전히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날 남편 측 대리인인 김수진(48·여·사법연수원 24기) 변호사는 "혼인관계 파탄은 불가피한 사회적 현상이며 아무리 이혼을 억제하는 강력한 정책을 펴도 막을 수 없다"며 "유책여부를 묻지 않고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파탄주의)"고 주장했다. 파탄주의를 허용하되, 상대배우자와 자녀 보호책은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민법에서도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민법 제840조)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파탄주의에 입각한 규정"이라면서 "외국도 '상당기간의 별거'를 이혼 사유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부인 측 변호인인 양소영(44·여·30기) 변호사는 "파탄주의를 채택하면 상대 배우자와 자녀의 행복추구권, 생존권이 침해된다"며 기존 유책주의를 고수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양 변호사는 "재산분할비율을 산정할 때 혼인파탄사유를 30%, 부양적 요소를 12%밖에 고려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 재산분할 제도로는 축출이혼(일방적으로 부인을 내쫓는 이혼)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제도적으로나 사회적 현실을 볼때 파탄주의를 도입하기에는 이르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혼인도 중요한 계약"이라며 "신의성실, 권리남용 금지라는 민법의 대원칙의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개변론에선 지난 2월 헌재가 위헌결정한 간통죄에 대해서도 공방이 이어졌다.
남편 측은 간통죄 위헌 결정에 대해 "혼인관계에 대한 우리 사회 의식 변화를 반영한 결과"라고 평가했지만 부인 측은 "간통이 형사처벌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해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문제는 다른 문제"라며 "가족제도의 기초에 관한 것인 만큼 달리 판단해야 한다"며 맞섰다.
지금까지 50년간 대법원은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유책주의)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쉽게 말해 바람을 핀 남편은 아무리 오랫동안 따로 살림을 차렸다고 해도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직 부인 측만이 이혼과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이 같은 판례는 과거 경제력이 없던 전업주부들이 '첩'에게 쫓겨나 경제적, 사회적 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 지위가 높아지고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혼인생활을 유지하는 게 의미없는 상황이라면 유책배우자라 해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파탄주의'가 대두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남편의 청구를 받아들이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 앞으로는 장기간 별거상태가 계속되는 등 객관적으로 혼인관계 파탄이 명백할 경우에 한해 유책배우자도 이혼청구를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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