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은 자살이자 타살행위.. 새로움 포기하고 독자 믿음 저버려 신경숙 표절 사태는 '비극' 문단 몇십년 곪았던 문제 터진 것
청년들이여 치열하게 고민하라.. 각본·연출·주연 모두 '자신' 어떻게 살까 찾아내는건 본인 몫 대학? 갈 필요 없다면 가지 말라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 글을 쓰는 작업만큼 고통스러운 게 없다. 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은 유일무이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작의 기본일진대, 그러려면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수십갑절 노력해야 한다. 안 그러면 창작을 지속해낼 수가 없다. 고통스럽다. 다만 순간순간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자기 황홀의 경지다."
조정래 작가가 '한국 현대사 3부작'으로 불리는 '태백산맥'(전 10권), '한강'(전 10권), '아리랑'(전 12권)을 쓴 20년간을 '황홀한 감옥'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그는 문학을 시작하면서 문학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절대가치를 부여했다. 글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했다. 정치판, 학계에서의 숱한 부름도 마다했다. 세 작품은 지금까지 1300만부 이상 팔렸고, 웹소설로 연재돼 가장 최근 출간한 '정글만리'(2013년)도 이미 100쇄를 돌파했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작가에게 독자가 많다는 것보다 더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게 뭐가 있을까.
지난달 29일 만난 조정래는 '글쓰기의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명장이란 객관적으로 타인이 붙여주는 타이틀이지. 그들의 고통점은 생애 전체를 통해 남다른 노력을, 최선을 다해서 했다는 것. 50년 가까이 글 쓰면서 스스로 만족해요. 더 이상 여백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어."
아침 6시에 기상, 체조한 뒤 7시에 아침식사, 9시부터 일을 시작하고 12시 반에 점심식사와 낮잠, 2시부터 다시 글을 쓰고 6시 반에 저녁식사와 휴식, 11시 반에 취침. '태백산맥'과 '한강'을 쓸 때는 새벽 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소식(小食)을 하며 평생 62㎏의 몸무게를 유지했다. '위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엄격한 자기관리는 필수였다. 조정래는 이 생활을 20년 이상 했다.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
▲비결이라기보다는 의지다.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馬)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하며 달려가는 노정(路程)이다. 누가 나를 끌고가겠나. 그리고 이 의지를 계속 유지해 나가는 열정이 능력이다. 난 분명히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기확신도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뭉쳐져서 기질이 만들어진다. 문학은 동시대인의 얼굴이고 현실의 거울이다.
조정래는 민족의 비극에 대한 얘기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되며 '빨갱이'로 몰려도 떳떳했고, 10여년간 협박전화에 바람 잘 날이 없었지만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작가가 감내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한국문학의 원류는 분단문학입니다. 이제는 분단극복문학을 해야 할 때죠. 그들(북한)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전제하에,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써야죠."
그는 최근 경직된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요즘 같아선 정치인들의 '평화통일'이란 말이 한낱 미사여구로만 들립니다. 남북문제는 탁구 게임입니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에요. 그들이 어떤 '짓'을 했다는 데만 집중해선 안돼요. 우리를 돌아봐야죠. 서로 자기 얘기만 해선 분단을 극복할 수 없어요."
조정래는 대학을 졸업한 뒤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가 1973년 10월 유신 때 교단을 떠나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0년 뒤 '태백산맥'을 시작했고 1989년 탈고했다. 이듬해 '아리랑'을 시작해 1995년 완성했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한강'을 집필했다.
집필하는 동안은 철저히 두문불출, 금주다. '태백산맥'을 쓰던 당시엔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도 지키지 못했다. 흡사 성인(聖人)의 경지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200자 원고지 25장 이상을 썼다. 아무리 자기관리가 철저하다지만 몸에 고장이 안 날 수 없었다. '아리랑'을 쓸 때는 오른팔에 마비가 와 침을 맞아가며 썼고 '한강'을 쓸 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탈장이 됐다. 수술은 집필을 끝내고 나서였다. 아무리 대작을 낳았다지만 아무렴 잃은 게 없을까.
―'황홀한 글감옥'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잃어버린 건 머리카락밖에 없는 것 같다. 소설을 안 썼다고 해서 머리카락이 안 빠졌겠나. 20년 세월을 보내며 고통스러웠던 것보다 글로 성취한 명예와 존경이 훨씬 가치 있고 의미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아리랑 문학관' '태백산맥 문학관'도 생겼다. 그 이상 더 좋을 게 뭐가 있나.
'아리랑'은 광복 70주년에 맞춰 신시컴퍼니가 동명의 뮤지컬로도 제작했다. 오는 11일 처음 무대(LG아트센터)에 오른다. 이미 책으로 450만부가 팔렸고 1998년 서울 소재 대학 대출 1위에 오르기도 한 작품이다.
―그 긴 글을 쓰는 자양분은 어디서 얻나. 또 영감을 주는 건 무엇인가.
▲자연처럼 완벽한 게 없다. 구상 속에 '무서운' 추상을 가지고 있다. 소나무를 구상이라고 하면, 그 줄기 속의 형형색색이 다 추상이다. 감히 글로 표현할 수 없으니 '무서운' 추상이라는 거다. 가위 눌릴 만한 일이다.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게 예술가의 숙명이다. 노을을 묘사한 작가들이 얼마나 많나. 하지만 밤을 꼬박 새워서 수십장의 종이를 찢으면 내 나름의 노을이 만들어지는 때가 있다. 그런데 영감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아니다. 평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한 사고의 축적이, 어느 순간 불꽃처럼 튀어오르는 거다. 끝없는 생각을 갈고 닦아서 계속 발화해야 한다.
그런 자기와의 싸움에서 허덕이다 표절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조정래는 표절을 "자살행위인 동시에 타살행위"라고 했다. "모든 예술은 새로워야 하는데 그걸 포기했으니 자살이고, 작품을 감상한 사람들의 믿음을 저버렸으니 타살이죠. 경찰이 도둑질하는 일, 성직자가 강간하는 일과 같아요. 능력에 부치면 그만 물러나는 것이 예술가의 정도(正道)지."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던 소설가 신경숙이 최근 일본 소설을 표절한 사태에 대해선 "비극"이라고 했다. "첫째, 표절을 한 것이 나빠요. 둘째, 지적됐으면 명쾌하게 시인해야 했는데 애매한 사과를 했어요. 두번 속이려고 하는 것에 수많은 사람이 분노하는 거지."
조정래는 '표절'이 "비단 오늘의 일만이 아니고, 한국 문단만의 문제도 아니다"라고 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나.
▲한국 문단에서 몇 십년간 곪았던 문제가 이번에 객관적으로 터진 거다. 작가가 냉정한 자기성찰을 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이 시대는 정보기술(IT) 문명시대다. 감시자가 수없이 많다. 한 사람이 출근해서 퇴근하는 동안 폐쇄회로TV(CCTV)에 백번 이상 찍힌다고 한다. 작가도 그렇다. 대중들에게 수천만번 '찍히는' 거다. 독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자신감, 신뢰를 받을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게 작가가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자기확신, 신념, 사명, 떳떳함. 조정래를 대하고 있는 내내 그의 온몸에서 분출되는 이것들을 느꼈다. '불확실의 시대'에 '확실의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다소 추상적인 문제를 제기해봤다.
―누구나 무엇을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기 어려운 세상인 것 같다.
▲세상 탓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생은 각본·연출·주연도 자기 자신인, 두번 다시 못하는 1회차 공연이다. 책임을 누구한테 물을 수 있겠는가. 치열하게 자기가 고민하고 운영하고 고통 당하고 채찍질해 봐야 한다. 왜 자꾸 스스로를 엄살 부리게 만드는가.
―취업난이 심각하다. 청년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가.
▲하늘이 모든 생명체에 특성을 부여했듯이 인간도 그렇다. 찾아내는 건 자기 몫이다. 나는 무엇일까, 왜 살까, 어떻게 살까 깊이 생각하면 길이 나온다. 교육제도를 탓할 것도 없다. 대학 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가지 말라. 장인의 길로 들어서면 된다. 비천한 직업이란 없다.
자연스럽게 곧 출간될 소설 얘기가 나왔다. 한국의 교육 현실을 다뤘다. 대기업에 잘 다니던 청년이 친구집에 갔다가 대장장이인 아버지에게 감명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국 교육은 파탄 상태에 빠졌어요. 교육의 파탄은 인간의 파탄을 불러오고 국가의 파탄까지 갑니다. 그러므로 정신 차리자, 어떻게 차릴 것이냐. 능력 중심, 개성 중심으로. 부모는 자식이 가는 길을 보조해주고 북돋워주되 의견을 개입시키지 말라. 이 얘길 하고 싶었어요."
오랜 사고와 사유 덕분일까. 어떤 화두에도 일관성 있는 통찰을 쏟아냈다. 인터뷰 말미에 '글쓰기의 명장'이 낸 결론은 결국 모든 것이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자기 충실을 기하면 자기 눈이 형광등이 되고 망원경이 됩니다. 세상에는 왜곡된 것들이 너무 많아요. 스스로 똑바로 서야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명장'의 우렁찬 음성이 가슴에 무겁게 꽂혔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조정래 작가 약력 △72세 △전남 순천 △1953년 초등학교 때 첫 자작문집 펴냄 △광주서중·서울 보성고 △1966년 동국대 국문학과 △1970년 소설 '누명'으로 등단, 동구여상과 중경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감 △1973년 10월 유신으로 교직을 떠나 전업작가가 됨 △1976년 첫 장편 '대장경' 출간 △1977~1989년 문예지 '한국문학' 주간 △1989년 '태백산맥' 완간 △1995년 '아리랑' 완간 △2002년 '한강' 완간 △2003년 전북 김제시 조정래아리랑문학관 설립 △2008년 전남 보성군 조정래태백산맥문학관 설립 △2013년 웹소설로 연재된 '정글만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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