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있지도 않은 허위 채권을 갖고 법원을 속여 돈을 뜯어내는 이른바 '소송 사기'가 속출해 주의가 요구된다. '지급명령 신청'처럼 직접 소송을 통하지 않고도 법원의 간단한 확인절차만 거치면 채권을 받을 수 있는 제도상 허점을 노린 것이다.
■지급명령 절차 악용해 피해자 갈취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소송 사기는 법률상 개념이 아닌 일반 사기죄 유형 가운데 하나다. 대법원 판례는 소송사기를 '법원을 기망해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을 얻고 이를 근거로 상대방으로부터 재물, 또는 재산상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지급명령' 제도의 허점을 노린 사기를 가장 대표적 소송사기 유형으로 꼽는다. 지급명령은 장시간 소요되는 민사소송 절차를 간소화해 투입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소액 채권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독촉절차로, 지난 2002년 도입됐다.
채권자가 지급명령신청서에 채무자 이름과 주소, 청구 원인을 기재하고 차용증이나 은행거래기록 등 채권, 채무관계를 간단히 입증할 자료만 첨부하면 법원은 채무자를 심문하지 않고 지급명령을 한다. 지급명령은 채무자가 신청서를 송달받은 뒤 2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채무자를 상대로 채무관계 사실 확인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채권자가 문서 위조 등을 통해 입증서류를 내더라도 진위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앞선 사례처럼 유출된 개인정보가 만연한 상황에서 마음만 먹으면 노인 등 사회 취약층을 상대로 손쉽게 지급명령을 받아 사기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지급명령 제도 취지가 채무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신속하게 집행권원(국가의 강제력으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급여청구권을 갖고 있음을 표시하고 청구권을 강제집행할 수 있음을 인정한 공정문서)을 획득하는 것이어서 법원의 서류확인 절차는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여기에다 지급명령 신청은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받아들여져 악덕 채권추심 확산 우려도 나온다.
■이의제기 안했다간 재산 압류 피해도
채무자 입장에서는 이런 허위 채권에 따른 지급명령 신청에 대해 기한 내 이의를 제기하면 지급명령 효력이 사라져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채무가 없기 때문에 외면하거나 법적 절차를 몰라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지급명령을 당했지만 채무관계가 없다고 판단, 이의제기를 하지 않다가 강제집행을 당한 뒤 대응한 사례만 최근 5년간 69건에 달한다. 법조계는 강제집행에 대한 청구이의 소송이나 관련 사기죄, 법적 대응을 포기하는 경우 등을 포함하면 소송사기로 인한 피해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했다.
A변호사는 "지급명령을 근거로 채무자 은행계좌를 정지시키거나 부동산 등을 압류할 경우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부도에 직면할 수밖에 없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의제기 기간이 지난 후 지급명령을 뒤집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사소송(청구이의 소송)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소송 사기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B변호사는 "가령 100만원 안팎 소액의 허위 채무에 대해 지급명령 신청하는 경우 수백만원에 달하는 변호사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피해자로서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소송을 포기, 허위 채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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