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도덕철학과 교수인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써서 경제학이란 학문을 열었다면, 동양에는 무려 2000년이나 앞서 유학자 순자가 '부국편(富國編)'을 썼다. 기원전 4세기 말 조나라에서 태어난 순자는 제나라에서 공부하면서, 오늘날의 국립대 총장이나 학술원 회장에 해당되는 학자 중 최고 자리를 세 차례씩이나 역임했다. 이렇듯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추앙을 받았던 그는 후대, 자신의 글을 모아 '순자'란 책을 펴냈다. 이 책 중 한 편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방법을 논한 '부국편'이다.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본래 악하다"고 밝힌 '성악설'로 유명하다. 여기서 악하다는 말은 인간에게는 이익을 좋아하는 욕망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시샘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다투지 않고 선하게 살려면 분별을 밝혀 예(禮)를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순자는 '부국편'에서 남보다 더 잘살고 좋은 것을 먹고 싶어하는 욕망이 왜 문제가 되는지 밝히고 있다. 사람들이 갖고자 하는 욕망은 큰 데 비해 원하는 재화는 작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예를 배워 욕망을 다스리고, 다른 한편으로 부족한 재화를 늘려 국가와 국민을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궁리했다.
순자는 "나라를 풍족하게 하는 방법은 물자를 절약해서 백성을 윤택하게 해 주며, 그 나머지는 잘 저축해 두는 것이다"고 했다. 또 "전답의 세금을 가볍게 하고, 관세나 시장의 세금을 없애고, 장사꾼들의 술수를 줄이고, 힘을 동원하는 부역을 일으키는 일을 드물게 하고, 농사의 시기를 빼앗지 않으며, 이렇게 하면 나라는 부유해진다"고 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애덤 스미스의 시대와는 달리 순자의 시대는 농경시대였기 때문에 순자는 농업을 중시했다. 그런데 순자는 이천수백년 전 유학자의 제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대담한 제안을 했다. 능력에 따른 성과제를 주장한 것이다. 그는 "조정에는 놀고먹는 신하가 없고, 백성들은 요행으로 사는 백성이 없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 "덕은 반드시 지위에 맞고, 지위는 반드시 녹봉에 걸맞고, 녹봉은 반드시 쓰임에 알맞아야 한다"고 했다.
순자는 사람의 역량을 잘 다스린다면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 이 땅에서는 다섯 가지 곡식이 자라는데, 사람들이 잘 기르면 이랑마다 몇 동이의 열매를 얻을 수 있고 1년에 두 번이나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보상과 질책이 올바르게 이루어지면 국가도 부유해지고 사회질서도 바로잡힌다고 보았다. "지혜롭고 어리석고, 능하고 능하지 못한 구분을 두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에 따른 일을 맡겨서 각각 그 마땅함을 얻은 뒤에야 곡식과 녹봉의 많고 적고 후하고 박한 정도를 맞추어서 모두가 함께 화목하게 사는 도(道)를 만든 것이다." 또 "어진 사람이 윗자리에 있으면 농사꾼은 힘을 다하여 밭을 갈고, 상인은 힘을 다하여 재물을 관리하고, 모든 기술자들은 재주를 다하여 기계와 그릇을 만들고, 사대부 이상의 공직자나 귀족에 이르기까지 어질고 후덕하며 지혜와 능력을 다하여 관직에 임할 것이니, 이러한 것을 지극히 평화로운 세상이라고 이르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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