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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세실과 호랑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03 17:01

수정 2015.08.03 17:01

머리가 잘린 채 발견된 세실의 사체에 전 세계는 분노했다. 잔인한 사냥꾼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파머를 추방하라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사냥을 도운 중개인들도 법의 심판대에 세우게 했다. 유엔 총회는 독일 등 70여개국이 공동 발의한 '야생 동.식물의 불법 밀거래 차단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부유층들의 과시용 박제 기념품을 남기려는 '트로피 (trophy) 사냥'에 경종을 울리고 떠난 짐바브웨 '국민사자' 세실 이야기다.


검은 갈기를 휘날리며 초원을 거닐던 세실은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의 마스코트였다. 여섯 마리의 암사자와 스물네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세실은 인간과의 교감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를 보고자 한 해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 들었다. 하지만 파머에겐 한낱 사냥감에 불과했다. 파머는 5만달러(약 5800만원)를 내고 석궁과 총으로 세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파머는 사자를 죽인 것을 후회하며 적법한 과정을 거쳤다고 해명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

국제환경보호연합(IUCN)은 사냥꾼들에 의해 희생되는 아프리카 사자는 연간 600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아프리카 각국이 돈을 받고 허가를 내주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을 인용해 남아프리카 국가들은 트로피 사냥으로 해마다 7억4400만달러(약 8700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사냥꾼은 돈 많은 미국인이었다. 파머가 소속된 국제사파리클럽은 사자나 다른 대형 동물을 죽인 뒤 그를 기록하고 순위를 매기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에는 회원 사냥꾼들이 사자 2000마리를 죽인 기록이 올라와 있다.

한때 한반도를 호령한 호랑이는 세실보다 더 일찍 참혹하게 세상을 떠났다. '적설심협(積雪深峽)에서 대호사중(大虎射中).' 1924년 국내 한 일간지에 강원 횡성 깊은 산속에서 호랑이가 사살됐다는 기사 내용이다. 그후 우리나라에서 호랑이가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없다. 위풍당당하던 호랑이가 급격히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해로운 맹수를 제거한다는 일제강점기의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 때문이다.

하지만 맹수를 잡는다는 것은 허울좋은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고가의 호피를 취득하려는 일본인들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었다. 1915년 한 해에만 일본 경찰, 사냥꾼 등 9만여명이 호랑이 11마리, 표범 41마리, 곰 261마리, 늑대 122마리 등을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광복 70주년, 파머보다 더한 일본인들의 만행를 곱씹어 본다.

sejkim@fnnews.com 김승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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