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fn스트리트

[fn스트리트] 안락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04 17:11

수정 2015.08.04 17:11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 더러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라나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자살이나 의로운 죽음을 빼면 대부분의 죽음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안락사다. 75세의 건강한 영국 여성 질 패러우는 지난달 남편과 함께 스위스의 한 병원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원 측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스위스는 안락사가 합법화된 나라다.

그녀는 죽기 전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생 노인들을 돌보면서 '나는 늙지 않겠다'고 생각해왔다. 늙는다는 것은 암울하고 슬프고 끔찍하다." 그녀는 호스피스 병동의 완화의료 전문 간호사였다. 일터에서 죽음이 임박한 노인들을 보면서 이 같은 말년을 계획했다고 한다. 그녀는 죽기 두 달 전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대상포진을 앓고 난 후에 모든 게 바뀌었다. 비록 지금은 건강하지만 내 삶이 다했고 죽을 준비가 됐다고 느낀다."

안락사가 금지된 영국에서는 패러우처럼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로 가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2008~2011년 사이에 스위스에서 안락사한 사람만 611명. 이 가운데 5분의 1이 영국인이었다. 영국에서는 안락사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지금도 치열하다.

안락사와 존엄사는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개념이다. 존엄사는 최선의 치료를 다했음에도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이다. 즉 연명치료의 중단이다. 우리나라도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관련 법안(호스피스.완화의료의 이용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다. 그러나 종교계와 장애인 인권단체 등을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거세다.

안락사는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살아날 가망이 있는 환자를 치료하지 않아 죽게 하는 것이 소극적 안락사다.
적극적 안락사는 약물을 투여해 고의로 죽게 하는 것으로 패러우가 선택한 죽음이다.

인간은 이제 삶과 죽음마저도 지배하려 한다.
존엄한 죽음이란 뭘까. 영국인 패러우가 선택한 세상과의 작별 방식이 존엄한 죽음을 생각해보게 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fnSurvey